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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 볼드윈] 캐릭터에 폭소엔진 장착
안현진(LA 통신원) 2009-02-12

<30록>의 잭 도나기 역으로 제2전성기 맞는 알렉 볼드윈

NBC·GE·유니버설·K마트 동부해안지역 텔레비전/전자레인지 사업부 부사장. <30록>에서 알렉 볼드윈이 연기하는 잭 도나기의 공식 직함이다. 웃겨보려고 일부러 붙인 것이 분명한 이 생뚱맞게 긴 타이틀은, 야망의 미중년 잭 도나기가 한번의 쉼도 없이 나열할 때 본색을 발한다. 해외 기사들은 ‘잭 도나기’와 ‘알렉 볼드윈’ 사이에 커다랗고 굵은 등호를 그려 넣으려 원고지를 바친다. “알렉 볼드윈이 아닌 잭 도나기는 상상할 수 없다.”(<백스테이지웨스트>) “<30록>을 놓치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이유, 알렉 볼드윈.”(<뉴요커>)

연기 인생 30년 만에 정점에 올라

1987년 스크린에 데뷔한 알렉 볼드윈은 <붉은 10월>(1990), <글렌게리 글렌 로스>(1992)를 통해 스타급 배우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유명세에 도움을 준 것은 킴 베이싱어와의 시끌벅적한 결혼과 요란스러웠던 이혼이다. 그 뒤 1997년까지 출연한 모든 영화를 “폭탄”이라고 자평하듯 점차 조연으로 밀려났고, 날렵한 턱선을 가졌던 아일랜드계 청년은 시간에 순응하며 중년의 풍채를 갖게 됐다. 사실 영화계는 그의 푸른 눈동자보다 금속을 긁는 듯한 목소리를 사랑했다. <파이널 환타지>부터 <마다가스카2>까지, 그는 영상만큼이나 꾸준하게 목소리 연기로 관객과 만나왔다. 그리고 2007년, 연기를 시작한 지 30년 만에 만난 <30록>으로 그는 명실공히 커리어의 정점에 오른다. 두툼한 뱃살과 뻔뻔한 인격으로 무장한 알렉 볼드윈은, 2007년부터 3년 연속 SAG(배우조합)에서 남우주연상, 2008년 에미상, 2007년과 2009년 골든글로브까지 모두 6개의 트로피를 잭 도나기의 이름으로 거머쥐었다.

잭 도나기는 수완 좋은 사업가인 동시에 교묘한 조정가다. 자본주의를 맹신하는 그의 목표는 <NBC>의 모기업 <GE>의 CEO. 비즈니스 성공수칙을 줄줄이 꿰는 잭은, 칭찬하지 않고도 고래를 춤추게 할 인물이다.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그의 청년기를 정리해보면, 북극곰을 (아마도 맨손으로) 때려잡았고 킬리만자로를 등반했으며 단지 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허드슨강으로 차를 몰아 탈출을 시도했다. 땅콩 알레르기도 정신력으로 이겨냈다. 이 남자가 극복할 수 없는 존재는 덜떨어진 가족들과 독설가인 어머니뿐이다. 그러나 자수성가한 잭과 다르게 평범 이하의 삶을 사는 가족들은, 달리 보면 그를 오늘에 이르게 한 원동력이다. 모두 배우가 된 4형제의 맏이로서 볼드윈이 느꼈을 성공에의 의지와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정작 그는 “나에게 영화적 재능은 없다. 못하는 건 아닌데 타고나지도 않았다”며 잭 니콜슨, 알 파치노 같은 대배우들로부터 거리를 둔다. 오히려 그는 오슨 웰스에 자신을 견준다. “파워풀한 배우지만, 언제나 위대한 배우는 아니었다. 거만하기도 했지.”

스티브 카렐이나 짐 캐리와는 다른 웃음

사람들은 알렉 볼드윈이 꽤 웃기는 남자배우이자 빼어난 재담가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젊은 시절 보여준 선 굵은 연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짧은 결혼생활 뒤 이어진 지난한 이혼소송과 딸의 휴대폰에 남긴 욕설 파문, 숨김없이 드러내는 정치적 견해 등이 그가 가진 코미디언으로서의 재능과 유명인으로서의 존재감을 분리시키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코미디 배우의 대표 격인 스티브 카렐이나 짐 캐리와는 다른 지점에 서 있다. 전자에 속하는 배우들이 슬랩스틱으로 웃음을 유발한다면, 볼드윈은 하늘 아래 그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캐릭터로 승부한다. <30록>의 파일럿을 본 <NBC>에서 볼드윈이 시즌1 전회에 출연하는 조건으로 승인했다는 사실은 전적으로 수긍이 간다.

그러나 알렉 볼드윈은 작품을 장악하는 신스틸러(Scene Stealer)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에피소드를 빛나게 하는 감초에 가깝다. 스티브 부세미, 제니퍼 애니스톤, 이사벨라 로셀리니 등 화려한 게스트들과의 앙상블에서 눌리지 않으며 티나 페이, 트레이시 모건 등 출연진과 조명을 나눌 때도 튀지 않고 어우러진다. 전자레인지 시장에 돌풍을 몰고와 텔레비전 사업부까지 진출한 잭 도나기식으로 말하면, 그는 <30록>의 “3번째 열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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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폭스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