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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마법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안현진(LA 통신원) 2009-02-11

synopsis “나는 다르게 태어났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늙어갔고, 나는 반대로 젊어졌다.”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은 노인의 외모로 태어나 아기의 모습으로 죽어간, 기이한 인생의 주인공이다. 친부는 그를 양로원에 버렸고, 가엾게 여긴 양로원에서 거두어 키웠다. 17살이 되자 벤자민은 예인선에 올라 세상으로 떠나고, 20대에는 러시아에서 만난 영국 여인 엘리자베스(틸다 스윈튼)와 사랑에 빠진다. 2차대전을 겪고 고향 뉴올리언스에 돌아온 그는, 첫사랑이었지만 아슬하게 멀어져갔던 데이지(케이트 블란쳇)와 어른의 모습으로 다시 만난다.

데이비드 핀처와 브래드 피트가 <쎄븐> <파이트 클럽>에 이어 3번째로 호흡을 맞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이하 <벤자민 버튼>)는,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에서 모티브와 제목을 빌려온 영화다. 50페이지 정도의 원작과 달리 2시간30분이 넘는 영화는 시대의 면면을 레퍼런스로 활용한다. 벤자민이 태어난 날은 1918년 1차대전 종전일이고, 노년의 데이지가 숨을 거두는 날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삼킨 바로 그날이다.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든 맹인 시계공 이야기나 벤자민과 생부의 이야기 등의 잔가지를 떼어놓고 이야기하면 <벤자민 버튼>은 벤자민과 데이지의 로맨스를 중심에 놓는다. 두 사람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던 서로의 시간이 만날 때까지 몇번을 아쉽게 스쳐 지난다. 그리고 벤자민이 49살, 데이지가 43살이 되는 때에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만난다. 싱그러움은 사그라졌지만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두 사람은, 지금 지나가면 다시 찾아오지 않는 순간의 소중함을 알기에 아낌없이 사랑한다. 그러다 둘에게 아기가 생긴다. 계속해서 어려지던 벤자민은 데이지와 아기를 위해 어려운 결심을 하지만, 영화는 사랑 이야기로 완성된다.

몇번을 헤어졌다 다시 만난 남녀가 있다. 이제 다른 짝이 생긴 둘은 여전히 서로를 원한다. 여자는 나중에 다시 만나자고 하고, 남자는 지금의 당신을 원한다고 말한다. <벤자민 버튼>은 이 흔해빠진 연속극 속 대사가 말하는 “나중”과 “지금”을 우아한 화법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다. 시간은 마법이다. 시간 앞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열병 같았던 사랑의 감정도, 산산이 조각난 멍울진 가슴도 결국은 시간의 모래밭에 자취를 감춘다. 그럼에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 뒤에 남는 것이 있다면, <벤자민 버튼>을 보고 당신의 마음에 남는 그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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