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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합격점 이상의 사회드라마 <핸드폰>
이영진 2009-02-18

synopsis 매니저 승민(엄태웅)에게 신인배우 진아(이세나)는 마지막 카드다. 그는 낮엔 사채업자에게 시달리고 밤엔 술자리에서 굽실거리는, 딱한 처지의 사내다. 얼마 뒤 승민은 진아의 CF 출연 계약을 성사시키지만, 철없는 진아의 섹스 동영상이 담긴 핸드폰을 분실하고 안절부절못한다. 핸드폰을 습득했다는 한 낯선 남자의 전화를 받고 승민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 기대하나 수화기 저편의 이규(박용우)는 이죽거리며 악몽의 게임을 주문한다.

“당신과 당신이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각각 다른 방에 갇혀 있고 바로 옆에 버튼이 있다. 당신들은 60분이 지나기 전에 둘 중 하나가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경우 둘 다 살해되리라는 것을 안다. 나아가서, 버튼을 먼저 누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살리는 대신 자신은 즉각 살해될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유의 딜레마는 최선의 선택이 존재하느냐고 반문한다. 덫에 걸려든 두 사람이 합의에 성공하면 한 사람이라도 살리는 차선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등의 상황에서 최악의 선택을 한다.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어서다. 확실한 건 자신의 목숨이 더 중하다는 판단이고, 결국 그들은 원치 않은 죽음을 맞는다.

<핸드폰>의 인물들 또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승민은 핸드폰을 돌려받는 대신 돈을 내놓으면 된다. 이규는 돈을 챙기고 핸드폰을 돌려주면 된다. 이처럼 흔한 거래가 가능하려면 먼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런데 <핸드폰>의 승민은 이규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공손하게 전화를 받으라”고만 반복하는 이규의 요구를 참다 못해 승민은 그의 신원을 뒤쫓는다. 욱하는 성질 때문만은 아니다. 갈등을 해결하고 차선을 받아들일 방법을 전혀 몰라서다. 관객도 승민의 편에 선다. 그리고 이규의 정체를 오인한다. 좀더 많은 돈을 원하는 ‘또라이 사기꾼’ 혹은 승민의 아내에게 집적대는 ‘변태 스토커’로 말이다.

이쯤 되면 <폰부스>에 갇힌 채 죽음의 표적이 되는 뉴욕의 한 남자가 떠오를 것이다. 승민이 갖은 방법으로 이규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하고 사투를 벌이는 장면들에선 <추격자>의 연쇄살인범과 형사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핸드폰>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다. <핸드폰>은 <폰부스>와 달리 이규를 일찌감치 등장시킨다. 이규를 무지막지한 사이코패스로 몰고가지 않으니 <추격자>와도 구별된다. <핸드폰>은 딜레마의 극적 파국보다 딜레마의 사회적 배경을 더 보여주려 든다. 웃음을 팔고 사는 두 남자의 직업을 꼼꼼하게 묘사한 것도 그런 목적 때문일 것이다.

<핸드폰>은 김한민 감독의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과 비교해서 보는 것이 더 흥미로울 듯하다. ‘극락도’ 사람들이 점점 미쳐가는 건 망각했던 과거가 다시 그들의 삶에 떠올라서다. 그들이 의심을 더하는 동안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고, 시체는 더 늘어난다. ‘공동체의 선’을 위한 망각 혹은 거짓은 피비린내 진동하는 참혹을 낳는다. <핸드폰>의 딜레마를 발동하는 건 ‘무관심’이다. 승민은 이규는 물론이고 함께 사는 아내 정연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한다. 파멸에 달하기 전 공동체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 걸까. 스릴러라는 외피에 집중해서 보면 <핸드폰>은 아쉬운 대목을 곧잘 노출하지만, 사회드라마라는 측면에서는 분명 합격점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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