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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나>, 애견인 3인3색 에세이 [1] 김혜리
김혜리 2009-02-26

애완동물과 함께 사는 건 본래 슬픈 일이다. 서로 사는 시간축 자체가 다르니 그들과의 동거엔 애초에 이별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보다 세배 빨리 산다는 고양이나, 인간의 1년이 7년과 같다는 개. 가벼운 마음에 귀엽다고 기르기 시작해도 언젠가는 이 무서운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책임감도 중요하고 용기도 필요하다. ‘개와 함께 보낸 젊은 날’이라 요약할만한 영화 <말리와 나>에도 개와의 이별이 나온다. 영화의 시사회가 있었던 극장에선 여기저기 훌쩍대는 소리가 났고, 몇몇 좌석에선 그 소리가 꺽꺽 울렸다. 과거에 개를 길렀거나, 현재 개를 기르는 이라면 이 영화에서 보이는 아프고 무거운 진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거다. <씨네21>은 애견인 3인에게 영화의 관람을 권했고 그들의 경험이 살아 있는 에세이를 받았다. 눈물도, 감동도, 경우에 따라선 불만도 묻어나는 이야기지만 함께 살아가는 동물을 추억하기엔 더없이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나, 너, 그리고 우리의 말리는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못한 교훈을 이 세상에 하나 남기고 갔다.

몰티즈 수지의 노년을 함께하는 김혜리

새침데기 깍쟁이의 마지막 배려

나는 평생 단 한 마리의 개를 사귀었다. 수지는 1992년 1월30일 우리 가족에게 왔다. 겨우 생후 40일이었지만 그녀의 의지는 처음부터 남달랐다. 수지는 동물병원 우리 안 올망졸망한 다른 강아지들을, 사력을 다해 밀쳐내고 깔아뭉개며 유리벽에 매달려왔다. 엄마와 나는 설복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눈발이 흩날려 수지를 외투 품에 넣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여리고도 질긴 박동이 왼쪽 가슴을 간질였다. 그날 나의 심장은 둘이 되었다.

보호해야 할 연약한 존재가 생기자 세상은 지뢰밭으로 둔갑했다. 집 안에 먼지가 그렇게 많았는지, 날카롭고 뾰족한 물건이 그렇게 널렸는지 난생처음 알았다. 호기심 많은 어린 동물은 불 꺼진 뒤에도 집 안을 돌아다녔다. 가전제품 코드에 걸려 연방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뜬눈으로 첫날밤을 새우며, 나는 내가 저지른 미친 짓의 무게를 깨닫고 몸서리쳤다. 너는 사랑에 빠졌어. 그리고 저 개는, 아마도 거의 확실히, 너보다 먼저 늙고 병들어 죽을 거야. 개의 시계는 인간의 그것보다 7배가량 빨리 간다고 한다. 수지로 인해 죽음은 내가 일상적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연애를 할 때면 남자친구에게 다짐을 받았다. “언젠가 내 개가 죽는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제발 그날은 옆에 있어줘.” 다들 흔쾌히 맹세했지만, 결국 수지가 그들보다 오래 내 곁에 남았다.

영화 <말리와 나>는, 명랑한 기질을 타고난 개가 노쇠해가는 광경을 지켜본다. 나의 수지도 천천히 쇠약해졌다. 어린 수지는 한강 둔치에서 몰래 풀을 뜯어먹고 비둘기 떼를 골탕 먹이길 즐겼다. 이름을 부르면 모듬발 뛰기로 달려오는 바람에 귀가 나비처럼 나풀댔다. 파란 페인트로 마라톤 코스를 표시한 금을 똑바로 따라가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잭 니콜슨처럼!- 직성이 풀리는 수지의 괴벽은 나의 놀림감이었다. 세월과 더불어 개줄을 당기는 그녀의 힘은 조금씩 약해졌다. 열살을 넘긴 어느 날, 수지는 걷기를 멈추고 땅바닥에 앉아버렸다. 눈만으로 내 뒤를 따르며 내가 반환점을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열여섯살이 된 2년 전 수지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노령으로 안구 힘줄이 늘어졌다고 했다. 수술을 했지만 한눈은 감겼고 안구가 성한 쪽도 사물을 잘 감지하지 못했다. 동물의 담담함은 가히 성스러웠다. 우리가 슬퍼하는 동안 수지는 비틀비틀 일어나 가구 다리에 무수히 부딪히며 집의 구조를 발로 다시 익히기 시작했다. 이제 저녁 외출을 나가며 수지가 어둠을 무서워할까봐 불을 켜둘 필요가 없어졌다. 혼자 소리죽여 울 때면 알아차리고 다가와 뺨을 핥아주던 천사짓도 추억 속에만 남았다. 뒤이어 청력이 떨어졌다. 수지는 귀가 몹시 예민한 개였다. 간식 이름에 흥분하고, 목욕이나 병원이라는 낱말이 나오면 구석에 숨었으며, ‘나가다’라는 동사가 들리면 일찌감치 현관에서 보챘다. 들리지 않게 된 개의 움직임은 현저히 줄었다. 축구 중계나 공포영화를 틀어놓아도 테이블 밑에 숨지 않았다. 흔들어 깨워야 나를 반겼다. 본래 수지의 성격은 고양잇과였다. 안으려 하면 비싸게 굴며 쏙쏙 빠져나갔고 혼자 놀고 혼자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늙어 아픈 데가 많아진 수지는 얌전히 안겨 와서 나를 화나게 한다. 가만히 관절을 주물러주면 안마 받는 노인처럼 손길을 음미한다.

<말리와 나>의 래브라도견은 노구를 이끌고 매일 스쿨버스를 마중 나온다. 수지의 몸에 입력된 오랜 일과표도 지워지지 않았다. 화장실을 앞발로 노크하거나 서랍을 코로 여는 일은 체념했지만 아침이면 절룩거리며 식구들을 깨우러 온다. 더이상 뛰어오르지 못하는 침대 밑에 그저 웅크려 앉는다. 나는 알고 있다. 그녀가 일부러 우리를 천천히 떠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새침데기 깍쟁이 개의 마지막 배려라는 것을. 수지가 멀게 느껴질 때 나는 눈을 감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아본다. 그리고 나의 개가 잠겨 있는 검고 미지근한 물과 같은 침묵과 암흑을 만져본다. 너, 지금 이런 곳에 있니?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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