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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나>, 애견인 3인3색 에세이 [3] 박혜명
박혜명 2009-02-26

페키니즈종 美男이를 떠나보낸 박혜명

아무리 늙어도 너는 강아지였어

개가 죽는 얘기라는 걸 알고 봤다. 나는 애견인이라, 엄청 울다 나오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렇진 않았다. 이건 영화 탓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기이하리만치 ‘해체적’이어서, 2시간 동안 온갖 에피소드가 들고 나는데 어떤 에피소드도 이 영화의 핵심이 되지 못하고 줄거리는 한 방향으로 꿰어지지 않고, 주제가 뭔지 모르겠고, 사실은 이 영화에서 개가 주인공인지 오언 윌슨이 주인공인지 제니퍼 애니스톤이 주인공인지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막판에는 개가 죽기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을 흘렸고, 극장을 나올 때의 기분은 시큰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가족과 5년을 살았던 페키니즈종 美男이에 대해 생각했다. 2007년 12월31일에 신부전증 악화로 안락사한 미남이는 주로 ‘남이’로 불렸는데, 이유는 우리 식구들끼리야 괜찮지만 남들 앞에서 “미남아”라고 부르기가 솔직히 부끄럽다는 엄마의 의견 때문이었다. 남이는 2004년 여름, 공정과정에서 곰팡이균이 섞인 페디그리사의 불량 사료를 먹어 이 병을 얻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 무수히 많은 개들이 죽어나갔는데, 남이는 기적적으로 살았다. 수의사 선생님은 남이가 “너무 밝은 성격이라” 병을 이긴 것 같다고 했다. 길어야 1년일 거라던 남이의 수명은 3년 반간 굳건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남이의 죽음에 대해 곧잘 얘기해왔다. 남이가 죽고 난 다음날부터도 그럴 수 있었다. 정말 말하기 어려운 건 남이의 죽음 전날 밤의 일들이다. 남이의 안락사가 결정된 뒤, 남이는 우리집에서의 마지막 밤을 나와 함께 보냈다. 그때 남이는 심한 내출혈과 장기 손상으로 사람의 손에 의해 몸이 들려지기 불가능한 상태였다. 나는 바싹 마른 남이를 안아줄 수 없었다. 남이는 악성빈혈 증상으로 걷기는커녕 고개 들고 내리는 일도 못했다. 물도 마시지 못했고, 밥도 먹지 못했다. 기운없이 누워 있기만 하던 남이는, 몇번씩 힘겹게 몸을 일으켜 물그릇쪽으로 가곤 했다. 물 앞에서 냄새만 맡고 돌아서던 남이의 얼굴과 걸음걸이는 내겐 칼날 같은 기억이다.

밤새 고통으로 잠들지 못했어도, 내가 저를 부르면 남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 했다. 남이야, 남이야, 여러 번 부르니까 천천히 꼬리를 치켜세워 흔들려고도 했다. 짓궂게도 내가 “남이, 손!” 하고 내 손을 내밀었더니 그 위에 제 발을 얹었다. 남이의 발은 많이 가벼웠다. 그것 빼고는, 남이는 많이 아팠을 뿐 그대로였다. 우리가 지난 5년간 함께했던 모든 것들을 그날 밤에도 변함없이 나와 함께해준 내 강아지 말이다.

개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녀석이 아무리 늙어 쭈글쭈글해져도 여전히 ‘강아지’다. 송아지는 소가 되고, 망아지는 말이 되어도, 강아지는 ‘개’가 되지 않는다. 그건 너무 딱딱한 일반명사다. 다섯살 노총각이었어도 남이는 우리 이쁜이, 우리 애기, 우리 강아지였다. “개들은 아무리 아프고 자기 상태가 어쩌고 해도, 주인한테 할 건 다 하잖아요.” 10년 전에 1년 정도 키우고 떠나 보낸 개를 아직까지 못 잊는다는 내 지인이 언젠가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도 남이가 떠올랐다. 그는 그 뒤로도 다시 개를 키우려고 여러 번 시도해봤지만 안됐다며 최근에 고양이를 들인 얘기를 했다. “차라리 다른 종류다 보니까 용납이 되더라고요.” 그런가. 나는 아직도, 다시 건강해진 남이가 누군가의 품에 안겨 우리집으로 돌아오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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