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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액세서리] 안경 너머 무시무시한 강압

1964년 브롱크스의 성 니콜라스 교구학교에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상반된 두 사람이 있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신념으로 사는 알로이시스 교장 수녀(메릴 스트립)와 ‘사랑으로 모든 걸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의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영화 <다우트>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의 극적 대비를 통해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둘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와인과 음악, 농담이 넘치는 신부의 저녁 테이블과 우유와 냉기, 침묵뿐인 수녀의 테이블은 같은 시간에 배치되어 있다. 차에 설탕 세개를 넣는 신부와 그게 못마땅한 수녀의 불평 역시 한 공간에 놓여 있다. 신부와 수녀라는 특별한 상황 때문에 둘의 캐릭터를 옷이나 장신구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요원하다. 그래서 작가가 택한 건 안경과 손톱이다.

플린 신부는 사제복 소매 아래로 손톱을 기르고 알로이시스 수녀는 머리카락 한올 보이지 않게 꽁꽁 싸맨 수도복 사이로 안경만 반짝 빛난다. 보수와 진보, 공격과 방어, 이상과 현실이라는 반대 개념으로 볼 때 수녀의 안경은 100% 전자에, 신부의 손톱은 온전히 후자에 속한다. 도덕적 규율과 원칙에 매여 살고 다른 사람에게는 공포와 징벌의 상징이며 철의 여인이라는 ‘비아냥 섞인’ 별명을 지닌 여자. 얼핏 <B사감과 러브레터>의 B사감,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의 로텐마이어가 떠오른다. 모두 영화 속 알로이시스 수녀처럼 깡마르고 융통성이라곤 없고 남 괴롭히는 게 취미이며 알고 보면 자기연민에 빠진 안경 낀 여자들이다.

영화 속 알로이시스의 첫 등장, 미사 도중 조는 학생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수녀가 안경을 끼고 있을 때 그녀의 앞으로의 나아갈 바는 불 보듯 뻔하다. 수녀인데다 창백한 얼굴에 안경까지 낀 여자라니. 지나치게 상식적인 설정이라고 실망한다. 그러나 그 여자가 메릴 스트립일 땐 생각이 달라진다. 메릴 스트립의 무시무시한 연기는 어떤 건방진 불평이나 아는 척, 그 어떤 것도 입도 못 떼게 만든다. 메릴 스트립은 동그란 무테 안경을 반질반질하게 닦아 쓰고 눈으로 말한다. “그 입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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