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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그의 영화] 아침에 맥주 들고 버스 타봤나요?
김연수(작가) 2009-02-26

남성 판타지를 교묘하게 비튼 <낮술>을 보며 큭큭대며 웃은 이유

유럽에서 올라탄 비행기에서 J(이 호칭이 좀 낫네)는 젊은 시절 밤새 동시상영관에서 세편의 영화를 보고 나와 토스트(씩이나!)를 먹으며 출근길의 직장인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낀 일을 애잔하게 떠올렸던 모양이다. <상실의 시대>의, 중년이 된 와타나베처럼. 우리도 벌써 중년이로구나. 이제 텅 빈 버스(아무래도 출근길의 반대 방향이니까)를 타고 쓸쓸히 돌아가는 일 따위는 할 수 없게 됐구나. 이럴 때, 나는 상실을 느낀다. 상실이라고 말하니, 내게도 출근길에 얽힌 추억이 떠오른다. 무려 나오코와 미도리 사이에서 청춘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던 일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공짜술 잘 마셨는데 내 책은 어디로…

그 시절, 그러니까 1995년 무렵에는 너나 할 것 없이 할 일이 없었다. 할 일이 없으니, 또 너나 할 것 없이 비평가였다. 책이면 책, 영화면 영화, 인간이면 인간, 걸리는 족족 서슴없이 “쓰레기”라는 평가가 나왔다. 청년실업이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친구들이 술 마시러 나오라는데 차비가 없어서 못 나간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서 할 일이 있다고 둘러대던 시절이니 뭐가 두렵겠는가. 하지만 할 일이 있어서 술 마시러 못 나간다니, 그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

날마다 통장정리를 생활화하던 그 시절, 돈이 들어오면 바야흐로 술을 마시러 신촌으로 나갔다. 이제는 말할 수 있으니 J도 용서하겠지. 신촌으로 나가면 나는 제일 먼저 신촌문고에 들렀다. 예나 지금이나 학구파여서가 아니라, 주머니에 있는 돈을 좀 덜어내기 위해서였다. 5만원을 들고 나가면 5만원을, 10만원을 들고 나가면 10만원을 다 쓰고 난 뒤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까 미리 책을 산다면 내 돈을 덜 쓸 수 있었다. 내 돈을 덜 쓸 수 있다면, 그건 남의 돈으로 술을 마실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마셔보니 술은 남의 돈으로 마셔야 잘 취하더라. 게다가 술자리에 책 뭉치를 들고 가면 다른 사람들의 술맛을 떨어뜨리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그날도 나는 무지무지 비싼 책들을 샀다. 그 책들을 들고, 도어즈인지 레드 제플린인지 핑크 플로이드인지 하는 곳에 갔다. 나는 마시고 또 마셨다. 어느 정도 마시니까 내가 가진 액수를 초과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술은 무지하게 맛있어졌다. 몇차를 돈 뒤, 친구들의 어깨를 치면서 마지막으로 내가 한잔 사겠다고 말한 뒤 편의점으로 갔다. 새벽 공원에서 맥주 마시는 맛이 끝내준다면서. 그렇게 맥주를 들고 돌아오는데, 상실의 느낌이 나를 급습했다. 어떤 깨달음. “청춘이 이렇게 가는구나”가 아니라 “책, 책은 어디로 갔지?”라는 깨달음. 허겁지겁 친구들에게 달려갔더니, 다들 고소하다는 표정이었다.

도어즈인지 레드 제플린인지 핑크 플로이드인지 하는 곳은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었다. 그 집에서 나온 뒤로는 뭘 들고 다닌 기억이 없어서 나는 어떻게든 들어가보려고 담장을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끙끙대며 지붕 위로 올라가서야 나는 그 카페가 지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의 돈으로 술을 마시면 너무 잘 취해 그 지경이 되는 것이다. 상심한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돌아갔더니, 맥주병만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그 맥주병을 들고 다시 도어즈인지 레드 제플린인지 핑크 플로이드인지 하는 곳의 입구로 찾아갔다. 거기 앉아서 어두운, 상실의 거리를 나는 바라봤다.

바지, 외투, 그리고 현금의 상실

<낮술>을 보니까 그 시절의 일들이 많이 떠오른다. 영어 제목이 ‘Daytime Drinking’이던데, 그게 내 눈에는 자꾸만 ‘Daydream’, 그러니까 ‘백일몽’으로 보이더라니. 옆방에 혼자 묵는 펜션녀, 버스 옆자리에 앉아서 예술을 논하는 하이쿠녀, 갈 곳을 잃은 낮술 청년에게 차비까지 주는 인생 선배 목욕남. 게다가 펜션녀의, 다음과 같은 주옥같은 대사는 내 가슴을 울린다. 술 한잔만 사주세요. 제가 살게요. 아니, 여기서 마셔요. 왜 안돼요? 남자는 똑같아. 난 양주. 강원도로 가는 모든 젊은 남자들이 꾸는, 그러니까 개꿈 속의 말들.

그러다가 혼자 큭큭대며 웃었는데, 그 이유는 이런 캐릭터들을 통해 <낮술>이 지금까지 남성 작가들이 쓴 성장담을 교묘하게 비튼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이 경우엔 나나 무라카미 하루키나 처지가 비슷하다. J는 어떨까?). 이 비틀린 성장담의 교훈은 펜션녀와 사업남과 낮술 청년, 이렇게 셋이서 술을 퍼마시고 난 다음날 아침의 풍경에서 찾을 수 있다. 눈을 뜬 주인공은 자신이 무엇을 상실했는지 깨닫게 된다. 그건 청춘도, 사랑도, 열정도 아니고, 제일 먼저 바지, 그 다음에 외투, 마지막으로 지갑. 그건 처음 만난 날, 목욕탕에 들어와 등까지 밀어주는 다정다감한 인생 선배의 조언처럼 괜히 경찰서에 신고해봐야 번거롭기만 한, 그런 상실이다.

그중에서도 현금의 상실은 꽤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바지도 빌려주고 외투도 빌려주지만, 현금을 빌려주지는 않는다. 낮술 청년이 백일몽을 꾼 대가로 지불한 금액은 10만원이다(목욕남에게 등 빌려주고 받은 돈은 2만원이니까, 실질적으로 상실한 건 8만원). 그건 아마도 사업남에게는 손해 가는 장사였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바지와 외투로 모자란 금액을 충당했겠지. 대부분의 남성 판타지에서 생략되는 건 바로 이런 얘기들이다. 어떤 사람은 칼럼도 요약하던데, 그래서는 안된다. 요약하다보면 중요한 것들을 생략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칼럼도 판타지가 된다. 그러지 말고 우리 다 얘기해보자. 끝까지 한번 가보자.

“그는 다시 강릉으로 갔다”에 맥주 세병 건다

눈을 떴더니, 내 옆에서는 청소부가 빗자루로 거리를 쓸고 있었다. 예의 그 신촌이고 출근길이었다. 밤새 카페 입구에서 쓰러져 잔 것이었다. 쓰레기라면 이런 꼴이 쓰레기인 것이다. 일어나 보니 내 옆에는 따지 않은 맥주 세병. 그걸 들고 다시 편의점으로 갔다. 차비가 없어서 그러는데, 이거 다시 돈으로 바꿔주세요. 내가 말했다. 편의점 직원은 그게 왜 불가능한지 내게 한참 설명했다. 여기서 돈 주고 샀는데, 왜 다시 팔 수 없다는 것인가요? 편의점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단다. 그럼 차비만 주세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직원이 환불은 불가능하고, 자기가 그냥 돈을 주겠단다. 그 돈을 받고 맥주를 내려놓았다. 직원이 맥주도 가져가란다. 맥주를 들고 버스를 탔다. 맥주 들고 버스 안 타봤으면, 출근길의 신촌에서 창피당한 얘기 꺼내지도 말아야 한다. 그렇긴 해도 직접 해보면 그렇게 창피하지 않다. 술이 덜 깼으니까. 마지막 장면에서 낮술 청년이 강릉으로 갔을 것이라는 쪽에 나는 맥주 세병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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