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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선술집 한줌 햇살의 기적
최보은 2009-03-06

멘토들이 도시를 떠날 것을 간곡히 권하다

내가 달라지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다 떠내보내거나 그들이 스스로 떠나간 뒤에도, 나는 전혀 외롭지 않았다. 평생 있는 줄도 모르고 지냈던 마음의 눈을 뜨자 모든 것이 살아 일어났고, 닫혀 있던 귀가 열리자 말의 기계적인 개념을 넘은 진실의 소리들이 들렸다.

당시 나는 장사가 안돼 몇년째 비어 있던 친척 소유의 한 선술집에서 생활했는데, 하루하루가 경이로운 기적의 연속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주로 담배나 술) 어떤 형태로든 즉시 주어졌고, 주변의 모든 것이 나의 말벗이 되어주었다. 그것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가 진실이었으므로, 이해관계에 얽매어 마음에 없는 소리를 늘어놓기 일쑤인데다 자기기만 타인기만에 능한 사람들과의 대화보다 훨씬 더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아침이 되어 선술집의 작은 셔터문으로 햇살이 비쳐 들면, 나는 그 햇살 복판에 서서 눈을 감고, 이곳을 원형 그대로 복원해보곤 했다(파괴전문가들이 청계천을 위조해놓고 ‘복원’했다고 주장할 때의 그 ‘복원’이 아닌 것은 아시져?)

햇살과 바람을 가로막는 시멘트 콘크리트 구조물들을 마음속 장풍으로 한큐에 쓸어내고 나면 보라돌이, 뚜비, 나나가 세트장을 박차고 달려와서 춤추고 싶어할 만한 나지막한 풀밭 언덕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바람에 일렁이는 키 큰 풀들 속으로 온갖 짐승들이 뛰어다녔다. 저 멀리 강이 노래를 부르며 흐르고, 구름은 시를 읊었으며, 바람은 교향악을 연주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중병에 걸려 절망에 빠진 후쿠다 마사노부 청년은 정처없이 방황하다가 숲속의 한 나무 밑에서 잠이 든다. 새벽녘, 새소리에 잠이 깬 후쿠다는 기적처럼, 모든 진실을 한순간에 깨닫고 이렇게 외친다. “우리 모두가 신이다!” 만약 그가 영화 속 아웃사이더같이 어느 허름한 모텔의 침대에서 잠이 들었더라면, 그래서 데스크의 모닝콜이나 알람 소리에 깨어났더라면, 그는 아무것도 더 알지 못한 채 남들과 똑같은 생을 살다가 죽어갔을 것이다. 다행히 그는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잠들었고, 대자연의 속삭임을 들었고, 그리하여 자연농법의 창시자가 되었다.

아무튼 그 그림 속에 서서, 나는 완벽하게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나는 우주의 비밀에 막 눈을 뜬 초보였을 뿐, 평생 강 같은 고요 속에서 마음의 물결에 미동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그래서 한번도 웃은 일이 없다(울고 화낼 일이 없으니!)는 예수님의 그림자도 밟을 처지가 못 됐다. 악으로 건설된 도시의 형상과 마주하면, 나는 다시 격렬한 분노와 혐오에 사로잡혔다. 나는 내게 주어진 작은 힘(초능력? ㅋㅋ)을 이용해서 추악한 사람들을 응징하려 했다. 마음만 먹으면, 그들을 죽일 수도 있었다(진짜로! 물론 손 안 대고!). 그리고 명백한 악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다행히도, 내게는 밝힐 수 없는 멘토들이 있었고, 그분들은 처음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온 네오들이 어떤 실수에 빠질 수 있는지를 잘 알았고, 내게 도시를 떠날 것을 간곡히 권했다. 도시에서 사는 한, 그들은 내가 미치거나 죽거나, 둘 중의 하나일 거라고 단언했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내가 그토록 격렬히 증오하고 혐오했던 ‘악’들이 바로 나의 다른 모습임을 깨달은 것은. 선과 악은 둘이 아니고, 우주 삼라만상이 인드라망의 한 구슬인 것을 깨달은 것은.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지막으로 자기 속의 사탄과 치열한 대결을 벌였고, 네오도 오라클도 결국은 스미스 요원의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