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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바보처럼 살아봐봐봐!
최보은 2009-03-13

멘토들이 권한 구르지예프의 가르침

지리산으로 들어갈 때, 내가 꾸린 몇권 안되는 책 중에 제자 우스펜스키가 기록한 구르지예프의 전기가 들어 있었다(물론 <씨네21>은 한권도 들고 가지 않았다. 산에 책을 들고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 <씨네21> 같은 잡지를 반기는 사람은 없다. 불쏘시개로 영 적당치가 않기 때문이다. 보기에 심히 좋으려다보니, 하기에 심히 나쁜 짓을 많이 한 종이라는 뜻이다. 그 안의 활자야 뭐라고 와글와글 그럴듯한 소리를 떠들든 간에 아궁이에서 타는 것은 뜻이 아니라 종이니까 말이다. 내가 연탄재는 걷어차지 못해도 <씨네21>은 심히 걷어차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요번에 윗말 사는 젊은 목수가 우리 집에 읽지 않은 채로 널려 있는 <씨네21>을 수거해가면서 “이거 잘 안 타는데” 했다면 말 다 했지).

컴 백 투 본론. 구르지예프를 지리산에 끌고 들어간 이유는, 나의 멘토들이 워낙 구르지예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 궁금증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멘토들은 생초보인 나를 놀려먹기 위해서였는지, 내 앞에서 구르지예프가 얼마나 재미있는 캐릭터인지를 침 튀겨 떠들어대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게 웬만하면 구르지예프는 읽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은근히 경고를 했던 것이다. 그것이 내 호기심에 더 불을 질렀겠지 물론. &#52703;, 자기들은 고수라서 읽어도 되고, 나는 하수라서 읽으면 안된다는 말이지. 어디 두고봐라. 보란 듯이 구르지예프를 졸업하고 말 테니까, 하는 심사가 당장에 발동했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

그런데, 멘토들의 말이 옳았다. <위대한 가르침을 찾아서>라는 한글 제목으로 출판된, 물경 3만원이 넘는 이 책은 나를 심히 심란하게 했는데, 책값도 책값이지만, “깨닫지 못한 자는 우주의 먼지로 돌아간다”는 구르지예프의 말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죽음이란 없다는 걸 확실히 알아버렸고, 그럼으로써 두려움으로부터 완벽히 벗어난 해피한 존재가 되었다. 뿐인가. 워쇼스키 형제가 어떻게 <매트릭스>를 만들게 되었는지, 조앤 롤링에게 <해리 포터>의 영감을 준 실체가 누군지, 할리우드가 우리 시대에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알고 싶죠? 메롱~~~), 영화잡지 기자나 편집장할 때는 아는 척했지만 하나도 몰랐던, 감독이나 작가 자신도 모르는 시시콜콜한 비밀을 한순간에 다 알아버리는 ‘전지의 시점’을 경험한 사람 아닌가.

그런데 동서양을 통틀어 ‘득도’한 사람 중에 가장 재미있고 역동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구르지예프는 깨닫지 못하면 달의 먹이가 될 뿐이라고 협박하는 것이다. 이 대목은 나를 한참 헷갈리게 만들어서, 우주의 스승님들에게 재빠른 답변을 촉구하는 일대일 질의를 여러 번 날렸지만, 돌아온 것은 “알려고 하지 마라. 알게 될 것이다”라는 능청스럽고도 여유작작한 메시지뿐이었다. 그들은 마치, 내가 몰입하는 RPG 게임의 게임마스터 같았다. 답답하면 네가 해결해봐봐봐봐!!!라는 것. 나는 하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혜로운 사람이므로, 답답해하지 않기로 즉각 결론을 내렸다. 언젠간 알게 되겠지 모. 그러니 여러분들은 절대로 구르지예프를 읽으시면 안된다. 말 그대로 절대로 절대로. 나 정도 되니까 그래도 그 대목에서만 막혔지, 여러분 수준에서 구르지예프를 읽는 것은 시간낭비다.

어쨌든 세상의 욕심 중에 깨달음에 대한 욕심만큼 큰 것도 없으려니와 그 욕심을 갖고 있는 한 깨달음이고 나발이고 말짱 도루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소득이었다. 그냥 바보가 되어라. 알려고 하지 마라. 알아야 될 것은 때가 되면 다 알게 된다. 그것이 내게 반복적으로 돌아온 답이었다. 그래서인지 지리산에 들어간 지 얼마 안돼서부터, 바보 아닌 척하고 사느라고 무지 피곤했던 나는, 이제야말로 본때있게 바보로 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