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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 배우 류승범
김혜리 사진 손홍주 2009-03-13

뜨거운 심장, 본능적 엇박

스무살의 그는 짝퉁 아르마니 티셔츠를 입고 껌을 질겅이며 건들건들 영화 속으로 들어왔다. 고개 숙인 채 치뜬 눈과 궁상맞게 쪼그려 앉은 포즈가 엄청 잘 어울리는 배우구나 생각했지만, 정작 본인은 어울리고 자시고 한 오라기 관심도 없는 게 분명했다. 모처럼 날아차기를 해도 목표물에 미치지도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류승범은, 끝내 홉뜬 눈으로 눈밭에 널브러진다. 그러나 쓰러진 그 청년과 빼도 박도 못하게 눈이 마주쳐버린 관객과 영화인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신동’형 배우의 탄생이었다. 2년 뒤 류승범을 대중 스타로 만든 드라마 <화려한 시절>은 극중 인물들의 구박을 통해 그에게 “맷집 좋은 놈”이라는 애칭을 선사했다. 된통 얻어터지고 돌아서서 “내 영혼까진 빼앗진 못할걸”이라고 구시렁거리는 류승범 때문에 한바탕 웃고 나면 휑하니 슬펐다. 너, 영혼은 그렇다 치고 당장 오늘 해질 때까지 서럽고 고달픈 일이 너무 많을 텐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대한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이 요약한 대로,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라는 주제를 구현한 캐릭터들을 통해 류승범은 난생처음 인생을 뜻대로 열어갔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품행제로>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이 이어졌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재능은, 양수겸장, 기습공격, 측면돌파로 쌩하니 질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20대 반환점을 돌고 찍은 영화 <주먹이 운다> <가족의 탄생> <사생결단>은 공인된 류승범의 걸출한 표현력이, 더 긴 호흡과 타이트한 화면의 압박 속에서도 능히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눈썹보다 길게 빠진 눈꼬리, 얼굴 절반을 역삼각형으로 덮는 입. 이목구비가 오목조목한 미남은 아니지만 길쭉한 선이 지배하는 류승범의 얼굴은 멀리서 봐도 표정이 선명하다. 비틀리고 구겨지는 변주의 가짓수가 끝이 없어서 단편 옴니버스 <이공>에서 함께 작업한 민규동 감독의 말대로 편집실을 행복한 고민에 빠뜨리는 표정의 편람을 과시한다. 풍부한 표현과 더불어 류승범 연기의 또 다른 고유함은 그의 몸에 내재된 ‘엇박’이다. <품행제로>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공동작가이자 중단된 프로젝트 <29년>을 류승범과 준비했던 이해영 감독은, 주어진 상황에서 엇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본능이 그에게 있다고 관찰한다. “인물들이 심각한 논의를 하는 장면에서 의자를 빼고 뒤에 앉아 다리 떨고 농담을 던져 심각함에 물을 타야만 직성이 풀리는 캐릭터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코미디 중 백미는 류승범의 엇박 기질을 활용하고 있다. 주인공 상환이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받은 텔레파시에 응대하는 대사, “방송실에 계세요?”가 예다. 어쩌다 멜로 연기를 할 때 류승범의 엇박자는 수줍음으로 나타난다. 영화에서 그는 로맨틱한 기분이 들면 햇빛에 눈이 부신 듯 찡그리는데 어찌 보면 울려는 것 같다.

우리 눈앞에서 끓어오르는 20대를 보낸 류승범은 요즘 부쩍 달라졌다. 아니, 축적된 변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슴없이 기독교 신앙을 언급하고 작은 행복을 예찬한다. 반항아의 투항이라고 실망할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없다. 일도, 방황도, 놀이도, 남들이 20년에 걸쳐 치를 분량을 10년 동안 밀도 높게 해치운 덕에 다음 단계로 진행도 빠른 걸까? “그렇죠. 우리는 한번 발 담그면 끝까지 가야 도로 나오니까요.” 류승범의 웃음 섞인 동의다. 차기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류승범과 일할 계획을 세운 이준익 감독은 “동시대 남자 배우 중 그만큼 야성적 내면이 그대로 연기에 구현되는 배우는 여전히 드물다”고 말한다. 우연한 데뷔 직후 그를 인터뷰했던 전 <씨네21> 조종국 기자 역시 “변했다고들 말해도 상대적으로 다른 배우들보다 본래 모습을 잘 간직한 배우”라고 평한다. 한편 이해영 감독은 “철부지 막내이기만 했던 인상에 언젠가부터 오빠의 이미지가 보인다”고 말한다. 생활의 변화가 그의 연기에 무엇을 더하거나 뺄지 우린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류승범이 인터뷰에서 열심히 들려준 이야기는 뜨거웠던 20대에 대한 안면몰수가 아니라 일탈과 월반의 선수가 찾아낸, 열정과 청춘을 연장하는 현실적인 방책으로 들렸다.

-1년 전 어느 인터뷰에서 2008년은 학생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움직이고 싶다는 희망을 말하셨어요. 실제로 어떻게 보냈나요? =‘개과천선’의 의미는 아니었고요. (웃음) 왜 삶의 방식이 조금 달라지면 되게 재밌잖아요. 저는 워낙 무엇이 재미있나 초롱초롱 살피며 사는 사람이라서 제가 경험 못한 아침형 생활이 어떤 것인지, 이른 아침의 ‘내추럴 하이’(자연스러운 고양감)가 어떤 건지 맛보고 싶었어요. 더운 여름날 편의점 파라솔 아래서 시원한 맥주를 마실 때 세상이 멈춘 듯한 느낌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영화를 위해 몸을 만들었다가도 촬영 끝나면 억한 심정으로 몸을 망가뜨린다고 한 적이 있죠? 실제로 <주먹이 운다> 마치고도 15kg 쪘고요. 하지만 방금 말씀하신 느낌을 구하게 됐다면 생활 습관도 달라질 거 같아요. =영화 끝나면 그동안 지긋지긋한 운동에서 해방된 것처럼 손을 놓아버렸죠. <야수와 미녀> 찍을 때는 79kg이 나갔어요. 가만히 있어도 살이 안 붙는 체질은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직업이 배우니까 살이 찌면 결국 빼야 하는데 그러기가 너무 피곤해서 이제는 평상시에 기본적인 운동을 하고 체력을 마련하려고 해요.

-류승범씨는 운동신경이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몸을 필사적으로 만들지는 않잖아요. 그 점이 늘 흥미로웠어요. =지금도 배에 왕(王)자 만들려고 운동하진 않아요. 몸의 미학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몸의 미학은 이런 거예요. 몸이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역사를 말해줄 때가 있잖아요. 우리가 말하는 노가다 근육도 그렇고, 걷지 않고 앉아서 일하는 현대인의 복부비만도 그렇고요. 제 직업은 모델이 아니고 배우라서- 배가 나온다거나 하면 곤란하겠지만- 필요 이상 몸을 만들면 오히려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웃긴 얘기지만, 몸을 만들기보다 만들어진 몸을 없애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2년 동안 먹을 것 안 먹고 몸을 만들어놓았는데 들어온 역할이 완전 아저씨라면요. 스스로 “아, 내가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데”하는 아까움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꺼리지 않을까요? 몸이란 것이 또 만들면 보여주고 싶거든요. 몸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그쪽으로 끌고 가게 되는 거죠. 배우는 어느 선배 말대로 하얀 상태로 있다가 뭐든 시키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헬스클럽에 가면 유산소 운동만 한다고 잔소리 듣는데 아직도 무거운 역기랑 씨름하는 사람들 보면 “아유 왜 저런 데 힘을 쓰지?”싶어요. (웃음)

-이준익 감독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견자 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오랜만의 영화라 각별한 점이 있나요.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현장에 네번인가 다섯번 나간 것이 다였고 <라듸오 데이즈>도 여러 배우가 같이 연기하는 장면이 많아서 스스로 느낌은 영화 찍은 지 아주 오래된 것 같아요. 언론에 알려진 <29년> 외에도 중단된 작품들이 있었어요. 쉬고 싶어서 쉰 게 아니죠. 그러다보니 작품 선택의 기준이 좁아지는 게 아니라 넓어져요. 며칠 전 <29년>의 이해영 감독님을 만나는데 당분간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 계속 가동하는 것이 일단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죠. 제작사쪽에서도 요즘은 “우리만 믿지 말라”고 해요. 과거에는 남의 영화가 먼저 들어가면 배우 뺏긴다고 안타까워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더 확정적인 자본을 끌 시간을 벌었다고 좋아하는 분위기예요.

활기차고도 어두웠던 10대

-여섯살 무렵 충남에서 서울로 올라오신 걸로 압니다. 그 이전 기억이 남아 있나요? =짤막짤막하게요. 온양 시내에서 주로 살았는데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시골에 머문 적이 있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서 뱀을 본 일이 기억나요. 긴 오솔길을 할머니랑 걸으면 아직 초저녁인데도 하늘이 까맣고 별이 무척 밝았어요. 잔디에 물 주는 호스를 틀어놓고 수영복 입고 형이랑 조스 놀이한 것도 기억나고요.

-태어날 때, 어머님 몸에 무리가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들었어요. 무사히 태어나게 해주면 목회자로 키우겠다고 기도드리셨다면서요. =그건 뭐, 어머니가 제 성향을 잘 모르실 때라 마음대로 정하신 거죠. (좌중 웃음) 어쨌건 결과적으로 모태신앙을 갖게 되었고 종교를 못 떠나요. 나름대로 거칠어지려고 해도 기본을 어쩔 수 없어요. 신앙이 곧 제 자유의지가 되어버렸어요.

-최근 들어 류승범씨의 신앙이 주목을 받지만 2001년 기사를 봐도 “찬송가를 쓰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신의 존재가 매일 자신 안에 작용하는 힘인가요? =매일 만나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돼요. 이따금 극한상황에서 무서우리만큼 가까이 다가와 대화를 하는 일이 있죠. 하지만 저는 종교를 친구나 지인에게 강권하지 않아요. 교회에서는 권하라고 말하지만, 아니 하나님이 나보다 능력이 좋으신 분이…. (좌중 웃음) 신이 매일 저를 작동하는 것까진 아니라도 작용하죠. 운전하다 앞차가 끼어들면 “아이시!” 하려다가도 “형제님, 축복합니다. 가시죠”한다거나. (폭소) 종교는 갖고 있다고 떠벌려야 딴 짓 못해요. 컴퓨터 배우려고 싸이월드를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 “크리스천이 담배 피우고 술 먹고 뭐하는 짓이냐”는 리플이 장난 아닌 거예요. 원래 남의 욕에 심장이 무딘데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담배도 지금 멈춘 상태고 클럽에서 디제이할 때도 주로 물을 마셔요. 10년 넘게 술과 담배를 해서인지 더이상 재미도 별로 없고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고비마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은 성장기였을 거라고 짐작해요. =부유한 환경에서 학업에 열중하기만 하면 미래가 보이는 처지가 아니었죠. 꿈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요. 그래도 불우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덕분에 선택이 빨랐죠. 어차피 초이스가 별로 없으니 빨리 선택해서 빨리 갔죠. 활기차고 좀 어두웠어요.

-활기차고 어두웠다고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품행제로> 같은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지만…. =사실 <품행제로>의 중필이라는 아이 보면 스산하거든요. 저는 중필이가 가슴 저렸어요. 어둠이 만성이 되다보니 견디는 방법을 알게 된 아이랄까. 10대 때 생각해보니 조직 생활은 못할 것 같았고 혼자 할 수 있는 일 중 음악에 목표를 뒀어요. 당시 컴퓨터 한대면 할 수 있는 미디음악이 유행이어서 천호동 이태원을 전전하면서 나이트클럽 DJ 형들을 쫓아다니며 음악과 디제이 공부를 같이 했는데, 으아 재능이 너무 없는 거예요. 지금도 제가 DJ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요. 제가 약간 박치 끼가 있거든요. 음치도 있고.

-설마! =배워보면 금방 알아요. 제가 아니다 싶으면 포기는 빨라요. 한데 그렇게 꿈을 접고 나니 그나마 밝은 어둠은 없어지고 어두운 어둠만 남았어요. 다크하게 살았죠. 지금 2000년, 2001년에 찍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면 영화 속 제 눈을 똑바로 못 쳐다보겠어요.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많았니, 묻게 돼요.

-그나저나 박치라는 말씀은 정말 의외입니다. 류승범씨의 대사, 액션, DJ 활동에 공통된 요소는 리듬감이라고 생각해왔거든요. =흑인의 리듬감은 리듬감이라고 안 하고 그루브(groove)라고 해요. 얘들은 백인의 그것과 달리 리듬이 엇박인데 일종의 박치인 거죠. 흑인음악을 들어보면 “딱 딱” 이 아니라 “딱 따닥 딱딱” 하는 마치 한국의 장단 같은 박자예요. 제게도 엇박의 리듬감은 있는 것 같아요. 딱 떨어지는 리듬감을 지닌 사람과 달리 전체적인 삶의 태도나 방식도 조금씩 어긋나 있고.

-힙합 음악도 같은 이유에서 좋아하는 건가요? =예전에는 음악을 들을 때 가사나 정서를 중요시했어요. 지금은 가사도 없는 하우스 음악,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좋아해요. 단순한 것을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음악인데 네가 알아서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느끼라는 음악이에요. 시니컬하죠. 똑같이 춤을 추고 있으면서도 어떤 이는 슬퍼하고 어떤 이는 기뻐해요.

-2007년부터 공식적인 자리에서 디제잉을 시작했습니다. 엊그제 강남 클럽에서 열린 한 대학의 졸업파티에서 플레이하시는 모습을 구경했는데요. 스타 DJ의 장단점이 있더군요.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는 직방인데, DJ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이 쏠려 사람들이 스스로 춤추고 즐길 때까지 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매번 그렇다면 힘들겠죠. 노는 데에 익숙한 클러버들이 모이는 자리는 또 달라요. 저도 에너지를 많이 받죠. 음악 틀다가 너무 흥분해서 떨어진 적도 있고. 하지만 엊그제 같은 행사는 제가 에너지를 확실히 빼앗기는 날이죠. 한창 나이에 공부하느라 놀이에 목말랐던 학생들이 클럽에 왔으니 팍팍 제 기운을 빼가는 거죠. (웃음)

돌다리, 두들기면 관객이 알아차리더라

-데뷔 초 인터뷰에서는 영화도 많이 안 본다고 했는데요. 그동안 활동하면서 음악, 패션 등 문화예술계쪽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한 걸로 보입니다. 그냥 어울리는 게 아니라 본인의 취향과 관점도 있는 것 같고요. 의식적으로 접근하고 배우신 건가요? =책으로부터도 배우지만, 저는 공부는 돌아다니면서 사람한테서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항상 많이 만나고 눈과 귀를 세우고 있어요. 다행인 것이 인복이 많아서 만남의 시간이 아까웠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전 배우들이 움츠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직업이 좋은 것이 다른 분야 아티스트들을 만나고자 하면 보통 사람보다 쉽게 만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식당에 걸린 좋은 그림을 보고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아무래도 일반 손님보다 성의껏 알아봐줘요. 배우가 관심분야에 대해 조금만 더 적극적이면 길은 훨씬 많이 보여요. 백현진 형도 그랬고 그런 식으로 만난 분들이 많아요. 만나서 그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느끼고 싶거든요.

-액션이 좋은 배우를 언급할 때 항상 거명됩니다. 류승범씨의 경우 역시 몸 연기의 근본은 춤이었다고 봐야 할까요? =사실 강동원 같은 친구들이 팔다리가 길어 검을 잡으면 동작이 멋지죠. 다만 액션에도 연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때릴 때도 왜 때리는지 왜 칼을 뽑는지 감정을 갖고 하려고 노력해요. 액션 잘하는 배우들 보면 동작으로만 소화해내는 게 아니라 연기를 함으로써 좀더 잘하는 것처럼 보여요. 1번부터 10번까지 합을 짰다면 동작으로만 외워하는 것이 아니라 합을 완전히 숙지해서 툭 치면 그냥 나오게 만들고, 그 다음에 연기를 하는 것이죠. 성룡의 동작은 이연걸만큼 멋있지 않지만 동작의 마무리와 연기가 뛰어난 거예요.

-감독들이 류승범씨를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본능, 순발력, 직관 등이에요.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제작기를 보면 연기를 하다 보니 정말 계란을 밟아도 안 깨졌다거나 와이어도 없이 대뜸 물구나무서기에 성공하는 모습이 나오잖아요? 이상한 연상이지만 저는 그런 모습이 상징적인 것 같아서 재밌더라고요. 본능적으로 뛰어난 배우라는 평가에 자부심을 가졌던 시기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자부심까지는 아니에요. 단 우연하게 데뷔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배우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말해주는 면은 있는 것 같아요. 본능을 믿는다기보다 제 자신을 믿어요. 내가 이 돌다리를 건너기로 선택했고 감독이랑 함께 바위랑 작은 돌을 멀찍이 가까이 배열했어요. 그러면 건널 때는 그냥 당당하고 씩씩하게 쭉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또 두들기고 흔들리면 관객이 알아차려요. 하지만 천재도 아니고 “난 100% 본능적인 배우”라고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해요. 전세계를 통틀어 혹시 그렇지 않나 의심되는 배우는 드니 라방(<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개런티 받고 일하는 배우 중에 “난 본능에만 충실하면 돼”하면서 촬영 전날 두 다리 뻗고 자는 배우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상대적으로 직관이 발달한 배우쪽에 속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텐데요. =다른 배우를 두고 어느 분이 쓴 말에 감탄한 적이 있어요. “10점은 못 맞추는데, 4점, 5점짜리 과녁을 화살로 뻥 뚫어버리는 배우”라는 표현이었어요. 10점을 딱 쏘면 박수가 쏟아지는데, 우리 같은 배우는 4점, 5점을 쏘되 아예 관통해버리니까 보는 사람이 멍해져서 점수 매기는 걸 잊어버린다는 거죠. (좌중 웃음) 그래서 과녁을 다시 설치해주고 쏴보라고 하면 또 뚫어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10점을 못 맞춰도 계속 일은 할 수 있는 거예요. (웃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배우”같은 식상한 표현에 비해 참 훌륭한 묘사였어요.

-(웃음) 정진하겠습니다. 봉태규씨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2000년에 영화상 신인상 후보로 시상식에 갔다가 알아봐주지 않아서 2층에 앉은 적이 있었다면서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찍고 <와이키키 브라더스> 들어가기 전에 옥수동 형네 집에 얹혀 살 때였어요. 깡소주 사와서 새우깡이랑 먹고 있는데 태규가 우리집에 놀러와 자장면을 시켜먹었어요. 태규가 시상식은 가고 싶은데 혼자 가긴 뻘쭘하니까 나를 엮으려고 작전을 세운 것 같아요. (웃음) 당시 배우라는 의식도 없었던 저는 생각도 전혀 못했는데 태규가 시상식 구경 가자는 거예요. 택시 타고 세종문화회관에 갔는데 쪽팔려서 차도 멀찌감치서 내렸어요. 레드카펫 말고 옆으로 올라갔는데 후보라고 말해도 문을 지키는 분이 모르는 거예요. 어찌어찌 스탭이 나와서 입장은 했어요. 원래 신인은 2층에 앉는 줄 알고 자연스럽게 2층에 앉아 있는데 후보 호명할 때 옆자리 관객이 무슨 큰일난 것처럼 저를 흘끔거리는 거예요. 그 순간까지 아무렇지도 않다가 왠지 무안해져서 태규를 끌고 도중에 나왔어요.

-<와이키키 브라더스> 포스터가 아직도 기억나요. 류승범씨가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었죠. 역할 비중을 생각하면 뜻밖이었어요. =흑백 사진인데 기태 머리만 빨갛죠. 30대 세명은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축 처져 우중충하게 걷고 있는데 영화 속 유일한 20대인 기태는 거기 딸려가면서 뒤를 돌아보며 웃고 있어요. 어딜 가는지도 모르면서 좋은 거죠. 그 미소는 인생의 뒤를 돌아보는 웃음이 아니라 관객을 바라보며 영화의 의미를 전달하는 거죠. “나 어딘가로 가요. 기분 좋아요.”

-<품행제로>는 배우 류승범이 가진 표현력의 진열장입니다. 이소룡 연기도 해보고 송강호 연기도 해보고, 지금 보면 그맘때 사진첩 보는 기분이겠어요. =중학교 시절이라고 똑같이 말해도, 누구는 수학여행을 누구는 체육대회를 기억하잖아요. <품행제로>는 제 20대에 그런 추억이에요. 굉장히 재밌는 시절이었죠. 월드컵이 있었고 연애도 시작했고 돈도 벌기 시작할 무렵이었어요. 그즈음 내 길이 미세하게 열리는 걸 느꼈어요. 그때까지는 교회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한번도 실감 못했거든요. (좌중 웃음) “나도 사람이구나, 뭔가 할 수 있구나” 처음 느꼈어요.

신파 같은 정박보다 엇박에 끌린다

-류승범씨 연기는 유난히 혼잣말이 많아요. <품행제로>에서는 상대를 때리면서도 두려움을 감추느라 어쩌고저쩌고 말이 많고,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상환도 ‘아유’, ‘저기’하는 식으로 사이 메우는 혼잣말이 끊이질 않죠. <다찌마와리…>의 문어체 독백은 말할 나위도 없고요. =지금은 여백에 끌리지만 당시에는 여백이 싫어서 꼭 채워넣어야 했어요. 대사도 말이니까 “너 밥 먹었어? 뭘 먹었어?” 하기보다 “야, 너 밥 먹었어? 아니, 근데 뭘 먹었는데?”라고 하는 편이 더 찰지고 맛있다고 생각한 거죠. 지금이라면 “밥 먹었어?”그러고는 한참 콤마를 찍겠죠. 제 성향이 바뀐 건 음악 들을 때 실감해요. 전에는 웅장하게 시작해서 하이라이트가 다시 하이라이트를 낳는 모든 걸 주는 음악을 선호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끝까지 계속 줄 것처럼 안 주는 음악이 좋아요. 다 듣고 나서 “야잇”하며 화가 나서 또 듣는 거예요. (웃음) 근데 그 긴장이 클라이맥스보다 더 미쳐요. 일렉트로니카 음악 중 미니멀이라는 장르는 기본 리듬과 멜로디 하나로 이루어지거든요. 그래서 누구나 음악을 만들지만 또 누구나 훌륭한 걸 만들진 못해요. 거기에 숙제가 있는 거죠. 누가 침묵할 때 “저 사람은 많은 걸 내면에 안고 있어서 침묵하는 거구나”하는 거랑 “아, 쟤는 말을 하면 깨니까 안 하는구나”는 구별되잖아요. (폭소)

-웃을 포인트를 주지 않고 끌고 가다 끝에 가서 피식 바람이 새게 만드는 코미디에 능해요. 다들 진지한 분위기에서 심각한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바람을 빼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캐릭터에 드러나고요. =그것도 역시 엇박의 일종이죠. 충청도에서 자라진 않았어도 핏속에 있나봐요. 형이 만든 <짝패>에도 나오지만 충청도는 살벌한 걸 살벌하게 표현 안 해요. 가령 사람을 죽일 때 “아프지? 아프지?” 하면서 때리다가 죽으면 “죽으니까 사람이여” 이러는 거죠. 시니컬하잖아요? 저도 그런 유머가 좋아요. 코미디뿐 아니라 슬픔도 정박 아닌 엇박이 좋아요. 코미디건 멜로건 너무 정직하면 신파처럼 느껴져요. 예술은 현실에서 평면만 보이는 감정을 끄집어내다가 입체적으로 만드는 작업이잖아요. 곧이곧대로 옮긴다면 우리가 할 일이 뭐 있겠어요.

-<아라한 장풍대작전> 마지막 결투장면도 생각나네요. 흑운(정두홍)이 비장한 구세주로 등장해 세상을 구제하려고 하는데 상환이는 놀이로 맞서잖아요. “아 왜 이러셔? 심각하게” 하면서 널빤지를 스케이트보드처럼 올라타고 싸웠죠. =일부러 목소리도 한번 까뒤집어서 연기했어요. 흑운이 한대 치면 “아이씨, 배 아프잖아아아”하면서 투정부리는 톤으로 갔죠.

-연기생활에서 <주먹이 운다>가 두 번째 중요한 지점 같습니다. 그전까지 별로 없던 클로즈업도 많았고 반면 표현은 최소화됐죠. 평소 매우 풍부한 눈과 입의 움직임을 대폭 제어했어요. 뭐랄까. <품행제로>의 중필이 말할 내용이 하나면 열 마디 하는 아이였다면 <주먹이 운다>의 상환은 할 말이 열개라면 한마디하고 마는 성격이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연장선 위에 있는 연기이기도 해요. <품행제로>가 과장과 허풍으로 자기 속내를 감추었다면 <주먹이 운다>는 다른 방식으로 감춘 거죠. 상환이가 딱 한번 우는데, 할머니 면회실에서 눈물을 흘리잖아요. 할머니가 맨정신이었다면 못 울었을 텐데 넋을 놓고 자기를 못 알아보니까 혼자라서 운 거예요. 사람이 다 그래요. 스스로에게도 솔직해지지 못하고 주위의 딴 것을 뜯어다가 자기를 포장하죠. 내 학교, 사는 동네, 그런 나 아닌 것들로 가짜의 나를 만들고 그것이 점점 커져서 마침내 자신도 스스로 어찌할 수 없게 되고, 그걸 지키기 위해 살잖아요.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비겁하다기보다 솔직해지기에는 환경이 너무 받쳐주지 않는 아이들이었어요. 사랑스러운 것까진 아니라도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인물, 영화에 담길 만한 인간인 거죠.

-<주먹이 운다>를 마치고 연기하는 일이 재미없어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적 있어요. 그건 직업으로 연기한다는 사실에 따라오는 여러 요소를 받아들이기 힘겨워서 한 말인가요? =짧은 시간이지만 그때까지 앞만 보고 왔잖아요. 근데 어느 순간 내가 인감도장 갖고 이번에는 이 영화, 다음에는 저 영화 도장 찍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아마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그때까지도 갈등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시 심각하게 유학을 고민했죠. 언젠가는 나이 들어 떠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남들이 인정하건 안 하건 전 이제 평생 연기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몇년의 공백은 차이가 없거든요. 그래서 불황이라 해도 불안하지는 않아요. 다만 약간의 생활고가…. (웃음) 어려서 일을 시작해 돈을 허투루 썼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건 꼭 해야 하고, 전셋집에 인테리어를 하질 않나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곤 했죠.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왜 단역이 오버를…”

-<가족의 탄생>은 당시로서는 공효진씨와 공연한 사실 자체가 외부자에겐 놀라운 일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공효진씨 최고의 연기라고 생각하고, 두분이 함께한 장면들이 무척 좋았어요. 출연에 망설임이 없었나요? =완전히 다시 연애는 아니었지만 잘 지낼 때였죠. 1년 정도 헤어진 건 우리가 연애는 좀 안 맞는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지 서로 사람한테 실망한 적은 없었거든요. <사생결단>을 찍고 있었는데 김태용 감독님이 승범이가 하면 어떨 것 같냐는 말을 꺼내셨고 효진이가 선뜻 쿨하게 저한테 연락을 한 거예요. 저도 두번 생각하지 않고 일단 시나리오를 달라고 했는데 참 좋았어요. 카메오를 원래 좋아하진 않지만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말하기엔 <복수는 나의 것>부터 <만남의 광장>까지 카메오 출연이 꽤나 많잖아요? (웃음) =일단 하기로 하면 카메오로 인식하지 않고 똑같은 역할로 봐요. 하는 역도 없이 얼굴만 내미는 카메오는 싫어요. 서너신만 나와도 시나리오 전체를 읽어요. 단 한 장면 나와도 필요없는 인물은 없다고 보거든요. 시나리오상 불필요하더라도 좋은 연출자는 결국 필요를 불러일으켜요. 그런데 <가족의 탄생>은, 우와 서러웠어요. 나름 준비를 많이 했거든요? 감독님, 촬영기사님과 설정과 캐릭터를 의논하고 그랬는데,“왜 단역이 오버를…” 하는 공기가 현장에서 느껴지는 거야. (폭소) 그래서 그냥 상의 안 하고 준비한 연기를 했죠. 근데 모니터를 보니까 내가 없어! 무슨 설정을 해도 내 대사의 반은 효진이 반응숏인 거예요! 몇신 없으니 디테일로 승부하려고 설정이 무지 많았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대화를 하다가 여자 앞에서 양말을 털면서 신는 연기가 있어요. 그걸로 전 그 집의 공기를 표현한 거예요. 또 여자 앞에서 양말을 턴다는 행위로 둘이 살림을 했던 것 같은 느낌을 전한 것이고 젊은 애들은 하지 않는 동작이니까 인물의 나이도 어느 정도 표현한 거죠. 그런데 얄짤없이 넘어가더라고요. (좌중 웃음)

-<만남의 광장>에서 부임하는 길에 지뢰를 밟아 며칠이나 꼼짝 못하는 교사 역으로 출연해 ‘장면 도둑’ 소리를 들었는데요. 연극 워크숍처럼 하나의 상황을 주고 끝없이 변주하는 연기라 본인도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시간 경과와 설정은 시나리오에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대사와 행동을 만들었어요. <주먹이 운다>와 <사생결단> 같은 지독한 영화를 한 다음이라 대놓고 희극을 하고 싶었던 욕구를 나름 해소했어요. 그런 경우는 완전 품바짓을 해야 해요. 피에로는 자신이 미쳐 있지 않으면 딱 걸리거든요. 쌈마이라고 욕 먹는 걸 무서워하면 안돼요. 쌈마이의 끝을 가줘야 욕을 안 먹어요. 그런데 다 찍고나서 퇴장이 흐지부지한 것 같다고 추가촬영을 하자는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제가 연기를 좀 과하게 한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렸죠. 시나리오에 없던 신이 필요해졌다는 건 제가 잘못 했다는 뜻이거든요.

-출연작을 보면 공효진씨 정도를 제외하면, 경력이나 모든 면에서 강한 남자배우와 공연한 예가 많아요. 백찬기 선생 같은 TV 대선배부터 안성기, 최민식, 황정민씨까지. 차기작 후보 중에 <용서는 없다>라는 작품도 설경구씨와 나란히 출연할 가능성이 있다고 들었고요. 남자쪽이 좀더 편합니까? =생각보다 제가 여자를 잘 못 대해요. 누나들이 도리어 편하고 또래 이성은 불편해요. 특히 요즘 또래 여배우들은 너무 예쁘잖아요. 저만 꼭 뒤떨어진 인간 같고 나만 연예인, 배우 아닌 거 같아요. 시상식 같은 데를 가도 왠지 뒤에 가서 비웃고 쟤는 왜 여기 왔냐고 할 것 같다니까요. (웃음) 근데 최민식 선배님, 황정민 형 만나면 편안한 것이 같은 부락 식구 같아요. (좌중 폭소)

-그렇다면 여자를 친구로 둔다는 것이 류승범씨한테는 쉬운 일이 아니군요. =거의 불가능하죠. 저는 남녀는 친구가 되기 어렵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보거든요. 덤덤해지지 않으니 이성을 만나기 두렵죠. 전 여자친구가 있으니까. (웃음) 무슨 말이냐면 남녀불문하고 저는 남성/여성으로서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우리 배우들은요. 결혼해서 자식이 생기고 할아버지가 되어도 누군가의 감정을 빼앗아와야 하는 직업이니까. 제가 여자라면 아직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고 설렐 거 같아요. 미키 루크가 재기할 수 있었던 것도 아직 촉촉함을 간직해서라고 생각하고요. 브래드 피트가 천재라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 자기를 참 잘 알잖아요. 장르영화의 거친 역도 하지만 배우로서 여자들에게 언제든 탄성을 자아낼 힘을 끌고 가니까요.

옷 입기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

-최근에 옷에 대한 집착이 없어졌다고 밝히긴 했지만, 옷 입기를 즐거워하시잖아요. 한때 쇼핑 중독이었다고 표현한 적이 있기도 했죠. 옷 입는 즐거움도 여러 가지일 것 같은데요. =옷은 저한테 그날의 기분을 만드는 도구예요. 제가 옷을 꾸며 입는 이유는 자애(自愛)라고 해야 하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이에요. 사실 옷 잘 아는 사람들이 옷 모르는 사람보다 돈은 덜 쓸걸요? 잘 모르는 사람이 백화점 가서 한꺼번에 사죠. “난 돼지고기를 좋아해”라는 말과 “난 옷을 좋아해”라는 말은 다르지 않아요. 다만 전에는 옷에 허비한 에너지가 많긴 했어요. 말하자면 다른 거 안 먹으면서 돼지고기 좋다는 곳마다 쫓아다닌 거죠. 그런데 이젠 확실한 내 스타일이 생기니까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있는 옷으로 돌려입고, 막아입어요.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무조건 편안하게. 과거에 옷에다 저를 맞췄다면 이제 옷이 나한테 맞춰야 해요. 그리고 저는 솔직해졌으면 좋겠어요. 옷 잘 입고 겉모습 화려한 배우를 보면 “쟤는 영혼이 맑지 않고 허영기가 있어. 저런 데 신경을 쓰니 연기적 에너지가 덜할 거야”라는 편견이 있잖아요. 반대로 허름하게 하고 다니면 막연히 연기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든가. 사실 그렇진 않거든요.

-그래도 ‘패셔니스타’로 인식되고 패션 에디터, 디자이너와 가까우실 텐데 “요즘 스타일이 나빠졌다”거나 감을 잃었다는 말을 듣게 되는 일이 걱정되진 않나요? =받아들여야죠. 이정재씨가 한 시대 풍미한 패션 아이콘인데, 그렇다고 지금 빅뱅 옷을 입을 순 없잖아요? 그건 오히려 이뤄놓은 바를 깎아먹는 거죠. ‘패셔니스타’라는 호칭도 잘 모르겠어요. 저, 꽤 오랫동안 워스트 드레서, 패션 테러리스트로 불렸거든요. 어느 날 평가가 바뀐 거예요. 기본적으로 사람이 멋있어야지 옷이 사람을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임스 딘이 패션 아이콘이 된 데에는 그의 성격과 표정이 포함돼 있는 거죠.

-TV 연예 프로그램이나 가끔 나올 때면 영화 속 모습과 크게 달라서 희한했어요. 굉장히 공손하고 좀처럼 나서지 않으려는 태도가 확실히 보이거든요. 고정 이미지가 강해서 방어를 하는 걸까 싶기도 했고요. =데뷔 초에는 방어하려는 태도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배우에 대해서는 편견이 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조금만 변해도 달라보일 거 아니에요? (웃음) 제가 원래 일대일 만남은 편한데 다수를 상대로는 불편해요. 학교 다닐 때도 교실 안에서는 장난을 못 치고 하굣길에 친한 친구 앞에서는 난리였죠. 게다가 “35번, 일어나서 읽어봐”하면, 글씨가 입체로 보이고 철자를 틀리게 읽는 난독기도 있어서 수업 시간에 공포가 좀 있었어요. 데뷔 뒤에도 라디오를 할 때면 불안감이 남아 있었죠.

20대의 설레는 마음 유지하고파

-동물을 키우는 일을 무서워한다고 말한 적 있어요. 류승완 감독님에 의하면 어디 나들이 가면 조카들이 차 근처에만 가도 다칠까봐 굉장히 챙기고, 감독님이 어디 멀리 가도 사고날까 걱정이 많다고 들었고요. 가까운 존재를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강한 편인가요? =무의식에 있을지는 몰라도 트라우마까진 아닌 것 같고요. 동물은 원래 싫어했는데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는 중이에요. 효진이가 기르던 갈색 푸들을 맡았어요. 제가 워낙 걱정을 사서하고 늘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요. 예를 들어 효진이가 상을 타오면 기쁜 날이잖아요? 요즘은 달라졌지만 예전의 저는 축하하기보다 “야, 넌 이제 X된 거야” 하는 반응을 보였어요. 제가 상을 받아도 “와, 이제 난 끝장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빡세게 살아야 되나, 큰일났다.” (폭소) 그런데 효진이 만나서 제가 사람 된 거예요. 이 친구는 정말 낙천적이에요. 완전 신이 내린 평범한 기준에 합당한 삶을 사는 아이거든요. 그런데 평범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세상이라 독특한 매력을 갖게 된 거죠.

-거기서 평범하다는 말은 비범의 반대말이 아니군요. 신이 인간에게 의도한 방식대로 산다는 뜻? =‘노멀’이죠. 희로애락을 다 받아들이고 자연을 사랑하고… (기자가 웃자) 진짜로 효진이는 그래요. 분리수거 꼭 해야 하고, 환경운동에 꿈이 많고, 저보고도 이제 너도 시작하라고 말해요.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형과 형수(영화제작자)가 사는 모습이 류승범씨가 지닌 결혼의 상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까? =결혼생활의 현실을 지켜보았기에 숙제가 많다고 느껴요. 연상의 친구도 많다보니 유치원 다니는 아이를 둔 연배의 이야기도 많이 듣거든요. 과연 나라는 사람이 현실을 헤쳐갈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죠. 그러나 현재로서는 꼭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왜냐하면 그거 해야 사람 되는 것 같아요. 못 이길 것 같아서, 희생과 사랑이 두려워서, 피하는 건 비겁해 보여요. 그만큼 힘들다는 건 분명 그 너머에 뭔가가 있기 때문이겠죠.

-류승범씨에게 20대를 보내는 일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일도 무척 많이 했고, 배우로서 청춘의 얼굴을 연기하다보니 남보다 두세배 인생을 살며 청춘의 행복과 힘겨움을 경험했을 테니까요. 시네마테크 행사에서 <아이다호>를 추천작으로 고르신 것이나, 신앙에 다시 부쩍 진지해진 것도 그래서 아닐까 짐작했어요. =스물아홉, 서른이라는 숫자가 주는 느낌이 굉장한 건 아닌데, 고민의 폭이 점점 커져요. 저란 사람이 고민하길 좋아하고 자기를 혹사해야 제대로 산 것처럼 느끼는 피곤한 타입이에요. 심장이 멈추지 않고 항상 뜨거웠으면 좋겠어요. 늘 설레지 않으면 배우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20대에는 나이 먹은 선배들 삶이 재미없을 것 같았지만 나이 들어보니 다른 재미가 있잖아요? 아이돌들 보면서 “너네도 나이 들어봐라. 알록달록한 옷 입고 찍은 사진 다 태우고 싶단다” 할 수 있는 재미도 있고요. (폭소) 그래도 앞으로 30년을 더 산다고 치고, 30살에서 60살까지 한번 살래, 20대를 세번 살래 묻는다면 후자를 고르긴 할 것 같아요 에너지를 잃고 싶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좌충우돌을 계속해도 사람들이 아무 말없이 기다려 준다는 점이 좋겠죠. (웃음)

追伸 2월 말 서울의 한 클럽에서 열린 어느 대학 졸업파티에 류승범이 DJ로 나선다고 하여 구경하러 갔다. 밤 11시를 넘기자 후드를 눌러쓰고 흰 캔버스화를 신은 그가 생수통을 들고 도착했다.“일 마치고 가서 빨리 쉬어야죠”라는 엷은 피로감이 밴 잔잔한 말투가 영락없이 일하러 온 사람이다. 젊은이들의 환호로 시작된 그의 플레이는 1시간 반가량 계속됐다. 천변만화하는 컴퓨터그래픽 영상과 일렉트로닉 리듬의 무궁동(無窮動) 속에, 부지런히 음반을 고르는 류승범의 자리만 이상하게도 동그마니 고요해 보였다. 이틀 뒤 인터뷰에서 내가 던진 많은 물음은, 결국 민망해 꺼내지 못했던 하나의 질문을 에둘러간 샛길이었는지 모른다. 안정과 애정의 결핍으로부터, 그러니까 머리가 아닌 몸으로부터 예술을 길어 올린 아티스트의 육체가 시간과 함께 자연히 변해갈 때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류승범이 다른 이야기 끝에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대답을 들은 기분이 되었다. “배우는 내 직업이고 좋은 인간으로 살아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예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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