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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의 고통스러운 드라마 <도쿄 소나타>
김용언 2009-03-18

synopsis 아빠 사사키 류헤이(가가와 데루유키)는 회사에서 서무과장으로 뼈를 묻을 줄 알았지만, 하루 아침에 실직당한다. 밤샘 아르바이트와 대학교 수업을 무료하게 오가던 큰아들 다카시(고야나기 유우)는 갑자기 미군에 입대하겠다고 결심한다. 언제나 밥상을 차리고 도넛을 굽지만 식구들 모두에게 소외당하는 엄마 메구미(고이즈미 교코)는 조금씩 허물어진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아들 켄지(이노와키 가이)는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몰래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다. 피아노 선생님은 켄지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차리고 음악 전문 중학교 진학을 권한다.

시간 순으로 진행되는 <도쿄 소나타>에선 단 한번 ‘3시간 전’이라는 자막이 뜨며 과거로 돌아간다. 류헤이와 메구미가 백화점에서 마주치는 이 장면을 전후로, 크나큰 사건을 겪은 류헤이와 메구미의 각각의 마지막 대사는 “아니야!”다. 아니다, 아니다. 삶에 대한 전적인 부정, 혹은 다가올 파국을 향한 미약한 절규.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음으로써 비로소 인물들은 다시 한번 삶의 굴곡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야!”

또다시, 경제학의 영역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뜻밖의’ 가족드라마 <도쿄 소나타>는 2008년 하반기 지구 전체를 뒤덮은 경제 불황의 공포를 예견이라도 하듯 실존과 생존의 경계선을 위태롭게 넘나드는 한 가족의 고통스러운 드라마를 펼쳐 보인다. “뭐든지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왜 우리를 받아들여주지 않아?” 실직 가장은 각목을 휘두르며 울부짖는다. 일자리를 야금야금 빼앗는 외부인(특히 중국인)에 대한 분노, 무료 식사 배급과 구직센터 앞 기나긴 행렬에 끼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 ‘미국이 전세계를 지켜준다, 미국이 흔들리면 우리도 큰일난다’라는 막연한 기대감, 청소하다가 문득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칼을 들고 복면 쓴 강도가 기다리고 있다는 놀라움. <도쿄 소나타>를 구로사와 기요시의 최고작이라고 꼽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공포영화의 필터 없이도, 현대사회의 일상에서 우리가 시시각각 맞닥뜨리는 낯선 두려움을 예민하게 포착할 수 있음을 재확인해주는 작품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공포스러운 삶의 진창 속에서 충분히 뒹군 인물들을 위로하는 건 판타지에 가까운 장치들이다. 무엇보다 켄지가 드뷔시의 <월광>을 연주하는 시퀀스는 명불허전이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창문으로 바람이 살랑 불어들어와 커튼도 나부낀다. <빌리 엘리어트>의 엔딩신을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엔 카타르시스의 익숙한 쾌감이 부재한다. 음악이 그렇게 흘러가고, 삶도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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