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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으로 버무린 추리 활극 <그림자살인>
주성철 2009-04-01

synopsis 일제시대 한 세도가의 자제 민수현이 사라진다. 무능한 종로서 순사부장 영달(오달수)은 민수현을 찾는 데 혈안이 되는데, 의학도 광수(류덕환)는 해부실습을 위해 우연히 주워온 시체가 바로 그 민수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살인 누명을 쓸 위기에 처한 그는 사설탐정 진호(황정민)를 찾아가 사건을 의뢰한다. 주로 불륜현장 급습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거액의 현상금을 보고는 사건에 뛰어들고, 서커스단의 단장(윤제문)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단장과 영달 사이에 은밀한 커넥션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림자살인>을 보면서 여러 작품들이 겹쳐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애초 <공중곡예사>라는 좀더 멋진 제목으로 시작했던 영화는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요소들이 읽히게 만들었다. 그래서 시대적 배경으로 얼핏 보아 지난해 개봉한 두편의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과 <모던보이>를 떠올리게 하지만 서 있는 지점은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진호와 광수의 관계는 셜록 홈스와 왓슨 박사를 연상시키고, 만시경(일종의 망원경)과 은청기(몰래 엿듣는 기계) 등을 만들어 진호를 돕는 여류발명가이자 과학자 순덕(엄지원)의 존재는 <007> 시리즈의 만능 발명가 Q를 떠올리게 하며, 경성 거리의 한옥 지붕과 저택의 유리창을 뚫으며 쫓고 쫓기는 모습은 영락없이 <본 아이덴티티> 추격전의 일제시대 버전이다.

이처럼 무엇 하나 독창적이라 부를 만한 지점은 없다 해도 그 모든 것들을 시대의 경계를 넘어 ‘퓨전’으로 버무린 솜씨와 노력은 꽤 경탄할 만하다. 그래서 또한 시대는 좀더 앞서지만 비슷한 소재의 <혈의 누>(2005)와 전혀 다른 맥락 위에 놓여 있다. 익숙한 서구영화의 추리 활극적 요소를 기어이 우리 토대 안으로 끌어온 영화라고나 할까. 한 사람이 끄는 인력거에 두 사람이 타서 발빠른 도망자를 쫓는 이해 불가능한 상황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그것은 <슬리피 할로우>(1999)나 <프롬 헬>(2001)의 한국적 변용이기도 하고, 혹은 서부극의 마차 추격신의 변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림자살인>의 그런 요소들은 한국영화에서, 더구나 시대극에서 ‘이런 것도 가능하다’는 꽤 진취적인 시도로 인정하고 싶다. 장르영화의 외연은 그렇게 해서 넓어지는 것이니까.

그렇게 시대 재현을 비롯한 디테일은 풍부하고 흥미롭지만 정서적인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조건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의도이겠지만, 일제치하 연쇄살인의 근원과 여파, 당대의 이면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들, 그리고 정체를 숨길 수밖에 없는 여류발명가의 존재와 과거를 애써 기억에서 지우려고 하는 진호의 모습 등 당시 근대화의 풍경과 맞물리는 여러 요소들이 좀 더 깊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탐정의 우스꽝스런 모습과, 과거 실제 사건이라 해도 모두가 수긍할 만한 사건의 무거움 자체가 큰 교집합을 이루기 힘들어서다. 더불어 좀더 대중적인 호흡의 웰메이드 영화로 완성하고자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거다. 여러모로 꽤 눈여겨볼 만한 신인감독의 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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