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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찾으러 떠나는 로드무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이영진 2009-04-22

synopsis 명은(신민아)은 엄마의 죽음 소식을 듣고 제주도를 찾는다. 명절에도 좀처럼 내려가지 않던 고향이다. 그곳에는 생선가게를 하는 언니 명주(공효진)가 초등학생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장례를 치르고 난 명은은 자신의 아버지를 찾겠다며 명주에게 이틀 동안의 여행을 제안한다. 자신은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니 길잡이로 나서라는 것이다. 명주는 망설임 끝에 아버지가 다른, 열살 터울 나는 명은의 청을 받아들인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국도변. 자동차 한대가 논밭에 처박혀 있다. 차에선 두 여자의 신음이 새어나온다. 사고차량을 뒤따르던 남자가 두 여자를 간신히 구해낸다. 몸을 가누기도 어려울 텐데 두 여자는 갑자기 ‘네 탓, 내 탓’ 고성을 지르며 싸운다. “비 오는데 왜 이렇게 싸우고들 지랄이여!” 남자는 어이가 없다. 미혼모라고, 사생아라고, ‘근본없는’ 두 여자는 계속 싸운다. 얼마 뒤 사고현장에 도착한 앰뷸런스, 문이 닫히면 붉은 글씨가 슬쩍 보인다. “당신의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두 자매가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는 로드무비다. 언니 명주는 친자식 이상으로 아껴줬던 남자를, 동생 명은은 친자식을 버리고 떠난 남자를 찾아 떠난다. ‘가족’에 기대서 살아온 명주에게 여행은 애틋한 기억의 환기지만, ‘가족’을 외면하고 살아온 명은에게 여행은 끔찍한 기억에 대한 복수다. 그러나 사사건건 부딪치던 두 자매의 발걸음을 가로막은 건 교통사고만이 아니다. 아버지를 찾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 명은은 자신이 곧바로 서울로 돌아갈 수 없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가족을 소재로 삼았지만,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질문은 좀 다르다. ‘어쨌거나, 우리는 가족 아니던가요?’라고 촌스럽게 반문하지 않는다. 두 자매는 성인이 된 뒤에도 여전히 ‘길 위에서’ 좌표를 찾지 못하고 헤맨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결핍’, 때문인가. 명은은 아버지 얼굴 모르는 사생아다. 명주는 아버지 없는 딸을 키우는 미혼모다. 영화의 마지막, 우리는 되묻게 된다. ‘결핍’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거나 주입되는 것이라고. <키다리 아저씨>의 변형처럼 느껴지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반전 혹은 진실의 의미는 그렇게 읽힌다.

“희한한 인연이구먼.” 여행 중 만난 누군가는 두 자매의 관계를 그렇게 부른다. ‘그녀들’만 희한한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족쇄 또한 따지고 보면 우연의 점철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감독은 “편하게 기대고, 쿨하게 해어지는” 그런 가족을 꿈꾼다. “당신의 가족입니다”라는 강요의 단정보다 “당신의 가족일 수 있습니다”라는 유연한 가정이 필요하다는 주문을 덧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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