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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일관된 세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화정 2009-05-13

synopsis 제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은 영화감독 구경남(김태우)은 우연히 그곳에서 오래전 헤어진 후배 부상용(공형진)을 만난다. 상용의 권유로 그의 아내 유신(정유미)과 술을 마시지만, 얼떨결에 파렴치한으로 몰리고 그는 그길로 영화제를 떠난다. 12일 뒤, 학교 선배이자 제주영상위원회에서 일하는 고 국장(유준상)의 초청으로 특강을 하러 제주도에 내려간 구경남은 그곳에서 평소 존경하던 화가 양천수 선배(문창길)를 만나고 그와 재혼한 부인이 대학 시절 자신의 첫사랑 고순(고현정)이란 걸 알게 된다. 고순은 예전의 감정이 지금도 지속 가능한지 물어오며 구경남에게 따로 만남을 갖자고 요구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홍상수 감독의 9번째 영화지만, 7번째 영화라고 해도 혹은 8번째 영화라고 해도 크게 차이가 없는 영화다. 그는 여전히 <생활의 발견>과 <극장전> <해변의 여인>을 오가며 자신의 영화를 반복, 재생산하고 있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은밀하게 느껴지는 솔직한 캐릭터와 대사는 이번 영화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감독이 자신의 세계를 표현할 구멍을 점차 깊게 파내려가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9번째 도전은 관객에게 즐거운 반복이다.

영화는 감독 구경남이 겪는 두 가지 이상한 에피소드로 엮여진다. 기이한 두 이야기는 따로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새 삶’을 찾는다는 것에서 하나의 실로 꿰어진다. 도시를 등지고 내려와 자연주의적인 삶을 사는 후배 부부의 기이함이나, 세 남자를 거치고 사랑에 실패한 뒤 지금의 남편을 만난 고순이나 모두 새삶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영화 속 인물 모두는 이렇게 새 삶을 갈구하지만 사실 그들이 목놓아 주장하는 삶은 영화의 제목처럼 모두 잘 알지도 못하고 있다. 꽤 잘나가는 감독 구경남은 이 ‘이상한 인물’들과 달리 모든 걸 알고 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영화 속 강의 수강생인 학생의 말처럼 ‘사람들이 이해도 못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일 뿐’이자, 고순의 충고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사람일 뿐이다. 홍상수 감독은 사건의 중심에 놓인 인물들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이들의 속물 근성을 낯뜨거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기록한다.

대중적이지 않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출연진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 캐스팅 면에서 최고 블록버스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노 개런티를 선언하며 이 영화에 참여한 배우들은 당일날 트리트먼트가 나오는 등 이른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촬영을 마쳤다. 그러나 감독의 머릿속에서 맞춰진 조각은 하나의 훌륭한 소동극으로 완성됐다. 9번째 영화를 보는 관객은 적어도 홍상수 감독의 일관된 세계를 한발쯤은 더 잘 알게 되는 경험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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