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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의 귀환 <처음 만난 사람들>
이영진 2009-06-03

synopsis 탈북자 진욱(박인수)은 서울에서의 생활이 두렵다. 하나원에서 사회적응 교육을 받았지만 도통 쓸모가 없다. 형사를 따라 임대아파트에 입주하던 첫날, 진욱은 대형마트에 이불을 사러 나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다. 무작정 집을 찾아달라고 애걸하는 진욱을 택시기사 혜정(최희진)은 내치지 못한다. 혜진 또한 10년 전 북한을 빠져나와 서울에 둥지를 틀었다. 묘한 인연으로 혜진과 통성명까지 나눈 진욱은 이튿날 탈북 동기들을 만나러 부산행 버스를 타지만, 베트남 청년 팅윤(꽝스)을 돕게 되면서 그의 발걸음은 부안으로 향한다.

“언젠가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선이 되고 행복이 되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중략)… 난 의도되지 않는 것들이 만들어낸 결과가 좋다.” 김동현 감독은 <상어>를 세상에 내놓은 뒤 그렇게 말했다. 길에 버려진 인간들이 우연히 동행함으로써 결국 집으로 가는 길을 떠올리는 <상어>를 기억한다면 <처음 만난 사람들>을 <상어>의 연작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썩은내가 진동하는 여름날 시원한 소나기를 애타게 갈구했던 <상어>의 인물들은 <처음 만난 사람들>에선 모든 감각이 얼어붙은 겨울날 따뜻한 봄바람의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변신한다.

친구 만나러 대구에 왔다 괜한 인심 쓰고 가진 돈을 몽땅 털리는 <상어>의 영철은 변심한 뒤 한국에 시집 온 첫사랑을 찾아 한국에 온 뒤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매질을 당하는 팅윤을 닮았다. 탈북자라는 낙인이 찍힌 진욱은 출소한 뒤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배회하는 유수(<상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노름판을 전전하며 고향에 발도 못 붙이는 준구(<상어>)의 피곤은 되도록 북쪽 출신임을 드러내지 않고 밤새 서울을 떠도는 혜진의 얼굴에서도 느껴진다. 27년 동안 형사 생활을 했지만 이제 무엇을 쫓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형사의 낙담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무작정 두 사내를 추격하는 ‘미친년’(<상어>)의 울부짖음처럼 들릴 것이다(이와 다른 인물간 짝짓기도 물론 가능하다).

<상어>의 끝이 그러하듯이, <처음 만난 사람들>의 바람도 ‘집’으로의 귀환이다. ‘상어’ 찾아 떠났던 ‘그들’은 이번에도 우연한 기적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려 기를 쓴다. 다만 출구없는 현실을 판타지를 빌려 뛰어넘는 <상어>와 달리 <처음 만난 사람들>은 바로 눈앞의 현실에서 아직 남아 있는 우연의 온기들을 찾으려 든다. <상어>의 마법 같은 ‘소나기’는 <처음 만난 사람들>에선 더이상 재연되지 않는다. 대신 진욱은 혜진에게 감사 전화를 하고, 형사는 체포했던 팅윤을 별 이유없이 놓아준다. 배용균 감독의 조감독(<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출신인 김동현 감독은 판타지의 영역에 머물던 마법의 기운을 두 번째 장편 <처음 만난 사람들>에선 현실로 끌고 내려와 흩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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