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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수] 기타를 20년 동안 안 쳤는데…
문석 사진 오계옥 2009-06-19

방송인 배철수

젊은 세대 중에는 배철수가 그냥 팝송이나 소개하는 DJ이거나 방송가 주변을 돌아다니는 목소리 좋은 아저씨 정도로 아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틀리진 않다. 절반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가 대학생 시절 활주로라는 밴드로 데뷔했으며 80년대를 휘어잡았던 록밴드 송골매의 리더였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건 중요하다. 지금 배철수는 햇수로 20년째 방송 중인 <배철수의 음악캠프>(이하 <음악캠프>)에서 ‘팝음악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지만 한때는 ‘한국적 록음악’을 깊이 고민해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결국 그가 ‘팝을 들어야 음악에 대한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대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음악을 우리 안에 끌어안아야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자신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라디오 DJ이자 TV 진행자이면서 ‘원로’ 뮤지션이며, 무엇보다 대중음악 애호가인 배철수를 <음악캠프> 생방송 1시간40분 전인 오후 4시20분에 만났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날이었다.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인데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가. =그저, 차분하게 할 생각이다.

-무슨 곡을 틀지 생각했나. =일단 연주곡을 많이 틀 생각이다. 가사가 있는 곡보다는 분위기에 더 어울릴 것 같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척 맨지온의 <Children of Sanchez>나 핑크 플로이드의 <Shine on You Crazy Diamond> 정도이다.

-나머지 선곡은 다 했나. 직접 한다고 하던데. =아직 다 못했다. 선곡을 직접 한다고 할 수는 없고, 순서만 정하는 거다. 이 방송에서 트는 노래 중 90% 이상이 청취자들의 신청곡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청취자들이 선곡하는 거다. 어떻게 보면 편한 프로그램이다. 청취자들이 좋은 곡을 신청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일일이 다 해야 하는데 우리 프로그램은 청취자들이 조예가 깊어서 기억에서 멀어져간 곡까지 신청하니까.

-하루에 들어오는 신청곡 수는 얼마나 되나. =글쎄. 전날 문자로 신청하고, 미니 게시판으로 하고, 실시간으로도 오고 하니까 대충 잡아서 하루에 500곡 이상은 된다고 봐야 한다. 그중 15곡에서 20곡이 방송에 나간다.

-그래서 선곡이 더욱 중요한 것 아니냐. =그러니까 음악작가도 있고 담당 PD도 있는 거다. 그 친구들이 1차 모니터링을 해서 보통 30~50여곡 정도를 추려 가져다준다. 그러면 내가 오프닝 코멘트나 그날 날씨라든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그때그때 음악을 섞어서 튼다. 그리고 방송 중에 생각나는 음악이 있으면 찾아서 틀기도 한다. 사실 선곡은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제는 관록이 붙어 선곡하는 것도 쉽겠다. =음악을 듣는 시간은 예전보다 줄었다. 처음에는 신청곡 중에도 내가 모르는 곡이 많았다. 물론 어려서부터 팝음악을 죽 들어왔지만 모든 장르의 음악을 폭넓게 들은 것은 아니고 록음악 위주로 들었으니까. 방송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다른 음악도 들어야 했는데 처음에는 모르는 곡이 너무 많더라. 내가 아는 곡에 대해서는 느낌까지 이야기할 수 있지만, 모르는 곡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없잖나.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빌보드>에서 나온 <탑40 히트>라는 책을 독파했다. 1950년대부터 현대까지 차트 40위 안의 곡이 죽 수록된 책인데 그것을 A부터 Z까지 무작정 읽었다. 그러고 나니 웬만한 것은 대충 알겠더라.

-<음악캠프>가 최근 7천회를 맞았다. 특별한 소감이 있나. =별로 큰 소감은 없다. 남들이 그렇다고 하고 기념음반도 나오니까 그런가보다 생각하는 거다. 그냥 나는 현재진행형으로 가고 있으니까. 오래 했구나 하는 생각은 들더라. 그런 생각은 한번 해본다. 과연 몇회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몇회까지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잖나.

-햇수로 19년이다. 30대에 방송을 시작해서 50대에 이르렀는데, 나이에 따라 뭔가 좀 달라진 게 있나. =나 스스로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예전 방송을 들어보면 확실히 다르긴 하다. 5천회 기념방송할 때인가 청취자들에게서 과거 방송을 녹음한 테이프들을 받았다. 그때 90년대 초기 방송분을 들어봤더니 많이 다르더라. 초기 방송은 지금보다 거칠고 말투도 다듬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방송 잘하는 줄 알았더니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웃음) 다 청취자들이 참아줘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나이에 비해 늘 젊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 것을 의식하고 있나. =의식하기보다는 청취자들이 젊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요새는 방송이 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한마디하면 즉각적으로 미니 게시판이나 문자로 그 얘기는 틀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글이 올라온다. 가끔은 청취자들과 토론할 때도 있다. 얼굴을 마주보고 있지는 않지만 만나는 것과 똑같다. 매일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나도 젊은 거다. 가끔 고등학교나 대학 동창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얘들은 속된 말로 왜 꼰대가 됐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웃음)

-가끔씩 어쩌다 이렇게 됐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 =운명인 것 같다. 내가 어떻게 하다가 DJ가 됐나 하고 생각해보면. 물론 내가 연예계에 나온 것도 우연이지만. 우리 때야 음악은 하늘로부터 재능을 받은 사람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잖나. 그런데 학교에서 아마추어 밴드를 하다가 대학가요제니 젊은이의 가요제 같은 게 생겨서 출전했고, 또 그중에서도 대다수는 학교나 직장으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계속 음악을 하게 된 것이잖나. 그러다가 방송을 하게 됐고 말이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운명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7천회 방송날 특별한 행사라도 했나. =특집방송이었는데 1, 2부에서는 내 신청곡을 틀었다. 그동안 청취자들의 신청곡만 무지하게 틀어줬으니까. (웃음) 지금까지 오면서 내 인생의 음악이라면 웃기고, 나에게 그때그때 분기점이 됐던 음악을 보내드렸다.

-아, 그게 뭐였나. =맨 처음 의식을 갖고 들었던 팝송인 <Sealed with a Kiss>로 시작했고, 영화 <스타탄생> 수록곡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Watch Closely Now>도 틀었다.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곡인데, 크리스토퍼슨의 밴드가 오토바이를 타고 야외공연장에 등장해서 부르는 곡이다. 그게 각별했던 것은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해서 열심히 공부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혼자 중앙극장에 들어가 이 영화를 보게 됐다. 그때 밴드의 모습과 함성,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대학 1학년 때 아마추어 밴드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카피 연주한 곡인 CCR의 <Who’ll Stop the Rain>도 틀었고, 얼마 전 한국에 공연왔던 존 로드 아저씨를 떠올리면서 딥퍼플의 <<Machine Head>>에서도 한곡 틀었다.

-1978년 활주로로 데뷔해서 송골매로 이름을 바꿔 꾸준히 활동했는데,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가. =1990년 <모여라>가 들어 있는 9집 앨범이 나왔다. 그때가 방송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됐을 때다. 그렇게 활동하다 91년이 됐는데 음악보다는 방송하는 게 더 재밌었다. 팔자 좋은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때부터 재미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또 내가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못한다. 음악은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된 것이다.

-음악활동에 대한 미련은 없었나. =별로 없더라, 나는. 이런 말하면 그냥 하는 얘기인 줄 아는데, 나는 음악에 큰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 작곡도 많이 했지만, 소 뒷걸음질치다가 몇곡의 히트곡을 낸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노래를 잘한다는 생각은 잘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한다는 게 갈수록 민망하더라. 음악을 다시 한다면 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때보다 잘할 자신도 없고.

-간혹 송골매 재결성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나. =구창모씨와 친하니까 가끔 만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한번 했다. 무대 위에서 기타 메는 자세가 어느 정도 나올 때 송골매 마지막 앨범을 내고 공연도 한번 하고서 깨끗하게 끝내자고. 그 계획 자체는 아직도 유효한데 구창모나 나나 바빠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은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연주를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연습도 열심히 해야 하잖나. 내가 기타를 20년 동안 안 쳤는데….

-아니 기타를 20년 동안 안 쳤다니. =아예 안 쳤다. 시간도 없었고 칠 필요도 없었고. 지난번에 아이가 오카리나를 부는데 박자가 하도 안 맞아서 기타로 반주해줬는데 그거 했다고 손이 얼마나 아프던지. 너무 안 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하긴 가끔 궁금하기도 하다. 지금 내가 정색하고 노래를 한번 만들면 어떤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20년 동안 음악을 하지는 않았지만 진짜 많이 듣지 않았나. 몇년 뒤에는 그게 확인될지도 모른다.

-한살 아래인 김창완씨는 꾸준히 음악을 하는데 부러움은 없나. =김창완이 나보다 학번은 하나 위다. 그 인간이 쓸데없이 학교를 일찍 가서 학번은 위고 나이는 하나 밑이다. 그래서 나보고 ‘후배님’ 이러기도 한다. 하여간 그 친구는 음악뿐 아니라 연기, 라디오 DJ, TV 진행도 한다. 가끔 존경스럽다. 나는 라디오 매일 하는 것과 TV 하나 하는 것 갖고도 너무 바쁜 것 같고, 일상에 매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내 시간이 많은 게 좋다. 가족과 보낼 시간도 많았으면 좋겠고, 나 혼자서 빈둥빈둥대는 시간도 많으면 좋겠고. 그런데 김창완씨는 일을 놀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부럽다. 나와는 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하나 궁금한 게 활주로 시절에는 드럼을 쳤는데 송골매에서는 기타를 쳤다. 당신의 진짜 포지션은 무엇인가. =대학 시절에도 기타 잡고 노래를 했다. 드럼을 치게 된 것은 우연이다. <젊은이의 가요제>에 나가는데, 가장 잘 치는 3학년생이 ROTC 훈련에 간 거다. 동기생 드러머는 군대에 갔고, 2학년 드러머는 나보다 못 치고. 그냥 재미삼아 드럼을 치곤 했는데 그래도 남은 사람 중에는 내가 가장 잘 쳤다. 그래서 드럼을 치게 됐는데, 그 상태로 앨범을 2장이나 냈으니…. (웃음)

-<음악캠프>가 한국에서 유일한 팝음악 전문 프로그램인가. =팝음악을 트는 프로그램이 우리만 있다고 하는 것은 건방진 이야기다. 자세히 찾아보면 있긴 하다. 하지만 메이저 방송사에서 전문적으로 2시간 동안 팝송을 트는 건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방송을 시작하던 90년만 해도 팝이 주류였는데, 팝음악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은 어느새 다 사라졌다. 그 와중에 <음악캠프>가 살아남은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그렇다. 그때는 <2시의 데이트>도 팝 프로그램이었고, <음악캠프>와 동시간에 방송하는 KBS 프로그램도 팝음악을 다뤘다. 그러다 하나씩 가요를 섞어 틀더니 결국 가요 전문 프로그램이 되더라. 살아남은 건 청취율이 좋았기 때문이다. 방송사가 어떤 곳인데, 청취율이 안되는데 살려두겠냐. 사람들이 물어보곤 한다. 방송 언제까지 할 거냐고. 그럼 나는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PD나 방송국 간부도 아니고 결국 청취자들이 결정한다는 말이다. 그들이 안 들으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 아니겠냐. 이 프로그램이 무슨 공익을 위한 프로그램도 아닌데 말이지.

-아니, 어떻게 하다 보니 <음악캠프>는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공익 프로그램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음악캠프>가 오락 프로그램이며 음악 프로그램이자 문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팝음악을 하나의 문화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20세기 이후로는 팝음악이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최고의 대중문화 아니냐. 팝음악을 영미만의 대중음악이라고만 하면 편협한 생각이다. 클래식 음악을 보면 다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 나온 것 아니냐. 하지만 그 음악을 전세계인이 듣잖나. 나는 그런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보는 거다. 우리 것도 소중하지만 세계로 열린 창을 닫아선 안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소장하는 CD는 대략 몇장 정도 되나. =세보지는 않았는데, 3천장 정도 될 것 같다. 90년부터 방송하면서 프로모션 CD를 다 받았는데 여러 차례 정리를 했다. 처음에는 음반을 무조건 집에 가져갔다. 그런데 정리할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에 쌓아뒀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결국 안 들을 것 같더라. 그래서 CD를 무지하게 정리했다. 진짜 명반들만 남은 거다. 록으로 치면 레드 제플린, 비틀스 같은 거장들의 음반만.

-그중 한장만 들고 무인도로 가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나. =그건 너무 잔인한 질문이다.

-그렇다면 10장 정도 해드리겠다. =그것도 어려운데. 송골매 앨범도 갖고 가야 하는데.

-송골매는 별도로 쳐드리겠다. =아이고, 그래도 너무 많은데. 핑크 플로이드도 한장, 비틀스는 여러 장, 레드 제플린도 챙겨야지. 딥퍼플도 한장은 가져가야지….

-결국 60년대와 70년대 록의 황금시대에 나온 음악을 가장 아낀다는 이야기 같다. =록음악이 20세기 팝음악의 적자라고 본다면… 사실 그렇잖나. 세계로 팝음악이 퍼져나간 시기를 보면 2차대전 이후인데, 그게 로큰롤이 태동하면서니까. 나 스스로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팝음악은 60, 70년대 음악이 최고이고, 가요는 70, 80년대 음악이 최고다. 나 혼자 그렇게 주장한다.

-방송사고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자유인 이미지가 강했는데 말실수 같은 것도 없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지난해에 우리말을 올바르게 사용한다고 상을 두개나 받았다. 90년 처음 방송하러 왔을 때 그때 담당 부장이 유명한 DJ였던 박원웅 부장이었다. 그분이 담당 PD에게 조심하라고 했단다. 너무 거칠어 보이니까. 지금은 그 담당 PD와 결혼해서 같이 살지만, 불안했단다. 내 평상시 용어가 굉장히 거칠기 때문에(배철수의 아내는 MBC 라디오국 박혜영 부국장이다).

-신기한 게, 지금 말하는 것을 듣는데도 방송을 듣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은 말투가 일상대화나 방송이나 큰 차이가 없어졌다. 사람들도 나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많이 놀란다. 사석과 방송이 저렇게 비슷한 사람은 처음 본다고. 서서히 말투가 방송에 순화된 것 같다. 그 점에서는 나의 첫 PD에게 감사한다. 1년3개월을 함께했는데 방송에 관해 전혀 모르는 상태로 온 나에게 많은 조언을 해줬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한번에 한 가지 이야기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후배들에게도 해주는 말인데, 음악이 끝난 뒤 네 느낌을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청취자들과 함께 어떤 음악을 들었으면, ‘이 음악 들으니 저녁 노을이 생각나네요’ 같은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그냥 ‘음악 들었습니다’ 하고서 다음 얘기로 넘어가면 안 들은 것 같잖나. 청취자와 함께 듣는 느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애정도 그런 과정에서 싹튼 것인가. =처음에는 동지애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처음 하는 DJ이다보니 방송 끝나고 45분 정도 그날 한 방송에 대해서 정리하고 헤어졌다. 이날 이런 것은 이랬다. 이건 음악이 아닌 것 같다, 선곡 방향을 이렇게 가야 하지 않나 등 방송에 관한 의견을 나누다 보니 서로를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아까 여러 일을 한꺼번에 못한다고 했는데 TV 프로그램 <콘서트 7080>도 진행 중이다. =아주 교묘하게 얽혀들어간 일이다. (웃음) 2004년 설날 때인가, <열린음악회>를 담당하던 PD가 7080 밴드들과 가수들을 모아서 특집을 한다고 하더라. 잘 알던 PD였는데 송골매를 재결성해서 공연을 하면 안되겠냐는 거다. 나를 몇번 찾아와서 부탁했지만, 연습도 전혀 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사회라도 봐주면 안되겠냐는 거다. 그래서 그건 해주마 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이 몇년간 <열린음악회> 중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7080세대의 갈증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 뒤 추석 때가 됐는데 이번에는 다른 PD가 같은 컨셉으로 추석 특집 <열린음악회>를 연다고 사회를 봐달라고 했다. 그렇게 연달아 특집방송을 했는데, 곧바로 가을 개편에서 정규 편성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못한다고 버팅겼는데 어영부영 사회를 보게 됐다. (웃음)

-다큐멘터리 내레이션도 많이 했는데. =굉장히 많이 했다. 그러다가 2005년 무렵부터 안 한 것 같다. 내레이션도 재미있다. 내 목소리가 좀 드라이해서 내레이션에 잘 맞는다고 한다. 안 하는 건 일단 시간이 없어서다. 그리고 그걸 하려면 결국 밤에 가서 해야 하는데, 밥을 불규칙하게 먹으니까 역류성 식도염도 걸렸다. 이러다가 정작 내가 좋아하는 일도 못하게 될까봐 그만뒀다. 요즘에도 연락이 많이 오긴 한다. 그러니까 김C 같은 친구는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나 이전에 내레이션은 성우나 아나운서들이 했다. 나 덕분에 그런 기회가 생긴 셈인데, 밥 한번 안 사고…. (웃음)

-마지막 질문은 <라디오 스타>식으로 하겠다. 배철수에게 음악이란. =야아…. 음악 빼면 내 인생에 남는 게 있을까. 음악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연주했고 노래했고, 지금은 또 음악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음악을 빼면 나는 껍데기만 남는 것 같다. (팩스로 날아온 오프닝 코멘트를 읽으면서) 어이쿠, 이제 30분 정도밖에 안 남았네. 이젠 정말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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