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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스릴러의 모범 <약탈자들>
이화정 2009-06-17

synopsis 친구 병태(박병은)의 장례식장에 모인 동창생들. 그들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상태(김태훈)라는 인물의 뒷담화를 시작한다. 같은 학교 출신인 상태는 금정굴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는 역사학자. 그는 성추행 혐의를 받고 학교에서 잘린데다, 할아버지가 창씨개명을 했다는 죄의식 때문에 역사 공부를 하는 자신을 혐오하기에 이른다. 친구들의 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상태의 기행이 드러나고, 급기야 상태는 비전 필살 무술 뫄한머루의 전수자로까지 그려진다.

<약탈자들>은 꽤 독특한 서술 방식을 가진 흥미로운 영화다. 역사의식을 지닌 학자 ‘상태’의 분열된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다름 아닌 친구들의 기억과 인상에 의한 뒷담화다. 기억과 평가, 소문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기에 상태의 현재는 명백한 객관성을 얻지 못한다. 금정굴을 조사하는 역사학자 상태, 할아버지의 창씨개명이라는 사실에 도덕성을 위협받는 상태, 성추행을 한 파렴치한 상태, 그리고 뫄한머루의 전수자라는 조금 특이한 전력의 상태…. 한명 한명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영화 속 ‘상태들’은 이렇게 다양하고도 제각각이다. 관객은 친구들의 뒷담화를 통해 서로 다른 상태를 만나게 되고 진실을 조합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을 맞이한다.

상태라는 인물을 유추하는 과정은 마치 영화 속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금정굴과 닮아 있다. 일산 중산마을 근처에 자리한 금정굴은 지금 등산객들로 북적이지만, 일제시대 금광으로 한국전쟁 당시 좌우익 이념대립의 장으로 양민학살이 자행된 약탈의 장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전개되는 상태의 이야기는 끝을 알 수 없는 금정굴의 구조와 구조적인 대구를 이룬다. 그리고 상태에 가려진 후배 병태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은 여기서부터 증폭된다. 공간과 어우러진 서술 방식 덕분에 <약탈자들>이 쫓아가는 스릴러는 몇몇 과도한 설정에도 설득력을 얻는다.

6500만원의 적은 제작비로 신예 손영성 감독은 독특한 스릴러의 모범을 보여준다. 소재와 진행의 흥미에 비해 다소 이야기의 추진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약탈자들>은 꽤 주목할 만한 감독의 출연을 보장해 주는 작품이다. 상태 역을 맡은 김태훈의 연기도 돋보인다. 김태우의 실제 동생이기도 한 배우로, 역시 신선한 등장이다. 다소 듬성듬성한 완성도에도 이 영화에는 이렇게 주목할 만한 새로운 기운들이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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