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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 나는 왜 찌라시를 줍는가
이영진 사진 오계옥 2009-07-03

개인 전시회 연 박재동 화백

“혼자 보고 듣고 생각하기 아까워 나누려 애쓰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라고 박재동 화백은 철석같이 믿어왔다. 6월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위치한 자인제노 갤러리에서 열린 <박재동의 손바닥 그림들 展>은 그의 오랜 신념을 두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세상을 담기 위해서는 특별한 재능과 큼지막한 캔버스가 필요하다는 건 그러니까, 거대한 편견이었다. 이발소 그림도, 신용카드 영수증도, 나가요 언니들의 찌라시도, 던킨 도넛의 냅킨도, 현미녹차와 팔도비빔면 봉지도, 세상을 ‘그릴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소재들이었다. 갤러리 안은 어수선하고 시끌벅적한 시장통 같았는데, 그것조차 전시를 위한 의도된 효과음처럼 여겨졌다. 관람객이 내미는 팸플릿에 일일이 캐리커처 그려주랴, 멀리서 올라온 지인들을 일일이 챙기랴, 행사 관계자들과 밀린 회의하랴,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던 박재동 화백을 만났다.

-관람객이 평일에도 많던데요. =다 나 아는 사람들이겠지. 갤러리가 좀 한갓지기도 했고. 원래 전시회를 할 생각이 없었어. 아는 이의 전시 때 놀러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 집에서 한번 하자고 하더라고. 평소 스케치한 것들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괜찮다면서.

-작품들이 많아서 휙 둘러보고 갈 수가 없었어요. =그림들을 다 못 찾았다고. 전시 때 못 건 작품들이 많아. 지난해에 냈던 <인생만화>도 그렇고. 어떤 스케치북은 출판사에 가 있기도 하고. 찾았다고 해도 너무 많아서 다 들고 나오지도 못하지.

-그동안 전시 소식은 많이 듣지 못했는데요. =시사만화를 한 뒤로는 처음이야. 매일 신문에 전시를 하는데 굳이 전시회가 필요할까 싶었지. 전에 만화가들 여럿이서 전시한다고 할 때 한두점 낸 적은 있지만. 이발소 그림에 장자연, 노무현 두 사람의 죽음을 그린 작품 정도만 전시를 위해서 새로 그린 거야. 다 평소에 해놨던 거라서 많이 알리지도 않았어.

-전시를 하니까 재밌던가요. =직접 와서 반응을 보이니까. 작품을 사가는 사람도 있고. 그동안 못 만났던 지인들도 이 기회에 얼굴 보기도 하고 그런 재미가 있더라고. 사실 그림이 팔리면 약간 서운한 게 있어. 그런데 작품 산 분들 중에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냈지. 그림 산 이들끼리 한번씩 얼굴 보는 모임을 갖는 게 어떻느냐고. 그 이야기 들으니까 마음이 편하더라고. 그림이 어디로 없어진 것도 아니고. 그림으로 새 인연도 얻게 되고.

-<인생만화>에 ‘손바닥 그림을 그리자’라는 꼭지가 있던데요. 계기가 궁금해요. =난 그냥 전시가 아니라 운동처럼 쭉 하고 싶어. 손바닥 그림 운동. 초·중·고 12년 동안 미술교육을 받지만 막상 졸업하고 나면 사람들이 그림을 안 그린다고. 왜 그럴까. 내가 원래 미술교사 출신이잖아. 노래는 노래방에서도 부르는데, 왜 미술은 안 그럴까. 이유를 생각해봤더니 첫째는 크기야. 그림 한번 그려보자, 싶으면 맨 먼저 도화지 사이즈를 생각한다고. 일상에서 사람들이 그 도화지를 다 채우려고 하면 어렵지. 그림이라고 해서 표준 사이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작가가 알아서 정하는 거라고. 손바닥 만한 명함이라면 그럼 만만하지 않나, 한번 그려볼 만하다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이중섭도 요만한 담뱃갑에 그렸잖아. 크기가 줄면 마음이 편해지고. 그 다음이 재료라고, 사인펜이든 연필이든 꼭 붓이 아니어도 돼. 손에 쥐는 것이면 다 된다고. 소재도 그래. 땅에 떨어진 나뭇잎을 그려도 되고,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베껴도 되고, 강아지 한 마리를 그려도 되고. 거기에 메모나 편지를 써도 되고. 그걸 낙서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내가 마음에 들어서 한쪽에 사인을 했다 쳐. 그럼 내 것이 된다고. 소중히 여기면 낙서라고 생각했던 것도 작품이 되는 거야. 생명을 얻는 거지. 그걸 모아서 식구들이나 친구들 대상으로 전시회를 가질 수도 있고. 대중이 그림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 누구 기다리면서 그림 한장 그리면 내 삶이 소중해져. 지루한 시간이 창조적으로 변하지. 그 사람이 조금 더 늦게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생기고.

-원화를 디지털 프린트해서 10만원에 판매하는데요. =예전부터 생각한 거야. 가치야 원화가 더 있겠지만, 그렇다고 복제 프린트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그림이 내 방에 걸려 있어서 기분이 좋으면 되는 거잖아. 복제술이 발달해서 원화랑 별로 차이도 안 나. 게다가 그린 사람 사인도 있으니까. 옛날에는 귀족들만 바흐를 들었다고. 교회를 가서 생음악을 들어야만 했는데, 복제기술이 발전하면서 수십억명이 바흐를 들을 수 있게 됐잖아. 그림도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이번 전시부터 카드 마일리지 모아서 그림을 살 수 있게끔 방도를 만들었어.

-손바닥 그림들도 좋지만, 반응을 굳이 비교하면 찌라시 아트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내가 원래 수집벽이 있어. 버려진 찌라시들도 가져가서 의미를 붙이면 된다고. 눈물의 바겐세일 같은 벽보나 대리운전 혹은 아가씨들 광고 전단을 주워서 도화지 삼아 그렸는데 재밌더라고. 우리 삶이 특별한 것으로만 구성된 건 아니야.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 잘하면 내 기쁨이 되는 것이고, <PD수첩> 김은희 작가의 고통을 보면 이런 ‘쓰바라∼’ 하면서 괴로움이 되는 것이고, (이)효리도 내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이고. 예술의 소재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라고. 저기 바깥의 기와집을 보면 바로 그리고 싶지. 내가 귀하게 여기는 정서와 가치가 담겨져 있으니까. 하지만 저것만으로 살 수 있는 건 아니거든. 나란 존재는 (가치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의해서도) 형성이 된다고.

-손바닥 그림과 찌라시 아트는 상호보완적인 거네요. =그렇지. 그렇게 보면 되지. 세상에 버릴 게 없는 거야.

-찌라시는 언제부터 모았나요. =전단지는 어릴 적부터. 그림쟁이잖아. 그림 그리면 기본적으로 콤플렉스가 있어. 소설가는 1970년대 골목을 묘사한다고 하면 담배 가게 거쳐서 전봇대 옆을 지나 철공소 옆 문방구 앞의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고 하면 돼. 그런데 우린 그 골목을 그려야 하잖아. 전봇대에 뭣이 붙어 있었는지까지 그려야 한다고. 혹시나 해서 모으고, 모으고 그러는 것이지. 딱지를 제대로 모아놓지 못한 것이 원통해. 침 발라서 붙이던 판박이는 많이 모아놨는데 말이야. 흔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드물고 귀해져. 여기 이 커피잔도 100년 뒤면 박물관으로 간다고. 찌라시도 그래서 모은 거야. 시대의 증인이잖아. 콜걸, 대리운전. 씨알리스, 돼지엄마 일수. 이런 길바닥에 떠도는 찌라시들에는 우리 사회 물밑으로 흐르는 욕구와 고통과 기쁨이 있다고.

-찌라시와 손바닥에 아트라, 사실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잖아요. =찌라시 아트는 친구인 이희재가 이름을 붙여준 건데. 천한 것 속에 귀한 것의 싹이 있다고 봐. 천한 것 안에 있는 역동성, 솔직함 등 같은 힘이 있어. 내가 그래서 만화를 그리고, 찌라시를 모으는 거지. 물론 근사하고 큰 그림도 그리고 싶은 욕망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가 지금껏 해왔던 것을 하게 돼. 재밌으니까.

-여기 걸어둔 그림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그림쟁이로서가 아니라 생활인 박재동의 하루 동선이 쫙 보이는데요. =역작이라고 할 순 없지만 자연스럽지. 보기도 편하고. 몇년 전부터 사물일기도 쓰고 있어. 오늘 이 포크를 훔쳐서 그걸 집에 가서 그려놓으면 나중에 <씨네21>과 인터뷰하면서 케이크 먹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거지.

-요즘 동선은 어떤가요. =지금 사무실은 강남이 아니라 부천에 있는데. 지하철에서 그림 그리면 금방 가. 역을 지나칠 때도 많고. 역에서 사무실까지는 찌라시 좀 줍고, 저녁에는 찌라시 줍고 스케치하면서 집에 오고. 다만 요즘은 많이 못 그리지. 과천현대미술관에서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전시를 하는데 감독 일을 맡고 있고, 부천만화페스티벌 운영위원장도 하고 있고, 이번 전시도 있고 해서 동선이 좀 엉망이 됐지. 그전엔 학교와 사무실만 왔다갔다하면서 그리면 됐는데. 그래도 바쁜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짬을 내서 그린 것이 결국 남더라고. 시간이 많으면 미루게 되거든. 내 작업은 ‘틈틈이’가 중요해.

-지하철에서 스케치하다 완성을 못했는데 모델이 내리는 경우도 있겠네요. =요만큼 겨우 그렸는데 쓱 일어나서 가버려. 그럴 땐 내버려두고 옆에 말풍선을 쓰지. ‘아, 가버렸네!’라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사진 찍는 것보다는 덜하겠지만. =내가 조심해. 열심히 그리려는 폼이 있어서 그런지 많이들 이해해주시고. 자신을 그리는 것 같으면 웃어주기도 하고, 자는 척하기도 하고. 될 수 있으면 모르는 척 그리는 게 좋지. 전에 파키스탄이나 실크로드에 간 적 있는데 거기 가서 그림 그리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이런 구경이 처음인 거야. 와, 이번엔 누구 그려봐라. 사람 데리고 와서 이 사람도 그려봐라. 난리라고. 어린아이들은 졸졸졸 따라다니고. 록스타야. (웃음) 그런 상황에선 자유롭게 못 그린다고. 우리도 전엔 그랬지. 시골 가면 누구 엄마 그린다, 막 그랬어. 요새는 다들 미술교육을 받은 분들이라 존중해주시지.

-‘저분의 등을 그려도 되는 걸까’라는 글귀가 덧붙여진 그림을 봤어요. 거리의 사람들을 그리면서 멈칫하게 될 때도 있을 텐데요. =약자니까. 그려지고 싶지 않은데, 알면 싫어할 텐데, 하는 순간들이 있지. 앞에서 그리면 그나마 방어를 할 수 있을 텐데 뒤에서 모르게 그릴 때는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면서도 안 그릴 것까지야 있나 싶고. 과거 노숙하는 분들 그림 옆에 ‘당신을 그려서 미안합니다’, 뭐 이렇게 많이 넣어놨어. 그러고 보니 깨진 소주병 들고 ‘야 이 씨∼발 새끼들아’라고 외치는 여자 노숙자분을 그린 걸 이번에 빼먹고 안 걸었네. 내 입장에선 그럴 때는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정확하게 그리진 않지. 그릴 때도 슬쩍슬쩍 그리는 것이고. 다른 데 그리는 것처럼 하면서.

-관찰하면서 생긴 버릇 같은 게 있나요. =버릇은 아니고. 어떤 사람의 고정된 정체는 없다, 본래 모습이라는 건 없다는 걸 알게 됐지. 사진도 그래. 고정된 나, 객관적인 내가 드러난 게 아니라고. 사진기자가 날 정말 좋아하는 것 같으면 웃는 얼굴이 나오는 것이고 개구쟁이이면 나도 개구쟁이가 돼. 심각하게 내 본질을 보겠다고 하면 얼굴이 굳는 거지. 그러니까 사진 속 나는 사진기자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새로운 사람이라고. 누군가와 같이 찍으면 그때는 얼굴이 섞여서 나와. 닮는 거지. 내 냄새하고 그 사람 냄새하고 섞인다고. 한때 나도 본질을 그리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만 남는다는 걸 알고 있지.

-음식 그림도 많이 그리셨잖아요. =지금은 별로 안 그리는데. 모든 것을 내가 다 그려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지. 그림 그리느라 음식 식은 적도 많았고. 음식은 호소력이 있어. 내 그림 보고 이번에도 누군가가 삼겹살 먹고 싶다고 하더라고. 음식은 그려놓으면 와닿아. 절실하고 즐거운 것이니까.

-지금까지 그린 인물들이 1만명이 될까요. 고은 선생의 <만인보>가 떠오르던데요. =모르겠어. 안 세어봤으니까. 그런데 새만화책이라는 출판사에서 <인간사전>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책을 내자고 했는데, 양쪽 모두 바빠서 미루고 있어.

-본인의 자화상은 좀 미화해서 그린 것 같은데요. =누가 나 그릴 때도 주름살 많이 그리면 싫어해. 주름 잘못 그리면 나이가 팍 들어 보인다고. 굉장히 조심해야지.

-아내 그림은 없던데요. =전엔 많이 그렸는데. 우리 애들도 그렇고, 늘 곁에 있는 사람은 잘 안 그려지더라고. 요즘엔 배우들을 그려봐야겠다 싶어. 배우 얼굴은 예술의 소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인어공주>에 나오는 전도연이가 참 매력이 있지. 예쁜 건 아닌데 묘한 매력이 있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때는 어디에 있었나요. =집에. 일 때문에 TV로 봤어. 덕수궁 분향할 때 한번 갔지. 사람들이 길게 줄 서서 쪽지 쓰는 것 보고. 그날은 많이 못 그렸어. 그 뒤에 봉화마을도 한번 갔다 왔지. 부엉이바위 스케치도 했고. 살았을 때도 그랬지만, 죽어서도 큰일을 한 분이고.

-노무현의 얼굴이 갖고 있는 매력이 뭔가요. =주름이 딱 하나. 고집 세게 생겼지. 정치인 중에선 가장 정이 가는, 사람 냄새 나는 얼굴이야.

-이발소 그림은 숨은그림찾기 같던데요. 유서를 뒤늦게 발견하고는 관람객이 웃음을 그치더라고요. =내가 이발소 그림에 관심이 많아. 중학생 때 이발소 가면 심심하니까 앞에 그림 하나 붙여놨다고. 오리도 떠가고, 물레방아도 있고. 그거 보면서 잠시 동안 내 마음이 편해졌단 말이야. 환상 속으로 이끌어주고. 나한테 도움이 된 거야. 미술에 대한 교육은, 이발소 그림은 천박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 본질을 전달해주진 않지만 서민들의 벗이지. 서민들의 꿈이고. 저런 평화로운 곳에서 살고 싶다는 환상을 통해서 위로도 받고. 길에서 5천원, 1만원 주고 살 수 있는 예수님, 이소룡, 복사꽃 그림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이게 민화인 거잖아. 옛날의 민화를 보면서는 ‘와’ 하면서, 지금의 민화에 대해서는 평가를 안 한단 말이야. 그리스 가서도 이발소 그림을 이만큼 사왔어. 전시 앞두고 행복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 현실을 등지고 시원한 폭포에 빠져들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사태 때문에 심경이 복잡하시죠. 학생들을 그리기도 했나요. =황지우 전 총장만 두번 그렸지. 사실 난 사회문제를 살짝살짝 이야기하고 잘 안 하는 편이야. 다른 이들이 제대로 다루면 격려해주는 정도지. 한예종 학생들은 공부를 세게 하고 있는 중이야.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구나, 좋은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지.

-놓친 풍경, 놓친 인물이 있을 텐데요. =사라져가는 남루한 풍경들의 따스함을 그리고 싶은데, 시간을 잘 못내고 있어. 피맛골도 그렇고. 그걸 또 헐고 뻔쩍뻔쩍하는 곳 천지로 만들려고 하니까.

-애니메이션 <오돌또기> 작업은 진척이 있나요. =스토리는 조금 짜인 편인데. 너무 바빠서 보류되고 있어서 안타깝지.

-큰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했는데요. =인간과 역사지, 뭐. 우리 민족사라든지. 강요배의 그림을 보면 바다를 그리면 파도가 치고, 비 오는 날은 지금도 내리고 있는 것 같아. 난 인간을 많이 그리고 싶어. 그런데 기사가 야마가 잡혀? 추구하는게 좀 강렬해야 뭐가 잡혀도 잡힐 텐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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