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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감독들의 단편을 한데 모은 옴니버스영화 <오감도>
이영진 2009-07-08

synopsis 회사원인 민수(장혁)는 부산 출장길에 미끈한 다리를 가진 큐레이터 지원(차현정)에게 이끌려 무작정 천안에서 내린다(<his concern>). 현우는 몸이 아픈 아내 혜림(차수연)의 치료차 여행을 떠나지만 그녀의 짐가방만 들고 혼자 돌아온다(<나, 여기 있어요>). 감독 봉찬운(김수로)은 가까스로 공포영화 촬영을 끝낸 뒤 여배우 박화란(배종옥)과 김미진(김민선)의 밥이 되고 만다(<33번째 남자>).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 재인(황정민)을 잃은 정하(엄정화)는 남편의 불륜 상대였던 나루(김효진)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시작과 끝>). 고등학생 세 커플은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위험한 스와핑을 감행한다(<순간을 믿어요>).

<오감도>는 영화아카데미 출신 다섯 감독들의 단편을 한데 모은 옴니버스영화다. 공통 시제가 ‘에로스’라고 해서 새삼스레 조르주 바타유의 저서를 뒤적이거나, 제목 때문에 이상의 시를 곱씹을 필요는 없다. ‘에로스’에 관한 수많은 정의 대신 이런 물음이면 족하다. 당신은 언제 흥분하는가. 삶을 들뜨게 하고, 이따금 일깨우며, 결국 지속하게 하는 그 ‘무엇’이 존재하긴 하는가. <오감도>는 ‘나,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는 에로스를 향한 ‘그의 관심’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에로스에 몸뚱이를 저당 잡힌 ‘33번째 남자’가 될지, 아니면 ‘순간을 믿어요’라고 되뇌며 일상으로 회귀할지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변혁 감독의 <his concern>에서 에로스는 ‘관심’과 ‘불안’ 사이에서 발생하는 머뭇거림 혹은 긴장이다. 남자의 몸은 여자의 몸을 끊임없이 뒤쫓지만, 남자의 머리는 ‘고등교육을 받은’ 자신이 그러면 안된다고 막아선다. 쿨한 척하는 여자 또한 낯선 남자를 자신의 방으로 끌어들인 뒤 ‘내가 너무 적극적이었던 것 아닐까’라고 고개를 갸웃한다. <나, 여기 있어요>는 허진호 감독의 전작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하는데, 에로스는 죽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한 고통의 대상이 된다. 단편임에도 다양한 장르로 갈아타는 여유를 보이는 유영식 감독의 <33번째 남자>의 에로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변신 괴물이며, 민규동 감독의 <시작과 끝>에서 에로스는 더욱 파괴적인 양상으로 치닫는다. 이처럼 에로스를 ‘무엇’으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오기환 감독의 <순간을 믿어요>의 에로스는 충만한 듯 보이는 관계 속에서도 결핍을 찾아내려 안간힘을 쓰는 욕망덩어리로 변하니까 말이다.

병풍을 한폭씩 펴보는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구성이 단조롭고 그래서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제작진은 “죽음으로 끝나는 무거운 이야기를 두 번째와 네 번째에 배치하는” ‘W’식 구성을 취했다고 하지만 상영시간이 1시간이 넘은 뒤에도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맞닥뜨려야 하는 터라 다소 버겁기도 하다. 인물들이 매이지 않고 여기저기 얽히는 구성을 취했다면 좀더 자극적인 모양새의 에로스 병풍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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