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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4] - 21세기 영화
정리 박은영 2001-02-22

21세기 영화, 디지털 종교에 투항하다

디지털 신화가 목청 높이 외쳐지고 있다. 무엇보다 할리우드가 디지털의 가능성을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몇몇 진지한 시네아스트들도 디지털에서 영화의 미래를 보고 있다. 인터넷 비지니스라면 남부럽지 않은 한국에선 디지털이 거의 종교적 신뢰를 얻고 있다. 과연 디지털은 셀룰로이드를 대체할 것인가. 대체한다면, 그 이후의 영화도 우리가 영화라고 알고 있는 것과 동질의 것일 수 있을까.

김 | 산업적 측면에서 디지털의 효용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매체 민주화다. 극장용 영화 못지않은 화질의 영화를 디지털로 찍는다는 건 기술적으로 산업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감독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볼 때 나는 배급에서 산업적 통제가 여전하리라고 본다. 유통방식의 외양만 바뀌는 것일 뿐이며 디지털이 만인이 영화를 찍고 만인이 즐기는 시대를 가져오리라는 기대는 섣부르다. 세번의 새 테크놀로지가 등장한 경험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8mm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나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흥분했다. 그러나 기술적 한계도 있었지만 대안적 배급망을 만들어 더 많은 이들을 만나는 데 실패했다. 개인적으로도 군부독재 시대에 과외가 금지되는 바람에, 8mm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무산돼 얄라셩에 들어가 공공자금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가 캠코더의 등장이다. 8mm영화의 배급 한계를 해결할 매체가 나왔다고, 또 흥분했고, 노동자뉴스단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틈새에 불과했다. 복사가 용이하고 대량 배포가 가능해졌지만, 일반인들이 미학적으로 산업적인 대안을 만들어가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디지털이 등장했다. 매체 민주화에 대한 희망은 이전과 똑같다. 망령처럼. 그리고 이번엔 설득력도 있다. 디지털로 8mm의 단점을 비디오가 해결했고, 그것이 다시 업그레이드된 데다가 인터넷과 결합했다. 그러나 매체 민주화를 이루는 데 있어 테크놀로지가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 조건은 될 수 없다. 면밀한 전략없는 막연한 기대인 것이다. 구조적인 무브먼트로 사회적으로 받쳐줄 때 매체 민주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정 |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게 된다는 뜻인가. 아니면 테크놀로지의 진화 발전 과정에서, 상업적인 영화와 홈무비와 아트하우스가 분류될 전망이라는 뜻인가.

김 | 상업적 스크리닝 포맷은 달라질 거다. 필름 영사기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경제적이고 기술적으로도 우월한 디지털 영사가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더이상 프린트로 배급하지 않게 될 때, 디지털화되지 않은 영화는 필름 아카이브에서나 볼 수 있겠지. 프로덕션도 대체하게 될 테지만 카메라의 대체는 별 의미가 없다. 조명과 달리와 크레인과 사운드 레코딩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고, 큰 변화는 없으리라고 본다. 또 인터넷이든 뭐든, 배급망에서 상업적 네트워크를 거치지 않고 생산자와 소비자, 창작자와 관객이 직접 소통하는 게 가능해질 거다. B양과 O양의 예가, 왜곡된 방식으로 이런 가능성을 미리 보여줬다. 무명의 고등학생이 만든 영화가 수익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거고, 영화제에서 평이 좋은 영화가 있었다면, 관객이 인터넷을 통해 전자상거래 방식으로 DVD든 뭐든 사들일 수 있을 거다. 10년 뒤면 그런 세상이 올 거다. 물론 영화가 만들어지고 영화제에 간다는 전제하의 얘기지만. 그러나 매체의 유토피아는 오지 않을 것 같다. 개인의 예술이 대중과 만날 수 있으려면, 일정 정도의 예산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산업을 거치지 않고 관객과 직접 만날 수 있겠는지, 회의가 든다. 테크놀로지에 집착하는 건 바보짓이다. 선택할 문제이지,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정 | 난 내가 영화의 죽음을 목격하는 세대가 아닐까 싶다. 영화가 가장 짧은 생명력을 가진 예술이 되지 않을까. 르네상스 시대에 회화가 가진 위치를 생각해 보면 아날로그영화가 프레스코화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캔버스가 등장하고 이동이 가능해졌다는 건, 회화가 자유로워졌다는 얘기인 동시에 회화의 죽음이 왔다는 얘기다. 미술관으로 가고 박물관으로 가고, 프레스코엔 소수의 감상자만 남았다. 캔버스의 등장이 디지털의 등장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진 않을까. 그 순간 미디어 민주주의는 이뤄지겠지만, 필름 민주주의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필름이 미디어가 되면 더이상 영화가 아니다. 일기장이 소설이 아니고, 낙서가 그림이 아니듯, 디지털의 등장이 아날로그를 대체하진 못할 것이다. 그런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은 영화제뿐이겠지. 최근 할리우드영화는 내러티브가 죽고 이미지만 집적되고 있다. 게임과 채팅이 확산되면서 영화가 뮤직비디오가 돼가고 있다. 사람들 손에 쥐어진 디지털은 개인적 기억을 재현하는 수단이 되고, 그것이 인터넷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살아생전에 그런 변화를 목격할 것 같다. 19세기에 존재했던 산업이 새 산업 때문에 무너졌는데, 20세기 산업이 21세기에도 그 이상 존속될 거라 믿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미디어는 영화를 흡수하고 해체할 것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시대에 영화는 개념이 될 것이고, 그 순간 그 예술의 죽음을 목격하게 될 것 같다.

김 |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한국적 상황과 관계없이 휩쓸리겠지만, 여기 한국적인 현상이 있긴 하다. 독립영화, 단편영화가 개인영화가 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80년대의 전제는, 집단이 공모하는 영화였고, 공동체적인 사고였다. 90년대 이후 디지털로 단편의 한계를 벗어났고 개인영화가 비로소 가능해졌다. 단편을 통해 주류로 진입하기도 한다. 예술행위, 창작행위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지금이 호기일 수 있다. 코스닥, 닷컴이 뜰 때 영화사이트가 많이 만들어져 인터넷용영화도 많이 만들어졌다. <다찌마와 Lee>처럼 제도권에서 인정받은 감독을 데려오는 경우도 있지만 반짝하고 없어진 사이트 중에는 상업적인 목표를 두고 공모한, 파악되지 않은 인터넷영화도 많다. 그건 하나의 가능성이다. 그런 사람들끼리의 연대는 재밌는 현상이다.

정 | 비극은, 디지털영화로 옮겨가면서, 더이상 우리 시대의 대가가 없다는 거다. 오즈, 브레송, 칼 드레이어, 에이젠슈테인 같은. 거장의 시대는 디지털과 함께 끝나버릴 것 같다. 우릴 매혹시키는 순간이 되풀이될까. 나는 현대음악은 듣기 힘들어서 못 듣는다. 디지털영화가 계속 만들어져도, 사람들은 ‘결국 날 매혹시킨 건 20세기영화였어’라고 말할 것 같다. 디지털 세대가 <시민 케인> 같은 영화를 만들 것 같진 않다. 난 앤디 워홀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17, 18세기 거장들의 그림을 보고 싶은 거다.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인 영화에 아우라가 없다고 했지만 이젠 정말 아우라가 없는 것들, 키치적인 것들만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건 예술지상주의나 복고주의일지도, 그래서 형식에 시달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던 것들이 죽음을 맞게 된다는 생각을 하면, 슬프다.

김 | 한국에서 시네마테크를 시작하려는 이들을 보면 이중적인 생각이 든다. 영화가 죽는 시대에 저들은 전 세기의 위대한 유산인 영화의 전달을 위한 구도자의 길을 가려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도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시네마테크가 잘되려면, 필름으로 보는 것에 대한 매혹이 있어야 하는데 디지털이 보급돼 필름이 사치스런 경험이 되기엔 너무 빠르고, 좋은 고전의 길잡이 노릇을 하기엔 너무 느리다. 상태 나쁜 프린트로 보느니, 상태 좋은 DVD로 볼 것 아닌가. 틈새시장으로서의 상업성을 시네마테크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내기엔, 말이 주는 역사성이 애매하고 시대착오적이란 느낌이 든다.

정 | 시네마테크는 비밀결사단체다. 나만 소외받고 있는 게 아니구나, 위로받고 그들끼리 벌이는 일종의 세레모니다. 영화 보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한자리에서 친구들과 만난다는 의미가 클 것이다. 고등학생 영화제에 참석한 적이 있다. 20여편을 보면서 작품들 사이에 극심한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았다. 10년 이상으로 보이는 그 차이들은, 알고보니 카메라의 기종 차이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게 강남과 강북의 차이더라. 영화가 계급을 결정하고, 아니 계급이 이미 영화를 결정하고 있었다. 강북 아이들이 만든 영화에는 강남 아이들이 보여준 테크닉을 쓰고 싶다는 의도가 역력했지만, 상상력이나 예술적 창조성으로 돌파해내진 못했다. 하이텔 전성기의 마지막 순간에 통신을 하면서 강북은 강북끼리 강남은 강남끼리, 노는 방법에도 계급적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일상의 표현조차도 자본으로, 디지털을 바탕으로 한 자본으로 하고 있었다. 디지털 미디어 전개 방식에서 그걸 발견하곤 끔찍했다. 극장가는 건 모두에게 평등한 일이었지만, 미디어 엑세스권은 평등하지 않다. 계급의 차이까지 위장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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