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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고
2001-12-03

시사실/화산고

■ Story

무림의 전설로 전해내려오는 학교 화산고에 8번 퇴학맞은 전력을 가진 경수(장혁)가 전학온다. 어릴 적 벼락을 맞고 무시무시한 공력을 갖게 된 경수의 힘을 첫눈에 알아보는 것은 화산고의 일인자로 군림하고 있는 송학림(권상우)뿐이다. 한편 교감 선생과 역도부 주장 장량(김수로)은 무림 최고수가 되는 비법을 전한다는 비서(秘書) <사비망록>을 얻기 위해 송학림을 모함하고, 학림은 감방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교감은 이에 그치지 않고, 학원5인방이라는 해결사를 불러들여 학교를 완전히 장악하려 한다. 검도부 주장 유채이(신민아)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 이들 세력에 맞서다가 역부족을 느끼고 경수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이번만큼은 퇴학당하지 않고 조용히 졸업하고자 하는 경수는 비굴한 모습을 보일 뿐이다.

■ Review 초반부 뻔뻔스럽게 흘러나오는 “때는 화산 108년…”이라는 내레이션은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화산고>가 무의미하게까지 느껴지는 시대적 배경을 굳이 밝히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이 작품이 철저하게 허구와 판타지의 세계로 기울 것이라는, 해서 조금은 도발적이고 허무맹랑하더라도 양해를 바란다는 안내장을 던지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초반부터 경수의 재채기로 학교가 전율하고 송학림의 기운만으로 복도의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며 바늘방석에 앉은 경수의 얼굴이 정말로 새빨간 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논리적 구조와 개연성의 세계를 벗어난 ‘판타지적 논리구조’ 속에서 만들려 했다”는 김태균 감독의 말마따나 <화산고>는 만화 또는 무협지 그 자체라고 느껴질 정도로 황당한 이야기를 실사 화면에 옮겨담은 작품이다.

비단 공중에서 360도 회전을 하거나 분필 조각을 맞고 수십 미터 밖으로 나가떨어지는 장면만이 아니라, 평소엔 허술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하다가도 채이만 만나면 눈을 번쩍 뜨는 경수나 무공보다는 목소리만 유난히 커다란 장량 등의 캐릭터에서도 이같은 ‘만화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가 일본만화 여러 편의 줄거리와 캐릭터를 짜깁기한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를 노릇이다. 하지만 각 인물을 코믹한 내레이션으로 소개하거나, 영화 중간 돌연 ‘청춘잔혹사-쎄서 슬픈 사나이’라는 영화 속 영화를 보여주기도 하며, 묵직한 메탈사운드에서 갑자기 배경음악을 ‘서부극’풍으로 바꿨다가 다시 끈적한 블루스곡을 트는 등 쉴새없이 몰아치는 잔재미 덕분에 이러한 ‘혐의’는 쉽게 지나치게 된다.

‘순제작비 48억원, 제작기간 17개월, 촬영 162회, 사용한 필름 35만자’ 등의 외형적 규모와 무관치 않겠지만 <화산고>가 성취한 바는 작지 않아 보인다. 순수 국내 기술진이 만들어낸 와이어 액션의 수준은 상당하며, 대부분의 장면을 구성해낸 컴퓨터그래픽도 매끄러워 보인다. 물론 신인과 베테랑 배우의 연기력의 차이가 두드러지며 조연급 캐릭터들의 묘사가 부족하다는 등의 약점이 엿보이지만, 재기발랄한 이야기를 ‘블록버스터’라는 껍질에 짓눌리지 않고 깔끔하고 날렵하게 풀어놓은 것을 볼 때 이 영화의 공력 또한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문석 ssoo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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