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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 스토리 14] 시나리오 거절의 고통을 아시나요
박중훈(영화배우) 정리 주성철 2009-07-31

재기의 몸부림으로 찍은 <총잡이>부터 제2의 전성기 연 <투캅스2>까지

대마초 사건으로 인한 고통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의 집으로 가끔 지인들이 찾아오긴 했지만 거의 ‘면회’하는 듯한 기분과 다를 게 없었다. 모든 방송 활동이 제재를 당한 상태니 TV도 나가고 여전히 활발하게 일하는 선후배들을 보면 너무 부럽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는데 김의석 감독이 연락해 <총잡이>라는 영화를 하자고 했다. ‘박대서’라는 남자가 우연히 손에 들어온 한 자루의 권총으로 혼란스러운 감정과 더불어 묘한 자신감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시각장애인 역할의 <꼬리치는 남자>를 했다. 두 작품 모두 흥행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그에게 다시 충무로의 살가운 바람을 쐬게 해준 영화들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재기작 <돈을 갖고 튀어라>와 마주했다. 이제 그의 얼굴에는 <투캅스>의 함박웃음이 돌아왔고 백상예술대상 인기상까지 받았다. 탄력을 받은 그는 <은행나무 침대>도 마다한 채 다시 <투캅스2>로 내달렸고 그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박중훈이 다시 한국영화계의 중심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그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기 시작했다.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정말 뭘 할 수가 없었다. 수감 생활은 구치소에 있던 일주일이 끝이 아니라 그렇게 구치소에서 나오면서 실질적으로 시작됐다. 신혼집이 역삼동에 있었는데 사람들 손가락질받는 게 두려워서 비디오 가게도 못 갔다.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어쩌다 영화인들이 ‘포커’하는 데 가서 기웃거리다가 몇판 따면 일어나는 그런 생활까지 하다보니 ‘신혼 초에 지금 내가 뭐하는 건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집에서 아내는 한숨만 쉬었고 이런저런 돈들 다 물어주고 하다보니 통장 잔고에는 수십만원밖에 남지 않았다. 아내에게 너무 미안해서 나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얼마간이라도 일본에 가서 지내면 어떻겠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아내는 그런 말은 하지도 말라며 ‘그런 일로 흔들리게 될 결혼 생활이라면 한국으로 시집오지도 않았다’면서 더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 마치 영화 대사처럼 나는 마음속으로 ‘인간이기 때문에 당신과의 사랑이 식을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내가 먼저 등을 보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굳은 다짐을 했다. 정말 아내가 고마웠고 아내는 그 혹독한 시련을 이기는 큰 힘이 돼줬다.

촬영 중 재판, 어김없이 다음날 신문에…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는데 김의석 감독이 연락해서 <총잡이>라는 영화를 하자고 했다. 정말 고마운 제의이긴 했지만 내 머릿속은 ‘다시 영화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계속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대인기피증도 생겨서 아무런 힘도 없었다. 밖에도 안 나가고 오랜 시간 고통 속에 우두커니 있다보면 눈에 초점도 없고 폭탄 맞은 것처럼 바보 비슷하게 된다. 정신병원 같은 데서나 보는 그런 멍한 사람 말이다. 그런 상태로 어떻게 예전의 에너지를 내겠나. 그런데 매니저가 계속 자극을 줬고 김의석 감독을 비롯해 당시 의욕적으로 영화사업을 벌이던 삼성영상사업단에서도 격려해줘서 <총잡이>에 출연하기로 했다. 그것 자체가 엄청난 결심이었다. 지금껏 내가 영화로 살아왔는데 이게 아니면 난 재기할 수 없다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가장으로서 생계에 보탬이 되는 일을 책임지고 해야 했다. 그래도 촬영하다 중간에 또 재판받으러 가는 스케줄은 계속 됐다. 갈 때마다 기자들은 진을 치고 있었고 그러면 어김없이 그날 신문에 내 얼굴이 나오고 그러면서 <총잡이>를 찍었다.

당연히 촬영장에서도 마음은 늘 불편했다. 사람들이 뭔가 수군거리면 다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정말 고생이 심했고 꼭 다시 일어서고 싶었다. 그래서 난 요즘도 깊은 슬럼프에 빠지거나 이런저런 송사에 휘말려 고생하는 다른 유명인들을 보면 깊은 연민 같은 게 있다. 그렇게 힘들게 완성된 <총잡이>는 작품에 대한 평가와 흥행 면에서 딱히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애매한 결과를 남겼다.

악어·불기둥에 이은 세 번째 대형 사고

그래도 <총잡이> 개런티로 생활하는 데 숨통이 좀 트였다. 여전히 TV에는 나갈 수 없었고 나를 캐스팅하는 것 자체가 홍보에서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었지만 어쨌건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했으니 정서적으로 좀 안정도 됐다. 그러다 기획시대 유인택 대표가 <꼬리치는 남자>를 하자고 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향수감별사 역할인데 교통사고 이후 개 다롱이와 영혼이 바뀌는 설정의 영화였다. <총잡이>처럼 나로서는 재기의 몸부림으로 열심히 찍은 작품이다. 시각장애인 역할인데다 내레이션도 많고 힘든 연기도 제법 있었는데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시각장애인들을 직접 만나 연구도 많이 했다. 게다가 알 파치노가 퇴역한 시각장애인 장교로 출연한 <여인의 향기>(1992)도 떠올리면서 임했던 작품이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어떤 일이었냐면, 시각장애인인 내가 횡단보도에서 달려오는 차에 부딪혀 사고가 나는 장면인데 당연히 실제로는 직접적으로 부딪히면 안되는 거였다. 스턴트맨이 그랜저를 몰고 와 내 앞에서 끽 하고 서는 장면인데 눈을 감고 있는 나로서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뭔가 싸한 기분이 들어서 옆을 슥 봤더니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 달려오는 거다. 그 스턴트맨이 너무 의욕에 넘쳐서 내 바로 앞까지 달려오려 했다. 결국 차와 부딪히면서 내가 한 바퀴 굴렀다. 그나마 순간적으로 다리를 살짝 들어 큰 부상은 막을 수 있었다. 정말 아찔했다. 내가 여전히 고전 중인데 뭔가 해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끝나버릴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바이오맨>의 악어, <머나먼 쏭바강>의 불기둥을 떠올리게 하는 내 배우 인생의 아찔한 세 번째 대형 사고였다. (웃음) 그런데 <꼬리치는 남자>도 개봉하고서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흥행은 <총잡이>보다 더 안됐고. 그렇게 1995년이 지나갔다.

<돈을 갖고 튀어라>로 대중적 용서 구하다

다시 배우 생활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었다. 연달아 두편을 했지만 잘된 것도 아니고 여전히 방송 활동도 할 수 없으니 적극적인 홍보도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당시 우노필름의 차승재 대표가 <돈을 갖고 튀어라>를 하자고 했다. 그 작품으로 입봉하려던 김상진 감독은 <투캅스> 때 조감독이었고 참 좋아했었다. 그는 음흉한 면이 없고 참 밝고 유쾌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정말 웃겼다. 지금의 나를 웃길 수 있는 시나리오라면 충분히 통한다고 봤다. 여기에 뭔가 다 쏟아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두편의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바닥에 있던 나의 멍하게 초점 풀린 상태를 벗어나게 해준 영화들임은 분명했다. 아, 이렇게 나를 찾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구나, 하는 자신감도 줬다.

게다가 황규영이 부른 <나는 문제없어>라는 노래를 직접 선곡하기도 했다. 물론 영화에서는 빠른 템포로 춤추면서 부르긴 했지만 당시 내 심경을 절묘하게 담은 노래였다. “그렇게 돌아보지마. 여기서 끝낼 수는 없잖아. 나에겐 가고 싶은 길이 있어. 너무 힘들고 외로워도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 이 세상 위엔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 (웃음)” 그런 내 진심이 통했는지 모르지만 <돈을 갖고 튀어라>를 통해 대중적으로 용서를 구했던 것 같다. 방송쪽에서도 서서히 제재가 풀리면서 처음 KBS <이문세쇼>에 나가 지나간 일을 정식으로 사과하고 노래도 불렀다. 그렇게 <돈을 갖고 튀어라>의 의미는 상당했다. 왜냐하면 코미디라는 장르는 관객이 배우에게 호감을 갖지 않으면 웃음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마초 사건 이후 내가 다시 본격 코미디영화로 흥행을 터트렸다는 사실이 가장 뿌듯했다.

1995년 말 <돈을 갖고 튀어라>가 성공하면서 다시 광고 모델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시나리오도 예전처럼 많이 도착했다. OB라거 ‘랄랄라 춤’이 그때 시작됐고 나무나라, 한화 톡톡 시티폰, 오리리 화장품 등 단숨에 다시 10개 가까운 CF를 찍게 됐다. 그런데 그때 가장 큰 고민은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를 하느냐,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2>를 하느냐였다. 강제규 형은 대학 4년 선배고 늘 존경하던 형이었다. 나와 친하기도 했지만 언젠가 충무로에서 큰일 한번 낼 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나중에 각각 한석규와 신현준이 연기하게 되는 ‘수현’과 ‘황 장군’ 중에서 골라보라는 호의도 베풀어줬는데 계속 고민이 됐다. 그러던 차에 강우석 감독이 <투캅스2>를 하자고 했다. 더 큰 고민에 빠지게 됐다. 한번 더 코미디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길이었던 거다.

아쉽지만 강제규 형의 부탁을 거절

지금도 난 변신이라는 말을 쓰기 꺼려하는데, 한 배우가 하나의 이미지를 채워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변신을 하겠다는 생각에 동의하기 힘들다. 물론 나와 연기관이 다른 배우들도 있겠지만 난 기본적으로 한 가지 색깔을 다 채운 다음 ‘변신’이 아닌 ‘변화’를 주는 게 맞다고 본다. 이건 자기만의 명확한 색깔 위에 다양한 변화를 매력있게 보여주는 세계적인 명배우들을 봐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우선 코미디로 끝을 보고 싶었다. <투캅스>로 시작해 <마누라 죽이기> <돈을 갖고 튀어라>를 거쳐 <투캅스2>에 이르면 뭔가 완성될 거란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아쉽지만 강제규 형의 부탁을 거절하고 <투캅스2>에 출연했다. 1996년 봄에 개봉해 서울에서 70만명 가까이 영화를 봤으니 공전의 히트를 한 작품이었다.

<은행나무 침대> 역시 캐스팅을 바꿔서 촬영하고는 <투캅스2>보다 한달 정도 앞서 개봉했는데 50만 관객 정도의 큰 흥행을 기록했다. 내가 출연 제의를 거절한 미안한 마음도 있고, 강제규 형이 감독 데뷔하기 전에 시나리오작가로 고생 많이 했던 걸 아니까 더 기뻤다. 지금도 “내가 안 해서 더 잘된 거 같다”고 얘기하면서 서로 웃는다. 그래서 덧붙이고 싶은 건 충무로에서의 거절의 기술이다.

‘그냥 술이나 한잔하자’해서 마셨다가…

내가 경험한 바로는 아무리 잘 거절하고 정중하게 거절해도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그 상처의 크기를 얼마나 작게 만드느냐가 바로 그 기술이다. 그때는 흥행영화가 코미디 아니면 액션이었으니까 정말 캐스팅 제의가 많았다. 어쩔 수 없이 수락보다는 거절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으니까 인심도 많이 잃었던 것 같다. 한번은 내가 극구 사양했는데 제작자가 ‘안 해도 좋으니까 그냥 술이나 한잔하자’고 해서 새벽까지 술을 마신 적이 있다. 며칠 뒤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래도 힘들 것 같다’는 의사를 전하니까 그분이 완전히 ‘대노’를 하더라. ‘그럼 술을 마시지 말든지 사람 약 올리는 거냐 뭐냐’ 그러면서 말이다. 그 일이 있은 뒤, 또 어떤 감독과 제작자가 ‘작품은 안 하더라도 술이나 하자’고 했고 나는 안 할 거란 생각을 굳힌 작품이기에 정중하게 저녁 식사만 하고 끝낸 적이 있다. 지난 일이 생각나서 내 딴에는 매너를 지키려 한 것인데 이번에는 작품도 거절하고 순수한 의미의 술자리 제의도 거절한 ‘건방진 놈’이 됐더라. 정말 이건 어떻게 해도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 이상 결례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그게 내 삶의 엄청난 고통이었다. 연락 오는 것 자체가 끔찍할 때도 있었고, 당시 한 유명한 배우의 경우는 아예 전화는 물론 자동응답기도 끄고 집에서 팩스만 나오게 하는 경우도 봤다. 사람들이 무지하게 욕을 해댔고 나중에 두고 보자는 식으로 잔뜩 벼르는 모습도 봤다. 그만큼 거절은 어렵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나도 ‘잔대가리 굴린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어야만 했다. 요즘이야 시나리오도 그리 많이 들어오지 않으니까 참 마음이 편안하다. (웃음) 그래도 나는 일단 만나서 얼굴을 보며 거절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안성기 선배가 가장 바빴던 80년대의 어느 날, 합동영화사 주차장에서 오전에 성기 형과 그를 섭외하려는 한 제작부장이 영화 캐스팅 관련 얘기를 주고받는 것을 봤다. 그런데 점심 먹고 돌아왔을 때까지도 계속 그 자리에서 얘기하더라. 나도 90년대의 어느 날, 하얏트호텔에서 제작자 2명, 감독 1명과 함께 똑같이 ‘해달라’, ‘좀 힘들겠다’ 그런 얘기를 번갈아 주고받으며 점심은 물론 그 자리에서 저녁까지 먹으며 8시간 넘게 얘기한 적도 있다.

누군가가 들으면 다 행복한 얘기라며 공감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거절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지금 기준으로는 그냥 매니저 시켜서 거절하는 게 욕은 덜 먹을지도 모른다. 직접 만나서 한참 얘기를 나누다 거절당하면 오히려 상처가 더 클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직접 만나서 시나리오를 꼼꼼히 읽었다는 인상을 주고, 어떤 이유로 힘들겠다는 얘기를 정확하게 해주면 그 순간은 서운해도 먼 훗날 나를 더 이해해줄 것이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도 그거다. 출연 제의는 시상식이나 영화제 참석 요청 같은 것과 달리 시나리오에서부터 그 감독과 제작자의 신념이 담겨 있고, 종종 처음부터 그 배우 자신을 가정하고 쓰여진 시나리오일 때도 있다. 그럴 때의 거절은 그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무척 신중해야 한다. 충무로라는 게 생각만큼 그리 넓은 곳이 아니다. 그렇게 다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면 언젠가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자신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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