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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 리얼리즘 디지털 갱스터 시대극 <퍼블릭 에너미>
김용언 2009-08-12

synopsis 미국 내 범죄가 최고조에 달했던 1930년대 경제 공황기. 당시 서민의 돈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거대 은행만 털던 갱스터 존 딜린저(조니 뎁)는 대중의 스타이자 ‘공공의 적’이었다. 야심만만한 FBI국장 에드거 후버가 검거율 1위의 수사관 멜빈 퍼비스(크리스천 베일)를 영입하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존 딜린저는 체포 대상 1순위였다. 그럼에도 FBI의 수사력을 비웃듯 대담하게 은행을 털던 딜린저는 매력적인 빌리(마리안 코티아르)와 사랑에 빠진다.

하이퍼-리얼리즘-디지털-갱스터-시대극. <퍼블릭 에너미>는 30년대 미국 중서부 한복판으로 관객을 순식간에 끌어당긴다. 주로 HD카메라 소니 시네알타 F23 기종으로 촬영된 <퍼블릭 에너미>에서, 이 영화의 포맷이 2.40:1이었기 때문에 카메라의 본래 1920X1080 포맷이 1920x800으로 크롭되어야 했다. 촬영감독 단테 스피노티는 이 크롭되는 부분을 극단적으로 밀고나갔다. 때때로 배우들의 얼굴 이마와 턱의 일부가 잘리는 걸 감수할 정도의 극클로즈업이 속출한다. 그리고 그 순간 배우의 얼굴만이 온전히 그 장면을 표현하는 거울이 된다. 우리는 시대극을 보면서, 동시에 그 시대에 녹아들어간 배우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그 무드에 취하게 된다. 단지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듯한 착각, 이를테면 존 딜린저가 시카고 경찰청 안을 휘적휘적 걸어다니는 시퀀스.

마이클 만은 하이퍼 리얼리티만큼이나 중요한 한축으로 인물들의 지속적인 추락을 선택했다. 다시 말해 안티 히어로의 익숙한 기승전결에 신화 속 인간들이 장엄한 규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패배하는 비극의 정조를 가미한다. “지금 이 순간이 이렇게 재미있는데 왜 내일을 걱정해야 하지?”라며 자신만만하던 존 딜린저의 눈빛은 FBI의 추적이 거세질수록 점점 흐려진다. “모든 것을 원해, 지금 당장!”이라던 그는 점점 무기력해진다. 멜빈 퍼비스는 범죄의 한복판 속에서도 정확한 규칙과 예의범절을 고수했다. 그러나 딜린저 일당을 번번이 놓치면서 그는 지금까지 행하지 않았던 것들, 중상을 입은 남자를 죽음의 문턱까지 고문하고 다그치면서 정보를 얻어내는 일 따위를 저지른다.

영화의 말미, 퍼비스의 말년을 ‘자살’이라고 정리하는(퍼비스의 모호한 죽음을 총기 오작동으로 인한 실수라고 보는 시선이 더 많다) 자막의 의도 역시 분명하다. 빌리 프리셰가 딜린저에게 매혹된 것은 신분 상승의 욕구 때문이다. “다시는 남의 코트를 받지 않아도 돼”라는 딜린저의 한마디에 그를 따라나선 그녀는 자신을 구원해줄 마지막 가능성으로 딜린저를 위치시킨다. 그러나 역시 마지막 자막에서, 그녀는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했던 고향 위스콘신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밝혀진다. 꿈은 부서지기 쉽고, 그러하리라 믿었던 선험적 믿음은 곧바로 더럽혀진다. 존 딜린저가 생애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맨해튼 멜로드라마>였다. 우리는 <퍼블릭 에너미>를 ‘시카고 멜로드라마’로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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