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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응원으로 세상을 달래는 영화 <날아라 펭귄>
정재혁 2009-09-23

synopsis 초등학교 2학년생 승윤(안도규)은 학원에 시달린다. 영어와 발레, 태권도와 영화가 접목된 태글리시까지. 승윤 엄마(문소리)는 그것도 모자라 가족끼리는 영어로만 대화하자고 설친다. 승윤 엄마의 직장인 구청에선 신입사원 주훈(최규환)이 괴롭다. 채식주의자인 그에게 고기와 생선만 오가는 회식자리는 고역이다. 그 자리의 주동자지만 기러기 아빠 권 과장(손병호)에게도 아픔은 있다. 4년째 홀로 아파트를 지키는 그는 아내와 자식에게서 멀어져가는 자신이 슬프다. 그의 아버지 역시 비슷한 신세. 평생 아내만 바라보고 산 권 선생(박인환)은 갑작스런 아내의 이혼 요구에 당황한다.

<날아라 펭귄>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일곱 번째 인권영화다. 2003년 단편 <그녀의 무게>로 한 차례 국가인권위원회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임순례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들었다. 영화는 사교육, 직장 내 차별, 기러기 아빠, 황혼이혼 문제를 각각의 에피소드에 담아 보여준다. 별다른 구분 장치가 있지는 않지만 딱딱하지 않을 정도의 쉼표는 찍는다. 시작은 사교육 문제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교육하는 승윤 엄마는 세계화 시대에 맞춰 아이를 영어마을에 보내려 한다. 다른 집 아이에게 뒤질까 안간힘이다. 영어마을 입학은 아빠의 반대로 무산되긴 하지만 승윤을 둘러싼 과잉 주입식 교육 환경은 섬뜩한 기운마저 풍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직장 내 각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다. 고깃집으로 회식 간 자리에서 채식주의자가 처한 곤경이랄지, 폭탄주 문화에 섞이지 못하는 비음주자의 애로사항이랄지, 여성 흡연자의 말 못할 고민 등이 그려진다.

영화는 전 에피소드의 인물들을 하나씩 밖으로 빼내며 다음 에피소드를 이어간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선 권 과장 이야기를 확장해 기러기 아빠의 고충을 그리고, 네 번째 에피소드에선 권 과장의 부모로 시선을 돌려 노부부의 생활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세 번째 에피소드의 권 과장 가족은 승윤 가족의 10년 뒤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거운 소재들이지만 “인권문제를 가볍게 풀어보고 싶었다”는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매우 부드럽게 굴러간다. “마누라가 곰국을 끓이기 시작하면 무섭다”는 대사나 학원 가느라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의 에피소드, 비행기 내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영어교실 장면 등 현실감있는 디테일 덕이다. 영화는 교훈이나 가르침, 도덕적인 덕목이나 정치적인 올바름 안에 갇히지 않고 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공감을 끌어낸다. 다소 도식적일 수밖에 없는 인권영화의 딜레마를 충분한 드라마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로 풀어내는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왈츠를 춘다. 서로 몰랐던 속사정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보자고 제안하는 낙관의 신이랄까. <날아라 펭귄>은 신랄한 비판보다 따뜻한 응원으로 세상을 달래는 영화다. 딱히 해결책을 제시하진 않지만 영화가 제시하는 다양한 상황과 이에 대한 공감은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으로 적절해 보인다. 추석용 가족영화로도 더할 나위 없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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