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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연인과의 아주 색다른 만남 <호우시절>
이화정 2009-10-07

synopsis 건설 중장비 회사 팀장 박동하(정우성). 그는 중국 출장 첫날 우연히 두보초당에서 가이드를 하는 미국 유학 시절 친구 메이(고원원)와 재회한다. 낯설고 서먹한 두 남녀는 청두의 거리 곳곳을 거닐며 둘이 공유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키스도 했고 자전거도 가르쳐주었다는 동하의 기억과 달리, 메이는 자신은 키스는커녕 자전거도 탈 줄 모른다며 동하의 기억에 딴죽을 건다. 함께 있는 3일 동안 둘은 그 기억을 토대로 현재의 사랑을 쌓아간다. 그리고 과거에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추억이 지금의 사랑이 될 수 있길 염원한다.

사랑에도 타이밍이 있을까. <호우시절>은 이 진부한 질문에 관한 아주 상큼한 해답이다. 동하의 출장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만나지 않았을, 혹은 만남을 시도도 하지 않았을 두 남녀는 뜻밖의 재회를 한다. 극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수동적이라서 ‘우연히’라는 부사를 첨언해야 한다. 그러고 나선 일사천리다. 과거에 호감을 느꼈던 남녀는 티격태격, 누가 누구를 더 좋아했다는 식의 멘트를 주고받으며 (남자의)여행지에서의 짧은 데이트를 즐긴다. 그리고 ‘그때가 아니었더라면… 우린 달라졌을까’라는 식의 회한이 생기는 순간 영화는, 아니 동하와 메이의 설레는 호감은 농도 짙은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된다.

코믹스러운 상황 전개, 몇몇 장면에선 허진호 감독의 영화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카메라 움직임까지 더해지면서 <호우시절>은 이 아름다운 연인들의 현재를 경쾌하게 뒤따라간다. 두 연인의 사랑을 증명해줄 현재로 오롯이 내어진 청두의 거리는 사랑의 타이밍에 관한 회한을 드러냈던 <비포 선셋>의 파리와 일정 부분 맞물린다. 물리적 시간의 제한을 애써 떨치며, 혹은 연장하며 둘은 현재의 사랑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이 지속되는 건, 공유하는 과거가 있기에 가능한 연장선상의 감정들이다.

이 과정에서 동하와 메이의 사랑지수에 점수를 매긴다면 사실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현재의 호감도에 비추어볼 때 두 남녀가 공유했을 기억 속 사랑의 뼈대가 좀더 견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어라는 제약을 십분 감안하고 보더라도, 그들의 대화의 결은 좀더 현실적인 문제들을 껴안았으면 했다. 허진호 감독의 전작의 연인이 주었던 어른스런 대화, ‘자고 갈래’라는 속물 같은 단어를 대치할 단어를 알고 있는 연애고수들이 감탄하기엔 동하와 메이의 나이브한 대화는 조금 어리다. 결국 허진호 영화의 변화는 그가 시도한 형식이 아닌 대사에서 온 셈이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면서도 내뱉고 마는 허진호식 못된 연인의 대사, 그 서식이 빠지고 난 뒤의 생소함. <호우시절>은 그 낯선 연인과의 아주 색다른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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