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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명이 각자 펼치는 원맨쇼 <정승필 실종사건>
문석 2009-10-14

synopsis 500억원대의 자산을 관리하는 정승필(이범수)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약혼녀 미선(김민선)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말싸움을 하고 내린 뒤 실종된 것이다. 승진에 목이 탄 김 형사(손창민)는 무리한 수사를 펼치고 최근 여자친구에게 배신당한 박 형사(김뢰하)는 여자혐오증이 생겨 미선을 무턱대고 의심한다. 여기에 불명확한 증언, 정승필을 시기하는 동료, 경찰들을 귀찮게 구는 취객, 특종 욕심에 사건의 규모를 부풀리는 기자까지 뒤얽히면서 사건은 더욱 꼬인다.

세계의 수많은 감독들은 여러 인물에 비슷한 무게를 실은 채 이야기를 전개하는 ‘멀티 캐릭터 영화’의 어려움을 토로해왔다. 여러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다보면 이야기는 혼란에 빠지고 산만한 전개 속에서 영화는 지루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최고 달인은 단연 로버트 알트먼이다. <내쉬빌> <숏컷> <고스포드 파크> 같은 그의 대표적 ‘앙상블 영화’들은 어떤 사건과 그에 관련된 인물들이 오밀조밀한 날줄, 씨줄로 엮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서서히 각 인물들의 진실이 드러남에 따라 전체 사건의 퍼즐이 완성되는 까닭에 흥미와 긴장감은 배가된다.

<정승필 실종사건>은 알트먼의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와 비슷한 전략을 추구한 영화로 보인다. 정승필이 주인공이라고는 하지만 그와 엇비슷한 비중이라 할 수 있는 약혼녀, 형사, 취객, 기자, 회사 동료, 수상한 용의자 등을 한데 엮어내 이 떠들썩한 소동극을 완성한다는 전략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전략은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극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공중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다 화장실 문이 잠겨 실종자로 처리된 정승필의 상황에서부터 정승필을 납치하거나 감금할 이유가 거의 없어 보이는 주위 인물들의 설정은 보는 이의 관심을 붙잡지 못한다. 인물들이 전체적인 이야기에 지나치게 느슨하게 엮이다 보니 그들의 코믹한 행동은 기행(奇行) 아니면 개그 이상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그것도 10여명이 각자 펼치는 원맨쇼라니.

<정승필 실종사건>의 문제는 어쩌면 ‘멀티 캐릭터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난점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코미디를 결합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뚜렷한 중심과 폭발적 에너지가 있었던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성공 모델을 찾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게 딱 10년 전 영화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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