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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클로>의 연장선 <나는 비와 함께 간다>
이화정 2009-10-14

synopsis 거대 제약회사의 회장으로부터 실종된 아들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전직 형사 클라인(조시 하트넷). 오래전 집을 나간 아들 시타오(기무라 다쿠야)의 종적을 유추할 수 있는 건 그가 몇 차례 고아원을 돕기 위한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는 사실뿐이다. 단서는 아버지에게 건네받은 시타오의 사진 한장. 의뢰를 수락한 클라인은 LA에서 그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홍콩으로 가 친분이 있는 조멩지(여문락)의 도움으로 수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시타오를 찾는 또 한명의 남자 수동포(이병헌)가 등장한다.

트란 안 훙의 네 번째 작품 <나는 비와 함께 간다>는 위치상 <여름의 수직선상> 이후에 오지만, 사실 <씨클로>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 ‘차기작은 <씨클로>를 끌어안은 작품이다’라고 감독 스스로 밝혔듯이 영화는 상당 부분 <씨클로>가 제기한 문제를 연장한다. 단, <씨클로>가 베트남 출신 감독의 자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 이번엔 자신의 마크였던 ‘베트남’을 걷어내고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로 한발 나아갔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영화는 세 남자의 숨바꼭질 같은 게임으로 전개된다. 찾고자 하는 남자(클라인)와 몸을 숨긴 남자(시타오), 그리고 쫓는 남자(수동포)와 쫓기는지 모르면서도 실질적으로 쫓기고 있는 남자(시타오). 영화는 시타오를 중심으로 세 남자의 물고 물리는 원그리기다. 일견 추리물의 구조를 띠고 있는 것 같지만 감독의 관심은 이들의 만남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정작 트란 안 훙이 구하고자 하는 것은 사건의 결말이 아닌 이들 각자에게 내려진 숙명론적인 내면이다.

구원과 속죄에 관한 끝을 알 수 없는 탐구가 시작되는 것은 그래서 이 영화의 도식화된 시놉시스를 걷어내고 난 뒤부터다. 타인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걸 정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시타오는 그 숙명 때문에 몸서리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구원을 향한 몸부림은 클라인에게도 마찬가지의 무게로 다가온다. 신체를 훼손하는 연쇄살인마이자 예술가와 맞닥뜨리면서 그는 자신 내부에서의 구원을 갈망한다. 부패한 사회, 구원 따윈 없다고 믿는 조직의 보스 수동포에게서도 구원은 비켜갈 수 없는 존재의 문제로 다가온다. 구원은 <씨클로>에서 구원을 실천하던 누나의 모습으로, 끝끝내 구원을 얻지 못했던 시인의 모습으로 세 남자에게 새롭게 투영된다.

부패로 오염된 사회, 멸망의 징후들이 가득한 사회에서 구원만큼 절실한 문제도 없을지 모른다. 신약성서에서 차용한 은유적인 코드, 시각적인 장치들을 적극 활용하면서, 트란 안 훙은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한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극히 신선하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지만, 근본에의 탐구라는 점에서 그의 도전은 높이 살 만하다. <씨클로>로부터 14년을 삭혀둔 이 질문의 해답은 물론 관객이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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