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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의 道] 나쁜 놈이 바로 서야…

연재를 시작하며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최근 E모 교육전용 방송국에서 <독수리 5형제>부터 <시간 탐험대>까지를 아우르는 주옥같은 추억의 만화영화를 연속 방영해 시청자 제위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사반세기 만에 다시 접한 <은하철도 999>에서 메텔이 보여주었던 추억의 전신 훌러덩신은, 그녀가 어떻게 당시의 남자 어린이들을 일거에 불면에 시달리게 했던가를 재삼 확인시켜주었음과 동시에, 이제 다시 보니 다소 기아선상에 놓인 것이 아닌가 추정되는 골조형 몸매에서 환경파괴로 인한 식량자원 고갈에 대한 경각심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일깨우고 있었던… 건 아니고, 뭐, 아무튼 좋았단 얘기다.

한데 이들 추억의 만화영화를 보고 새삼 되살아온 것이 비단 메텔에 대한 존경심뿐만은 아니었으니, 필자의 뇌리에는 이 작품에 출연했던 나쁜 놈들에 대한 감회 또한 새롭게 되살아왔던 것이다.

‘나는 제작진쪽에서 그렇게 설정해버린 관계로 그렇게 된 그냥 원래 나쁜 놈’이라는 운명철학적 악역관을 바탕으로, 빨간눈/쌍뿔/송곳니 등의 나쁜 놈스러운 비주얼만으로도 제 할 일을 다했다 믿어 의심치 않는 대마왕(<이상한 나라의 폴>) 같은 복지부동형 나쁜 놈부터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정세를 예리하게 포착, 호떡 뒤집듯 주인님을 갈아타는 처세술을 채택함으로써 이제껏 타성에 젖어 있던 나쁜 놈들에게 ‘시류에 편승하여 대세에 야합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돈데크만(<시간 탐험대>) 같은 박쥐형 나쁜 놈까지, 작품들 속에 명멸해갔던 수많은 나쁜 놈들은 나름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기 위하여 땀과 눈물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렇게 세간의 천대와 멸시에도 불구하고 남몰래 음지에서 일하던 나쁜 놈들이 있었기에 양지의 착한 놈들은 정의의 수호자로서의 갑빠를 만방에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데 이것이 어디 추억의 만화영화에서만 일어났던 일이었으랴. 굳이 <터미네이터> 시리즈나 <에이리언> 시리즈 등의 흥망성쇠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제껏 나쁜 놈들이 영화의 재미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나쁜 놈이 바로 서야, 재미가 바로 선다’로 요약될 수 있는 이러한 원리에 입각해 본다면 작금의 현실이 영화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이유를, 우리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이 계속됨으로써 장기적으로 영화계가 떠안게 될 부정적인 여파를, 우리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필자가 또다시 분연히 노트북 뚜껑을 열어젖혔다.

본 칼럼 ‘나쁜 놈의 道’는, 다음 회부터 최신 영화들을 통해 만나는 각종 나쁜 놈들의 면면을 조망해 봄으로써 21세기 나쁜 놈들의 나아갈 바를 모색함과 동시에 우리 시대 나쁜 놈의 올바른 상을 정립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나쁜 놈의 道를 올곧이 세우는 장도에 감히 나서고자 한다.

현실보다 재밌는 영화를, 코딱지만큼이라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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