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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 대책없는 영화 <킬미>
정재혁 2009-11-04

synopsis 7년 사귄 남자에게 차인 진영(강혜정)은 자살을 결심한다. 그리고 시도한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지하철 선로에 몸을 던져보기도, 천장에 끈을 묶고 목을 매보기도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최후의 수단으로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한다. 타살을 가장한 자살이다. 그러나 이 역시 불발로 끝나고 만다. 의뢰를 받고 온 킬러 현준(신현준)은 자신이 죽일 사람이 들은 바와 달리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총 대신 욕을 한바탕 쏘아붙이고 간다. 자살은 실패했지만 진영과 현준의 만남은 계속된다.

영화의 첫 장면. 지하철 선로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노닥거리는 여고생들 뒤로 수상한 모습의 여자가 보인다. 이 여자는 전차가 들어온다는 방송이 흘러나오자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몸을 던진다. 달리는 전차가 화면을 아찔하게 가로지르는 이 인트로는 보통의 영화라면 끔찍해야 할 장면이다. 일상을 거칠게 찢어발기는 뜻밖의 사고랄까. <킬미>는 이 장면을 어이없는 해프닝의 전조로 사용했다. 수상한 모습의 여자는 열차가 들어온 반대편 선로에 떨어져 버둥거린다. 깨끗하게 죽어 사라지지 못한 여자의 어색하고 민망한 뒷모습이랄까. 실연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해 죽음을 택하려는 여자와 사람을 죽이는 일에 무감각해진 자신이 무서운 킬러의 이야기. <킬미>는 자못 심각한 드라마를 품은 영화지만, 그 무게를 싱거운 유머로 날려버리는 꽤 엉뚱한 작품이다.

성공률이 높지는 않지만 <킬미>가 시도하는 웃음은 나쁘지 않다. 치밀하게 짜인, 탁월한 센스의 유머라기보다 <개그콘서트>류의 말장난에 가깝긴 하지만 이를 이야기 속에 쑤셔넣은 감독의 연출은 뚝심있다. 문제는 그 유머의 질서를 잡아주는 이야기의 축이 부재하다는 거다. “우연히 참 잘도 만나네요”라는 극중 진영의 말처럼 현준과 진영의 연결은 우연에 지나치게 많이 기댄다. 진영의 갑작스런 키스, 이를 복수라 둘러대는 변명, 그리고 이를 물고 늘어지는 현준의 모습을 보면 심지어 관객의 입장에서 둘의 사이를 정말 묻고 늘어지고 싶을 지경이다. 인물에 대한 묘사도 충분치 않다. 현준이 킬러로서 갖는 고민, 실연당한 진영의 상처를 이해할 여지를 영화 속에서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영화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도 오리무중이다. 그저 사랑 이야기라 봉합하기엔 현준과 진영이 흘리고 간 찌꺼기가 너무 많고, 현준과 진영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내기엔 그 찌꺼기가 너무 성의없다. 어이없이 몇번 웃고 말았지만 <킬미>는 그저 엉뚱하게 대책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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