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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의 성장담을 그리는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
강병진 2009-11-04

synopsis 현우(장혁), 민석(조동혁), 진혁(이상우)은 외로움에 치를 떠는 30대 도시남자들이다. 어릴 적부터 친구인 이들이 외로움을 버티는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현우는 떠나간 연인을 향한 그리움을 대마초로 달래고, 진혁은 과거의 연인이자 민석의 아내인 수연(이민정)에게 집착하고, 민석은 섹스한다. 도시의 곳곳을 방황하던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결단을 내린다. 민석은 과거의 여자들을 통해 치유받으려 하고, 현우는 추억 속(혹은 상상 속)의 이상형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진혁과 수연이 은밀한 관계에 탐닉하면서 이들의 우정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펜트하우스’가 은유하는 공간은 증권사와 성형외과, 그리고 룸살롱이 많은 서울의 강남 일대다. 이곳에 사는 세 남자는 같은 위기에 처해 있다. 성공의 반대급부로 찾아온 허무함은 이들의 방황을 설명하는 가장 쉬운 단어다. 황폐화된 도시의 속내를 그린 영화들은 언제나 섹스와 환각의 당위를 허무함에서 찾곤 했다.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이러한 도시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는 세 남자의 성장담을 그리는 영화다.

성형외과 의사인 민석과 금융가인 진혁은 모두 자본주의의 수혜로 성공한 남자들이다. 그들의 능력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을 점령할 수 있는 권력이다. 그런가 하면 “있는 집 자식”으로 태어나 사진작가로 성공한 현우는 예술가란 명목으로 상류층 계급과 키를 맞추는 동시에 민석과 진혁을 비판적 시선으로 관찰하는 인물이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정승구 감독은 CG를 동원해 현우의 고독한 내면을 묘사하는 한편, 그의 입을 빌려 한국, 그중에서도 강남에 대한 고찰을 드러낸다. 영화에는 성형수술과 룸살롱, 안마시술소에서 벌어지는 엽색 행각 등 감독이 강남의 실체라 여겼을 풍경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환각에 빠진 현우는 그러한 풍경을 조롱하지만 정작 자신도 그 속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상류층 남자의 위기를 묘사하는 것과 동시에 지금 한국의 자본주의 풍경에 대한 문제제기 또한 영화의 야심으로 보인다.

문제는 야심은 확고한데, 야심을 드러내는 방식은 자아도취적이라는 점이다. 영화가 묘사한 황폐화된 도시인의 내면에서 허무를 공감할 만한 배려는 없다. 판타지적인 상상력을 동원한 내면연출이나 세태를 논하는 대사들은 과시욕이 앞선 듯 보인다. 고급 호텔과 오피스텔, 호화스러운 병원을 오가는 이들의 행각은 도발적인 설정이지만 자극적일 뿐 문제적으로 보긴 어렵다. 2시간20분에 이르는 상영시간도 이들의 내면적인 방황을 따라가기에는 버거운 양이다. 한국의 상류층, 그리고 강남의 생태보고를 설정해 대담한 문제작이 되고팠던 <펜트하우스 코끼리>의 야심은 뜬구름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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