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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랜드 에머리히 장단점이 극대화된 영화 <2012>
김도훈 2009-11-11

synopsis 과학자 햄슬리(치웨델 에지오프)는 2012년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태양 흑점의 폭발로 튀어나온 뉴트리노가 지구 내부를 끓어오르게 만들어서 급속한 지각 변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어쨌든 미국을 주축으로 한 강대국들은 3년 동안 선별된 지구인을 피난시킬 계획을 수립해왔고, 2012년이 되자 결국 전세계는 멸망하기 시작한다. 이혼한 소설가 잭슨(존 쿠색)은 정부 계획을 알아채고는 무너지는 LA에서 가족을 구해서 피난길에 오른다.

다시 한번 <2012>가 주장하는 지구 멸망의 시나리오를 검토해보자. 태양에서 분출된 뉴트리노라는 물질이 지구 내부의 액체를 변이시켜서 엄청난 지각 이동과 그에 따른 화산 폭발, 지진과 쓰나미로 지구가 멸망한다. 말이 되냐고? 물리학적으로나 천문학적으로나 말이 안된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1999년에 이어 또다시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2012년 멸망설이다. 마야문명과 주역과 노스트라다무스가 모두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주장했단다(노스트라다무스주의자들은 1999년이 계산 착오였다고 주장한다. 2012년에도 멸망하지 않으면 다시 계산해보니 2036년 즈음이라며 말을 바꿀 작자들이다).

롤랜드 에머리히가 2012년 지구멸망설을 듣자마자 무릎을 탁 쳤을 법도 하다. <10000 BC>의 실패 이후 곤경에 처한 재난영화 전문감독이 사그라드는 경력을 되살리려면 좀더 크게 뻥을 치는 재간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하여간 에머리히는 작정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난영화를 <2012>에 쓸어담았다. <대지진> <투모로우> <단테스 피크> <포세이돈 어드벤처>가 이 한편에 다 들어 있다. 최신 기술로 만든 노아의 방주가 등장하는 클라이맥스는 50년대 고전인 <세계가 충돌할 때>의 재현이다. 재난의 스펙터클만을 기대한다면 <2012>는 꽤 괜찮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이미 인터넷으로 공개된 초반 LA 침몰장면이다. 옐로스톤 폭발장면과 에베레스트 산맥 쓰나미 장면도 근사하긴 하지만 <2012>의 재미와 제작비는 대부분 LA장면이 쓸어간 듯하다. 뒤로 갈수록 스펙터클의 규모와 긴장감 역시 격렬하게 줄어든다는 소리다.

시나리오는 네안데르탈인 지능으로 만든 <10000 BC>에 비하면 크로마뇽인 정도는 된다. 다만 주인공 가족은 정말이지 정이 안 가는 캐릭터들이다. <인디펜던스 데이>나 <투모로우>의 주인공들이 적어도 장엄한 자기희생적 인류애를 보여준 데 반해 <2012>의 가족들은 희생자들을 하나하나 밟으며 살아남는 생존의 잔기술을 보여준다(이러니 누가 죽든 말든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지 않을 법도 하다). 어쨌거나 롤랜드 에머리히는 자신의 장단점이 극대화된 영화를 만들었다. 재난은 거대해지고 서사의 구멍은 더 거대해졌으며, 더군다나 아주 길고 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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