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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에 대한 솔직한 대화 <귀없는 토끼>
강병진 2009-11-18

synopsis 주인공 루도(틸 슈바이거)는 가십 전문기자다. 유명인사의 약혼식을 몰래 취재하던 날, 사우나 복장인 그는 엉덩이가 드러난 채 약혼식 케이크에 떨어진다. 경찰서로 끌려간 루도는 300시간 유치원 봉사 명령을 받는다. 그런데 하필 유치원 선생이 어린 시절 루도에게 괴롭힘을 당한 여자 안나(노라 치르너)다. 제대로 걸린 루도의 유치원 생활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그러는 중에 하룻밤 사랑을 즐기는 루도와 사랑을 거부하며 살던 안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철들지 못한 남자와 그를 길들이려는 여자는 싸워야만 한다. <귀없는 토끼>의 루도와 안나 또한 사랑에 대한 개념 차이로 싸우는 수많은 커플 중 하나다. 독일의 국민배우인 틸 슈바이거가 감독·각본·주연을 맡고, 독일 개봉 당시 관객 약 600만명을 동원한 히트작이라고 해서 독일 특유의 유머를 기대할 필요는 없다. <귀없는 토끼>의 지향점 역시 수많은 남녀를 다투게 만드는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일 뿐이다. 유치원에 봉사하러 가서도 원생의 어머니에게 ‘작업’을 걸 정도로 자유분방한 남자, 그리고 예의 두꺼운 안경에 언제나 원칙만을 내세우는 여자도 독일에서는 기어이 사랑에 빠진다. 이런 기적은 국경을 초월하게 마련이다.

지역적인 색깔 대신 <귀없는 토끼>에서 강조하는 건 성(性)에 대한 솔직한 대화다. 루도와 안나는 서로가 가진 사랑의 관념에 대해 토론한다. 대화는 침대 위 남녀의 동상이몽을 털어놓는 데까지 이어진다. 섹스에 임하는 남자의 태도를 분류해 설명하는 부분은 <귀없는 토끼>를 성인용 성상담 프로그램의 반열에 올린다. 성에 관한 적나라한 대사가 독일의 청춘관객을 사로잡은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애써 동시대 남녀의 모습을 담아내려는 제작진의 안간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유치원이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아이들과 어른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유머와 축제에서 사랑을 완성짓는 마무리 등도 익숙한 풍경이다. 다만, 익숙한 사랑 이야기인 만큼 <귀없는 토끼>에도 공감할 부분은 있다. 안나와 루도는 어느 날 하룻밤을 같이 보낸 뒤 소통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안나는 그녀답게 점점 남자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루도는 여전히 또 다른 원나이트 스탠드 상대를 찾아나선다. 사랑이 시작될 무렵 드러나는 남자와 여자란 종족의 차이는 재차 확인해도 저릿하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그런데 극중에서 두 남녀가 주고받는 귀없는 토끼 인형이 왜 굳이 제목이 됐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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