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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을 보는 네 가지 시선 [3] 듀나

추리도 멜로도 실패했어

징징거리는 신세 한탄으로 가득찬 신파… 범죄묘사도 최악

박신우의 영화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 각색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관객이 무엇을 원작으로 보고 영화관에 들어오는지 알아야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소설인가, 아니면 그 원작 소설을 각색한 일본 드라마인가. 그리고 내가 여기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원작 소설 독자의 입장이다.

우선 <백야행>의 소설이 어떤 작품인지 간단히 정리하겠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10여년에 걸친 두 범죄자의 긴 범죄행각과 그를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담은 추리소설이다. 단지 여기서 작가는 하나의 형식적 실험을 하는데, 그것은 범죄자나 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대신 챕터마다 그들과 엮이게 되는 피해자나 부수적인 인물들을 한명씩 선정한 뒤 그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소설이 거의 끝나는 후반부에야 표면에 떠오른다.

글쓰는 사람에겐 분명 매력적인 아이디어지만 <백야행>이라는 소설이 그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이디어에 비해 소설이 지나치게 길고 두 범죄자의 인상은 피상적이다. 미스터리로서는 진상이 너무 훤히 들여다보이고 로맨스로 보기엔 주인공들의 노출이 너무 적으며 성격과 심리묘사는 수상쩍은 구석이 있다. 각각의 부분들은 재미있지만 이들이 합쳐졌을 때 작가가 의도했던 것만큼의 효과를 전달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원작은 미완성의 완성도를 갖춘 흥미로운 재료의 보고로 각색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책이다.

각색물로서 영화가 그럭저럭 성공한 부분은 상식적으로 가장 어려웠을 부분이다. 즉 10여년에 걸친 범죄사건의 에피소드들로 이어진 원작을 해체해서 2시간이 조금 넘는 극장용 영화의 스토리로 압축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들 이야기의 중간 부분을 대폭 삭제하고 이야기의 끝부분과 도입부분을 교차되는 구조의 이야기로 구성했는데, 쓸 만하다. 좋다는 게 아니라 그냥 쓸 만하다는 것이다. 이 구조를 타면 시대의 흐름을 교활하게 타면서 성장해가는 범죄자 커플의 경력은 대부분 사라질 수밖에 없지만 아무리 아까워도 극장용 영화의 러닝타임을 고려해야 한다. 드라마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뽑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영화 <백야행…>의 구성은 그래도 말은 된다.

먼저 걸리는 건 추리물로서의 요소이다. 아까 진상이 너무 쉽게 드러난다고 불평했지만, 여전히 <백야행>은 전문 작가가 꼼꼼한 사전조사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구성한 추리물이다. 극장용 영화가 추리소설의 구성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그 가치는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영화의 범죄묘사는 최악이다. 논리의 비약은 그냥 그렇다고 쳐도 최소한 주인공들이 그 긴 세월 동안 완전범죄를 저질러온 영리하고 유능한 범죄자들이라는 사실 정도는 보여주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냥 완전범죄자의 표정만 지으며 사방에 증거를 흘린다. 영화가 새로 추가한 자동차 사고장면을 보자. 아무리 게을러빠진 형사라고 해도 한나절만 증거를 들여다보면 누가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영화적 과장이라는 면죄부를 받기엔 한참 모자란다. 영리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그들이 영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의무다.

추리물적인 요소를 이렇게 헐겁게 다루었다는 건 멜로에 집중하겠다는 이야기인데, 미안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실패한 부분은 바로 멜로다. 소설 <백야행>은 멜로에 대해 아주 조금 이야기하고 있지만 적어도 개념만큼은 확실하게 잡고 있다. 그것은 세상의 눈으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은폐되어 있고, 서로를 거의 만나지도 않으며, 구체적인 결합과 같은 희망은 꿈도 꾸지 않는 사람들의 스토익한 사랑 이야기다. 바로 그것이 이 멜로드라마의 특별한 점이며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사랑 이야기를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차가움을 죽이지 않는 것이다. 꼭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 새로운 감정선을 정당화하고 감정의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미안하지만 최종 결과로 나온 영화는 징징거리는 신세 한탄으로 가득 찬 신파영화로 이중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특히 눈물과 한탄으로 더러워진 마지막 장면은 그냥 ‘구질구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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