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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를 빙자한 슈퍼히어로물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
김도훈 2010-02-10

synopsis 17살의 퍼시 잭슨(로건 레먼)은 자신이 바다의 신 포세이돈(케빈 매키드)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고등학생이다. 어느 날 신들의 제왕 제우스(숀 빈)의 번개가 누군가에게 도둑을 맞고, 졸지에 누명을 뒤집어쓴 퍼시 잭슨은 자신이 포세이돈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제 퍼시는 친구인 켄타우로스 그로버(브랜든 T. 잭슨), 여신 아테네의 딸 아나베스(알렉슨드라 다다리오)와 함께 누명을 벗고 번개의 행방을 찾기 위해 지옥의 신 하데스(스티브 쿠건)을 찾으러 길을 떠난다.

세상의 온갖 신화를 섭렵한 할리우드가 찾아낸 새로운 보고는 그리스 신화다. 릭 라이던의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의 설정을 한번 보자. 올림포스 신전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있고, 메두사는 시골에서 빈티지 가구를 판다. 호메로스가 자빠질 일인데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은 또 하나의 기겁할 설정을 덧댄다. 신들이 인간과 관계를 맺어 태어난 아이들이 수천명이나 있으며, 그들은 강가의 캠프에서 구식 군사훈련을 받으며 모여산단다.

그리 잘못된 설정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리스 신화>를 대충 한번 훑어보시라. 신들의 강간과 간통으로 잉태한 많은 인간들이 고통받거나 영웅으로 행세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혹시 퍼시 잭슨은 아비 없이 홀로 자란 탓에 아비를 신격화하는 현대 미국 10대들의 메타포일까? 물론 그리 깊이 팔 필요는 없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크리스 콜럼버스는 자신이 노리는 타깃이 아동이라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다. 손에 땀을 쥘 만한 갈등은 없지만 다양한 공간을 오가며 벌이는 주인공 소년 소녀의 모험은 꽤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특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벌이는 액션 시퀀스는 이 영화가 실은 그리스 신화를 빙자한 슈퍼히어로물이라는걸 잘 보여준다.

성인 조역들이 끝내준다. 지옥의 신 하데스는 스티브 쿠건이, 하데스 몰래 바람 피우는 걸 낙으로 살아가는 부인은 로자리오 도슨이 맡아 포복절도할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우마 서먼이 아이포드 뒷면에 정신이 팔려 참수당하는 메두사로 등장하는 건 또 어떻고. 숀 빈이나 케빈 매키드 같은 배우들이 점잔 떨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의 신전에 앉아 진지하게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감독이 ‘컷!’을 외치는 순간 그들이 얼마나 낄낄거렸을지 짐작이 간다. 차기작에는 또 누가 나올까?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거대한 맥주통으로 뉴욕을 짓이기겠다 선언하는 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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