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이성의 영역을 상실한 늑대인간 <울프맨>
장영엽 2010-02-24

synopsis 미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영국 귀족 로렌스(베니치오 델 토로)는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에 아버지(앤서니 홉킨스)가 살고 있는 고향 저택으로 돌아온다. 동생의 주검은 인간이 한 짓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처참하게 훼손된 상태다. 동생의 약혼녀 그웬(에밀리 블런트)의 부탁을 받고 살인사건의 배후를 밝혀나가던 로렌스는 정체 모를 괴물에게 습격당하고, 그 이후로 점점 이상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확실히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늑대인간에 대한 경계심을 느슨하게 풀어놓긴 했다. 짐승적인 본능보다 인간으로서의 야성성을 전시하듯 자랑했던 퀄렛 가문의 늑대인간을 생각한다면, <울프맨>의 첫 시퀀스는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숲속을 헤매는 남자(로렌스의 동생)를 정체불명의 괴물이 공격하는데, 그가 손을 한번 휘두르자마자 남자의 얼굴 반쪽이 뜯겨져나간다. 이 영화에는 보이는 대로 물고 뜯고 자르고 짓이기는, 이성의 영역을 상실한 늑대인간만이 존재한다. 영화 내내 인간의 절단된 사지가 굴러다니고, 잔혹한 살육장면이 잔치처럼 펼쳐진다. 이건 명백히 고어영화다.

<울프맨>은 호러영화의 클래식으로 자리잡은 동명의 원작 영화(1941)에 대한 경의를 숨기지 않는다. 이 영화의 첫 대사는 원작의 그 유명한 구절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와 밤중에 기도를 올리는 이조차도 울프베인(wolfbane)에 꽃이 피고 가을 달이 빛날 때 늑대가 될 수 있다”로 시작한다. 원만하지 않은 부자관계나 로렌스-그웬의 로맨스, 집시들의 축제 등 원작 영화의 주요 줄거리 또한 그대로 차용됐다. 로렌스의 아버지가 들고 다니던 늑대 문양의 지팡이가 또다시 등장하는 등 팬들을 위한 디테일적 재미도 마련되어 있다. 다만 시대적 배경을 1940년대에서 1890년대로 바꾸었는데, 이는 현명한 선택인 듯하다. 대체적으로 깔끔하고 신사적이었던 원작의 배경은 어둡고 음침한 시골 마을로 바뀌면서 공포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일조한다. 다른 장점 또한 대부분 시각적인 효과에 있다. 런던의 지붕 위를 격렬한 속도로 달리는 늑대인간의 도주장면과 그림자 효과를 살린 집시촌 습격장면은 칭찬받아도 좋을 만한 리메이크작의 창조물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작의 시각적인 복원에 집중한 나머지 이야기와 정서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로렌스와 그웬에겐 애당초 애절한 로맨스를 펼칠 만한 상황이 주어지지 않는다. 맥없이 끝나버리는 결말은 파국을 향해 돌진하던 영화의 힘을 한꺼번에 소진시켜버린다. 특히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베니치오 델 토로와 에밀리 블런트라는 훌륭한 배우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조 존스턴(<쥬라기 공원3> <쥬만지>)의 연출 능력이다. 그 와중에도 한순간에 광기를 드러내는 앤서니 홉킨스의 폭발적인 연기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새로운 클래식 캐릭터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