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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당한 14살 소녀의 가족 관찰기 <러블리 본즈>
강병진 2010-02-24

synopsis 연어의 이름을 가진 14살 소녀 수지 새먼(시얼샤 로넌)은 1973년 12월의 어느 날, 살해당한다. 아빠 잭(마크 월버그)과 엄마 애비게일(레이첼 바이스), 그리고 동생들은 수지의 죽음이 가져온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수지를 떠올리는 건 그녀를 죽인 옆집 남자 하비(스탠리 투치)도 마찬가지다. 천국으로 떠나지 못한 수지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남아 가족과 살인범, 첫 키스의 남자를 지켜본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버텨가던 어느 날, 잭은 우연히 하비가 딸을 죽인 범인인 걸 직감한다. 하지만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러블리 본즈>는 피터 잭슨의 전작들과 이어놓기에는 의외의 작품이다. 원작인 앨리스 세볼드의 동명 소설은 어느 날 살해당한 14살 소녀가 영혼으로 남아 가족을 관찰하는 이야기다. 딸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가족들에게 가져온 시련, 그 와중에 성장하는 동생들, 살인범을 잡으려는 가족들의 분투,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면서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 죽은 이의 목소리로 전달된다. 피터 잭슨의 전작들과 이어놓고 보기에는 다소 낯간지럽고, 유머를 허용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상당히 작은 규모다. 물론 그의 필모그래피에도 소녀들의 심상을 다룬 <천상의 피조물>이란 영화가 있었다(그녀들도 수지와 똑같은 14살이었다). 그렇다 해도 천진난만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했던 상상의 세계를 그린 <천상의 피조물들>과 가족 간의 유대를 강조하는 <러블리 본즈>의 정서적 거리는 꽤 멀어 보인다. 원작의 팬들이 피터 잭슨을 마냥 지지할 수 없었던 이유다.

그들의 우려대로 피터 잭슨은 원작의 팬들을 배려하는 대신에 자신이 보고 싶은 것에만 공을 들였다. 원작에서 세심하게 묘사된 가족들의 방황과 동생들의 성장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대신 피터 잭슨은 수지가 있는 경계세계의 묘사에 제작비와 러닝타임을 할애한다. 수지의 아빠인 잭이 딸과 함께 만든 ‘유리병 속의 배’를 깨뜨릴 때, 수지 눈앞에서는 유리병에 담긴 거대한 배들이 파도에 휩쓸리다 부서지는 풍경이 연출된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지워온 피터 잭슨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장면이다. 분명 피터 잭슨과 제작진은 수지가 살고 있는 경계세계를 <반지의 제왕>의 ‘중간계’로 칭했을 것이다.

피터 잭슨의 취향이 확연히 드러나는 점이 흥미롭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러블리 본즈>는 어느 하나 방점이 없는 영화가 돼버렸다. 가족들의 황폐화된 내면을 묘사하는 에피소드는 빈약해졌고, 수지의 역할도 어정쩡해졌다. 수지의 등장이 오히려 영화의 정서적인 힘을 무력화할 정도다. 호평받아야 할 성취가 있다면 배우들의 연기다. 살인범 하비를 연기한 스탠리 투치는 살해의 순간을 복기하며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를 과장없이 섬뜩하게 그려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시얼샤 로넌의 예민한 표정도 잊히지 않을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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