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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을 기대해볼 만한 신인감독의 등장 <베스트셀러 >
주성철 2010-04-14

synopsis 백희수(엄정화)는 인기 베스트셀러 작가다. 하지만 표절 혐의로 한순간에 모든 걸 잃고 시골 외딴 별장으로 내려간다. 남편(류승룡)과도 별거 상태라 하나뿐인 딸과 함께 지내는데 딸은 보이지 않는 ‘언니’와 늘 이야기를 나눈다. 그 언니란 유령이 분명하지만 창작에 목말라 있던 희수는 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소설로 완성해 재기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 역시 표절 논란에 휩싸이고 희수는 이야기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다시 별장으로 내려간다.

<베스트셀러>는 야심적으로 크게 전반과 후반으로 나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전반부가 창작자로서 희수의 고통을 중심에 놓은 호러영화의 느낌이라면 후반부는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가면서 거의 액션 스릴러 장르처럼 펼쳐진다. 또한 전반부의 여러 설정들은 의도적인 맥거핀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다소 불친절하게 다가온다. 그외에도 이 영화가 서 있는 경계는 더 있다. 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초자연적인 것인지 아닌지 궁금하고, 마을의 토착민들과 방문자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거리감도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유령의 얘기를 글로 옮긴 희수의 작업을 표절이라 할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까지, 제법 여러 가지 상황들을 펼쳐놓는다.

얼핏 떠오르는 ‘한 핏줄’ 영화들은 많다. 중반을 지나면서 이 영화 자체에 표절 혐의가 있는 건 아닌지 의아할 정도로 ‘외딴 별장에 뚝 떨어진 작가’라는 설정에 집중한다. 호숫가의 음산한 별장은 <장화, 홍련>(2003)도 생각나게 하고 창작력이 바닥나 한자도 써내려가지 못하는 작가의 고통은 <시크릿 윈도우>(2004)의 조니 뎁도 떠오르게 한다. 그만큼 익숙하고 만만찮은 소재라는 얘기다. 하지만 일찌감치 희수에게 두 번째 표절 혐의까지 씌우면서 영화는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전반에는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은 용의자들이 후반 들어 슬그머니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은 꽤 세련됐다.

라스트로 달려가며 그들과 거의 패닉 상태처럼 뒤엉키는 엄정화의 악전고투도 볼 만하다. 이야기에 헌신하며 모든 걸 내던지는 엄정화는 하지원과 더불어 가장 과소평가받고 있는 배우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외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노련한 배우들의 에너지를 조율하는 방식도 좋다. 후반부의 힘은 배우들의 힘이기도 하다. 이처럼 <베스트셀러>의 장르적 구도는 여느 영화에서 보아온 익숙한 상황과 설정들의 조합처럼 느껴지지만 꽤 솜씨 좋게 치고 빠진다. 지금껏 실망스러웠던 대부분 신인감독들의 장르영화가 용두사미에 그쳤다면 <베스트셀러>는 오히려 뒤로 가면서 더 탄력을 받는다. 차기작을 기대해볼 만한 신인감독의 이름이 하나 더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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