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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익준] 이 남자의 차기작을 차마 물을 수 없었네
주성철 사진 오계옥 2010-04-22

<똥파리> <집 나온 남자들>의 양익준

양익준 감독을 옛 당인리발전소 부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가 얘기하기로 집에서 인터뷰 장소까지 걸어서 딱 70초, 이사온 지는 얼마 안됐단다. 지난 1년 반 사이 무려 4번의 이사를 다닌 끝에 정착한 곳이다. <똥파리>에 나오는 집(김꽃비가 연기한 연희의 집이 실제로 그의 집이었다)에서 6년, 그 집을 빼야 해서 능곡으로 옮겨 살다가 또 나와야 해서 고영재 PD 집에서 두달 반 정도 얹혀살고 그러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어쩌면 <똥파리> 이후 갑작스레 큰 주목을 받고, <집 나온 남자들>이라는 이른바 ‘충무로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생활이 폈’기 때문은 아닐까 지레짐작하는 것도 사실 큰 무리는 아니다. 지난 1~2년간 그만큼 ‘하루아침에 뜬’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그런데 워낙 이전에 빚진 게 많아서 돈이라고 생겨봐야 여전히 그의 집에는 TV도 없다). 그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도 그거다. 모두가 예상하는 화려한 모습에 감춰진 이야기, <똥파리>가 기억에서 잊혀져가는 시점에서 궁금했던 것들, 그리고 감독이자 배우로서 독립영화계의 입지전적 인물이었던 그가 꾸려갈 앞으로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어쩌면 이제 진짜 양익준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역시 많은 것에 지쳐 있었고, 모두가 궁금해하는 ‘다음’에 대한 생각은 현재로선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가 마지막’이라는 전제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지쳤으면… 라식수술한 눈이 다시 나빠질까

양익준은 불과 얼마 전까지 <집 나온 남자들>의 홍보활동에 매진했다. 함께 ‘투톱’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지진희보다 더 많은 인터뷰 일정을 소화했다. 정말 쉴 틈이 없었다. 게다가 <똥파리>도 지난 3월 말 일본에서 개봉했다. 말하자면 ‘아직도 <똥파리>’다. 애초 장기상영을 전제로 1개관으로 시작해 현재는 3개관으로 ‘대폭’ 늘어난 상태. 그렇게 쉬지 않고 달리다보니 피로와 스트레스가 차고 오르고 올라 실제로 몸 구석구석 성한 데가 없다. “원래 흡연량이 하루에 두갑 이상이고, 불과 얼마 전에 뭘 했는지도 기억 못할 정도다. 너무 긴장이 탁 풀려버리니까 맥주 한잔에 현기증이 날 때도 있다. (웃음) 그동안 움직이면서 얻은 거라곤 쇠락과 망각뿐”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최근 다시 안경을 쓰게 된 것도 시력이 더 나빠져서다. “10년 전에 라식수술을 했는데 <집 나온 남자들> 끝나면서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 피로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데 도대체 얼마나 몸이 망가졌으면…” 하고 웃는다. 그 허탈한 모습에서 <똥파리>나 <집 나온 남자들>의 에너지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정말 지쳐 보였다.

원래 <똥파리>의 해외영화제 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쉴 생각이었다. 3~4년 동안 거의 30인분 정도의 일을 혼자서 짊어지고, 연출과 연기뿐만 아니라 사소한 세금계산서까지 다 챙겨야 하는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일상이었다. 20회차 정도 찍고는 돈이 다 떨어져서 스탭들이 일단 해산한 상태로 달랑 촬영 퍼스트와 둘이서 나머지 15회차를 마무리한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나머지 회차를 찍으면서도 촬영이 없을 때는 수시로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5만원씩, 3만원씩 융통해 돈을 모았다. 돈이 없어 스크립터의 휴대폰 요금마저 끊기는 상황이니 단돈 몇 만원이 정말 소중했고, 20만원만 모여도 한회차를 찍을 수 있으니까. 물론 그렇게 바닥까지 치면서 완성한 영화가 세간의 커다란 관심은 물론 해외 유수 영화제들에서 수상하며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낸 것은 말 그대로 전화위복의 경험이었다.

그는 아직도 <똥파리>를 통해 얻게 된 친구들의 리스트가 한참 더 남아 있다. “도쿄 필멕스영화제에서는 사부 감독과 함께 소주를 가져와서 자기가 직접 폭탄주를 타주던 니시지마 히데토시, 프랑스에서 만난 뤼디빈 사니에르는 <똥파리>를 너무 재밌게 봤다며 나하고 함께 영화를 찍고 싶다는 믿기 힘든 말까지 해줬고, 모두가 괴팍한 영감이라도 한다는 피에르 뤼시앙은 자기가 <네 멋대로 해라>의 조감독이었다며 무한 친절을 베풀어줬다(<똥파리>의 영어 제목이 바로 <네 멋대로 해라>의 영어 제목인 <Breathless>). 허우샤오시엔 감독님도 내가 거의 영어 못하는 거 아시면서도 직접 전화까지 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다.” 그런 경험들을 얘기할 때는 역시 또 자세를 고쳐 앉게 되고 말 또한 빨라진다. 그렇게 순식간에 감당하기 힘든 경험들을 안겨준 <똥파리>는 그를 영원히 따라다닐 이름이다.

<똥파리> 원본 데이터를 잃어버렸다고?

<집 나온 남자들>을 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똥파리>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서였다. “<똥파리>를 완벽하게 지우고 싶었다. ‘젠체’하지 않는 지진희, 이문식 선배님과 함께 연기하게 된 것도 행운이고 촬영장에서도 정말 동네 사람처럼 살았다”며 “영화 홍보를 위해 ‘빤스’도 벗을 각오도 했다”고 말한다. 물론 그 정도까진 아니고 실제로 웃통 정도까지 벗을 일은 있었지만, 어쨌건 그토록 원하던 휴식을 <집 나온 남자들> 이후로 미뤄뒀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찾아온 휴식의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흥행 또한 마음대로 되면야 얼마나 좋겠냐만 굳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가야 할 길이 더 멀기 때문. “불과 얼마 전까지 내 용량이 다 수용할 수 없는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감당하기 힘든 지경이었다. 이제 좀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게 그의 얘기다. “<똥파리> 원본 데이터를 잃어버린 것 같다. (필름으로 치자면 네거필름 유실?) 1테라 외장하드 2개에 담겨 있었는데 도무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만으로도 지금 그의 공황상태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두어 시간 함께 얘기하면서 느낀 바로도, 정말 그는 휴식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고 뭔가 진지하고 꼼꼼하게 수습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모두가 궁금해하지만 어쩔 수 없이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게 되는 얘기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들 차기작이 뭔지 정말 안 물어보셨으면 좋겠다. 감추려고 하는 게 아니다. 진짜 아무 생각이 없다. 당분간은 그냥 쉬고 싶다니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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