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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던 순간 <하프웨이>
장영엽 2010-04-28

“그 사람 반경 25m 이내로 다가서면 휘청거리게 돼. 이대로라면 부서져버릴 거야.” 여고생 히로(기타노 기이)는 사랑에 빠졌다. 상대는 농구도 잘하고 성적도 우수한 동급생 소년 슈(오카다 마사키). 그와 손뼉만 마주쳐도 현기증을 일으키던 히로에게 기회가 왔다. 양호실에 들렀다 우연히 히로의 마음을 엿듣게 된 슈가 그녀에게 고백한 것이다. 두 사람은 곧 연인이 되지만 그들에겐 고3이란 꼬리표와 대학 입시라는 장애물이 남아 있다. 히로는 슈가 도쿄의 명문 대학을 지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헤어짐을 미리 두려워한다. 불안으로 점철된 연인들의 마음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두 사람은 종종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지나고 나면 아주 사소했던 문제가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던 순간이 있다. <하프웨이>는 그런 시절에 대한 영화다. 히로와 슈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연인을 도쿄에 보낼 것인가, 말릴 것인가’ 혹은 ‘연인의 곁에 있을 것인가, 미래를 기약할 것인가’이다. 학교가 배경이고 고3 커플이 주인공임에도 <하프웨이>는 히로와 슈의 주변 인물들과 입시 환경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그만큼 이 영화의 목적은 어린 연인의 미래를 가늠하는 데 있으며, 모든 장면들은 그 하나의 문제를 향해 전력질주한다. 사실 지극히 사적인 문제를 영화의 전부로 만드는 건 위험하다. 마치 감독 혹은 각본가의 일기장을 읽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일본 청춘 로맨스영화들이 종종 범하는 우다. 그러나 <하프웨이>는 이야기의 힘보다 개별 에피소드의 공감대 형성에 주력하는 묘를 발휘한다. 이 영화의 핵심 정서는 마음이 흔들리는 그 순간에 존재한다. 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이건 제 친구 얘기인데요…”라고 운을 뗀다거나, 여선생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남자친구에게 새초롬하니 삐치는 소녀의 모습은 유머러스하고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과거와 추억에 대한 대중의 향수를 자극하는 건 일본의 유명 드라마 작가인 이 영화의 감독 기타가와 에리코의 특기이기도 하다. ‘멜로드라마의 여왕’으로 불리며 <뷰티풀 라이프>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두 작품은 기무라 다쿠야를 일본의 국민 스타로 만들었다) 등의 드라마 히트작을 제조해낸 그녀는 “사랑의 핵심을 찌르며 관객의 마음속을 파고든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프웨이>는 기타가와의 영화연출 데뷔작이지만, 소소한 에피소드로부터 등장인물의 심리를 이끌어내는 솜씨만큼은 드라마의 내공을 그대로 끌어온 듯하다. 물론 이는 기타가와의 세계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줄 아는 배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히로를 연기한 기타노 기이의 꾸밈없는 연기는 영화의 활력소다.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에 홍조 띤 얼굴로 불안정한 사춘기의 감성을 연기한 이 소녀는 <하나와 앨리스>의 또 다른 분신처럼 느껴진다.

<하프웨이>를 얘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바로 이와이 순지다. 2006년 다큐멘터리 <이치가와 곤 이야기>를 만든 뒤 <뉴욕, 아이 러브 유>(2009) 등의 단편 연출 외에는 이렇다 할 활동이 없던 이와이 감독은 기타가와 에리코에게 영화연출을 제의한 장본인이며, <하프웨이>의 제작을 맡아 기타가와의 감성을 영화적으로 풀어내는 데 일조했다. 분명 이 영화는 감성적으로는 다른 지점이 있지만, 분위기만큼은 <하나와 앨리스> <4월 이야기> 등 이와이 월드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순정만화에 나올 것 같은 소년소녀의 달콤한 외모와 반짝이는 햇살, 물가에 어린 하늘, 홋카이도의 청신한 시골 풍경(실제로 이곳은 <4월 이야기>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등은 평소 이와이 순지의 미학을 대변하는 요소들이었다. 실제로 기타가와 감독도 “현장의 진행과 편집, 영상미만큼은 이와이 순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프웨이>는 기타가와 에리코의 감성과 이와이 순지의 눈으로 완성된, 두 예술가의 합작품이라고. 그리고 이런 방식의 합작품이라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환영할 의향이 있다. 록밴드 미스터 칠드런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고바야시 다케시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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