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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의 시네마나우] 타이의 팀 버튼? 강렬한 ‘위시트 컬러’를 보라

<레드 이글> 제작 중인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을 통해 보는 타이 뉴웨이브의 진화

<레드 이글>

지난해 연말, 타이영화 전문 사이트인 ‘와이즈 콰이의 타이필름 저널’에서 2000년대 타이영화 톱10을 선정해 발표했다. 펜엑 라타나루앙의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징후와 세기>, 아딧야 아사랏의 <원더풀 타운>을 제치고 1위에 선정된 작품은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검은 호랑이의 눈물>이었다. 타이영화에 관심이 좀 있는 영화팬이라 하더라도 의외의 결과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위시트 사사나티앙이 당대의 영화감독 중에 자기 색깔이 가장 분명한 감독임에는 틀림없다.

국내에는 <시티즌 독>으로 위시트의 열혈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 현재 위시트는 부산에서 신작 촬영을 마무리하고 후반작업 중인데, 촬영 당시 섭외를 하러 갔던 모 클럽의 사장이 <시티즌 독>의 광팬이라며, 사인 한장만 해주면 무료로 클럽 촬영을 할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한 적도 있다. 이처럼 타이의 뉴웨이브 작가 중에 위시트는 펜엑이나 논지 니미부트르, 아핏차퐁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소수의 열혈 마니아층이 존재한다. 뤽 베송 감독도 그들 중 한명이다. 뤽 베송의 유로파사는 <시티즌 독>의 판권을 사서 프랑스에 배급했으며, 신작 프로젝트 <매운 칠리소스>의 투자를 추진하기도 했다(지금은 책임자인 칸영화제 감독주간의 전 집행위원장인 프랑수아 다 실바가 독립하는 바람에 잠시 중단된 상태다).

그의 복고풍 취향이 생명력 갖는 까닭은

위시트의 영화세계는 ‘컬러’로 규정해도 될 만큼 강렬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가히 팀 버튼의 그것에 비견할 만하다. 위시트는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CF 연출을 오랫동안 했었다. 위시트의 ‘컬러’는 CF에서도 그 개성을 발휘한 바 있다(위시트의 CF가 궁금하신 분은 그가 펜엑 라타나루앙과 함께 만든 필름팩토리 사이트에 가면 확인할 수 있다. 웹 주소는 www.filmfactory.org이다). 위시트의 컬러가 독특한 이유는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컬러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인데, 기본적으로 위시트는 복고풍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60, 70년대의 미국과 타이의 팝 문화에 매료된 그는 당시의 컬러를 세련된 현대적 터치로 부활시키고 있다. 위시트가 ‘위시트 컬러’를 만들어낸 방식 역시 독특하다. 데뷔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2000)은 35mm로 촬영한 다음 컬러그레이딩 머신인 ‘다빈치’를 통해 원하는 색깔을 맞춘 다음 디지털 테이프로 전환한 뒤 다시 35mm 프린트로 변환 과정을 거쳤다. 사실 이러한 방식의 색보정은 광고컬러리스트가 흔히 하던 방식이었다. 위시트는 이를 영화에 접목시킨 것이다. 다음 작품인 <시티즌 독> 제작 때에는 촬영을 아예 HD로 했지만, 색보정은 마찬가지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오랫동안 CF감독으로 활동했던 그의 경험이 독특한 그의 영상세계 구축에 밑거름이 된 것이다. 이렇게 구축된 그의 ‘컬러’는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복고풍의 취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음악이나 이야기에도 그의 복고풍 취향은 일관된다. 그런 면에서 위시트는 전형적인 ‘리트로필리아’(Retrophilia)이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신화를 일단 해체한 뒤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하거나 재창조해나간다. 때문에 그의 복고풍 취향은 늘 생명력을 지닌다.

또한, 위시트는 탁월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그는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했었다. 논지 니미부트르의 대박 흥행작인 <댕 버럴리와 일당들>(1997)과 <낭낙>(1999)이 위시트의 시나리오였으며, <카르마>(2006, 원제는 <보이지 않는>)을 제외한 그의 모든 작품도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공포영화인 <카르마>는 위시트의 컬러가 잘 드러나지 않는 작품이다. <검은 호랑이의 눈물>과 <시티즌 독>을 제작한 파이브 스타사에서 흥행을 염두에 두고 위시트에게 연출을 제안하면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전작 모두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마음의 빚이 있었던 위시트는 차마 그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카르마>를 연출하였다. 그 이후 옴니버스 단편을 몇편 만들었던 위시트는 지금 신작을 촬영 중이다. 올해 개봉될 타이영화 중 가장 기대작 중 하나인 <레드 이글>이다. 타이영화계 일각에서는 이 역시 ‘타협의 산물’일 것이라는 시선을 보낸다. 파이브 스타가 위시트에게 차기작 제작을 보장하는 대신 또 한번 흥행이 될 만한 작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시트는 이에 적극적으로 항변한다. <레드 이글>이야말로 자신의 컬러와 스타일이 총집결된 작품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위시트의 이러한 언급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그의 전작들이 복고풍의 스타일과 이야기에 집중해왔었고, 자신이 어린 시절 매료되었던 캐릭터에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위시트는 지금 타이 고유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 두편을 만들고 있다. <레드 이글> 외에 <아이언 푸시>가 바로 그것이다. 타이-아메리칸인 종합 예술가 마이클 샤오와나사이에 의해 창조된 ‘아이언 푸시’는 60, 70년대 타이의 전설적인 여배우인 페차라 차오와라트의 모든 것을 패러디한 캐릭터로, 트랜스베스타이트 비밀요원이다. <아이언 푸시>는 2003년에 아핏차퐁 위라세타쿤과 마이클 샤오와나사이가 <아이언 푸시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한 바 있다. <아이언 푸시>의 캐릭터 자체는 2000년대에 탄생하였지만,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60, 70년대에 이르는 것이다. 지난 2월 위시트가 부산에서 촬영을 마친 <카멜리아> 중 한편인 <아이언 푸시>가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위시트는 그가 어린 시절 동경해왔던 캐릭터와 전설적인 인기배우의 시대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레드 이글> 시리즈는 50, 60년대에 인기있었던 액션히어로영화다. 주인공 역을 맡은 미트르 차이분차는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그런데, 미트르가 1970년 10월8일, <레드 이글> 시리즈의 한편인 <골든 이글>을 촬영하던 도중 헬기에서 추락하여 사망하고 만다. 이후 <레드 이글> 시리즈는 제작이 중단되고 말았다. 바로 그 <레드 이글>이 위시트에 의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절친 3인방이 보여주는 타이영화의 미래

<레드 이글>은 파이브 스타사가 제작을 맡았지만, 애초 이 작품의 리메이크를 원한 곳은 파이브 스타 만이 아니었다. 사하몽콘이나 RS필름 등과 같은 강력한 제작사에서도 이 작품의 리메이크를 원했었다. 하지만, 원작자 섹 두싯(Sek Dusit)이 위시트야말로 <레드 이글> 연출의 적임자라고 판단하여 파이브 스타에 리메이크 판권을 넘긴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 작품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시나리오를 직접 쓴 위시트는 2부로 나누어 제작하기를 원했고, 파이브 스타는 이에 난색을 표한 것이다. 일단, 1부에서 마무리를 하고 흥행 등 상황을 본 뒤 2부를 만들자고 결정하자는 선에서 감독과 제작사가 합의를 마무리했다. 또 다른 문제는 제작비 초과문제다. 이 작품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한 위시트는 촬영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제작비를 초과하였고, 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케줄도 애초에는 지난해 12월 안으로 모든 촬영을 마치고, 올해 1월에 부산으로 와서 옴니버스영화 촬영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위시트는 촬영을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부산으로 와야 했다. 촬영은 1월에 확인했을 때 4 회차가 더 남아 있었다(아웃). 때문에, 개봉일정도 늦추어져서 하반기나 되어야 개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90년대 중반 시작되었던 타이의 뉴웨이브는 (좋은 의미에서) 분화되어가고 있다. 특히, ‘절친 3인방’이었던 논지와 펜엑, 위시트는 각자 추구하는 작품세계가 명확해지고 있다. 논지는 영화시장에 좀더 친화적인 작품을 만들고 있고, 펜엑은 주로 영화제에서 환영받는 작가의 길로 들어선 지 오래이다. 위시트는 그 중간에 서 있다. 그럼에도 위시트의 작품세계는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이다. 현재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 <레드 이글>은 위시트의 필모그래피에서 새로운 정점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