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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인간으로 변하는 늑대 <더 헌터>
주성철 2010-05-12

스페인의 파코 플라자 감독이라고 하면 어딘가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한 이름이다. 리얼TV 다큐 프로그램을 소재로 했던 공포영화 <REC>(2007)의 공동감독이었다고 하면 아마 기억이 날 것이다. 단독 연출작 <세컨드 네임>(2002)으로 판타스포르투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는 그는 자우메 발라게로 감독과 공동 연출한 <REC>로 해외에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에는 그 인기에 힘입어 발라게로 감독과 <REC> 속편까지 만들었다. 발라게로 감독이야 <네임리스>(1999)로 혜성처럼 등장해 할리우드까지 진출해서 <다크니스>(2002)를 만든 경력도 있으니, 파코 플라자 그 혼자만의 실력이 어떤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REC> 이전에 연출한 2004년작 <더 헌터>가 나름 해답이 될 것 같다.

1851년,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 숲에는 늑대들이 들끓고 사람들이 하나둘, 연이어 실종된다. 마을 사람들은 숲에 들어가는 일조차 엄두내지 못하고 늑대인간 이야기는 일파만파로 퍼진다. 한편, 숲속 외딴집에서 살고 있는 바바라(엘사 파타키)와 그녀의 언니는 마차에 물건들을 싣고 행상을 다니는 마누엘 로마산타(줄리안 샌즈)가 가끔 집에 들러줄 때면 어느 때보다 마음이 놓인다. 로마산타는 언니와 연인이지만 동생 바바라도 남몰래 그를 흠모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로마산타는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늑대인간을 다룬 소설도 영화도 많지만, <더 헌터>는 15명을 살해하고도 당시 그가 정신병자라는 주장이 제기돼(늑대인간으로 변하는 저주 때문이라며 무죄를 주장) 사형이 아닌 종신형에 처해졌던 실화에 바탕하고 있다. 감독은 사이코패스이자 정신병자에 가까운 쾌락주의자였던 로마산타를 지극히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음침하고도 운명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숲의 공기도 그를 뒷받침한다. 다른 늑대인간들과의 차이점이자 매력이라면 ‘보름달이 뜰 때’와 같은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게 아니라, 다소 모호하지만 오직 한 여자 앞에서만 인간이고 싶어 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나를 가끔 늑대로 변하는 인간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난 가끔 인간으로 변하는 늑대”라는 로마산타의 독백을 봐도 알 수 있듯 그를 잠시나마 야수가 아닌 인간으로 만든 것은 바바라를 향한 사랑이다.

시체를 처참하게 물어뜯는 하드고어 장면도 종종 등장하지만 <더 헌터>는 기본적으로 멜로영화다. <전망 좋은 방>(1985)의 미남자로 기억되는 줄리언 샌즈가 늑대인간을 연기한다는 점도 한몫 한다. 물론 그는 공포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켄 러셀의 <고딕>(1986)을 비롯, 악의 추종자로 나온 <워락>(1989) 시리즈나 <뱀파이어>(1992)의 귀족 흡혈귀 등 은근히 인상적인 기억을 꽤 남긴 배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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