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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물량투입으로 일궈낸 스펙터클 <로빈후드>
강병진 2010-05-19

‘몇 번째’라고 서수를 붙이기 힘들 만큼 ‘로빈 후드’는 이미 수많은 버전을 가진 이야기다. 동시에 오로지 의적인 로빈 후드는 ‘몇명’이라고 셀 필요가 없는 캐릭터다. 그들과 다른 로빈 후드를 보여주겠다고 나선 리들리 스콧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시리즈의 유행을 따른 듯 로빈 후드 프리퀄을 만들었다. 말하자면 로빈 후드는 어쩌다 의적이 되었나. 영화에서 로빈 후드의 의적생활은 팬서비스 차원으로 짤막하게 언급될 뿐이다.

<로빈후드>는 십자군 전쟁의 막바지에서 시작한다. 로빈 롱스트라이드(러셀 크로)는 십자군 전쟁에 뛰어든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의 궁수다. 왕이 전사하자, 그는 동료들과 함께 탈출을 결심하고 영국으로 향하던 도중 왕의 왕관을 운반하다 습격을 당한 기사 록슬리의 죽음을 지켜본다. 록슬리는 아버지에게 훔쳐온 칼을 고향에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영국에 온 로빈은 노팅엄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가 록슬리의 가족을 만난다. 한편, 리처드 왕에 이어 왕관을 물려받은 존 왕(오스카 아이삭)은 독재적인 정치로 귀족들의 반발을 산다. 록슬리의 집에서 가짜아들 행세를 하게 된 로빈은 우연히 실제 아버지의 정체를 알게 되고, 존 왕의 폭정에 맞선다.

리들리 스콧과 러셀 크로가 함께 만든 할리우드 에픽이라는 점에서 <로빈후드>는 <글래디에이터>와 비교되지만, 이야기로 보자면 리들리 스콧의 또 다른 에픽인 <킹덤 오브 헤븐>에 조금 더 기울어 있다. 십자군 원정시대를 살던 한 평범한 남자가 생부의 존재를 깨닫고 기사가 된 뒤, 정치적 싸움에 뛰어든다는 이야기를 떠올려보라. 하지만 <로빈후드>는 오히려 리들리 스콧이란 이름을 떼어놓고 보아도 무방한 영화다. 그의 개성보다는 장인적 기질을 더 많이 품고 있는 <로빈후드>는 박진감 넘치는 전쟁액션과 암울한 시대가 만든 영웅, 그리고 유머를 가미한 이성과의 로맨스가 고루 배치된 액션오락영화에 지나지 않는 듯 보인다. 영화에 담긴 자유에 대한 갈망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리들리 스콧은 로빈 후드가 역사적 행동에 뛰어드는 과정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우연의 연속으로 중요한 포인트를 건너뛴 영화는 리들리 스콧의 장기인 전쟁신에 더 많은 공력을 퍼붓는다. 9대의 카메라, 1500여명이 넘는 스턴트 배우, 150대의 수레, 2만5천여벌의 의상 등 <로빈후드>의 무게를 지탱하는 건 역시 대규모 물량투입으로 일궈낸 스펙터클이다. <글래디에이터>로 할리우드에 에픽 트렌드를 만들어낸 장본인인 리들리 스콧은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답습하고 있다. 그의 <로빈후드>는 분명 새로운 로빈 후드이지만, 사실상 이미 너무 많이 본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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