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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험난한 ‘생활’을 숙지하고 성장해나간다 <섹스 앤 더 시티2>
이화정 2010-06-09

시즌6이 끝나고, 동명의 영화까지는 봐줄 만했다. 그런데 속편은 좀 걱정스러웠다. 결혼까지 한 마당에 네명의 여자들이 ‘섹스’와 ‘시티’를 더이상 어떤 방식으로 논할지 궁금했다. 결혼을 해 브루클린으로 둥지를 옮긴 미란다의 케이스가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는 즐거움에 더 이상 기여하지 못하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속편은 제작됐다. 2편의 화두는 ‘결혼’이다. 2년차 주부 캐리의 고민은 더이상 짜릿한 데이트 따윈 안중에 없이 집에서 TV나 보는 남편 빅에 대한 걱정이다. 돌아보니 친구들도 만만치 않다. 사만다는 노화억제를 위한 알약을 먹느라 바쁘고, 샬롯은 아이들에 치여서 자기를 잃어버렸다 울상이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일하는 여성’ 미란다는 고충을 겪는다.

멕시코가 전편의 스트레스 해소지였다면, 속편에서 주부들의 고충을 환기시켜주는 곳은 아부다비다. 리조트에서 초호화 럭셔리 생활을 만끽하고, 아부다비 길거리에선 전 남친과 만나는 우연도 발생한다. 며칠간의 일탈로 캐리는 매뉴얼에 나오지 않는 결혼이란 험난한 ‘생활’을 숙지하고 성장해나간다.

잠깐, 이 결론은 틀렸다. 캐리가 사랑과 결혼, 더 나아가 인생의 교훈을 얻는 방식은 참으로 협소하다. 돈 벌려고 인도에서 아부다비로 와 부인과 떨어져 사는 인도 노동자의 삶을, 드레스를 밥 먹듯 갈아입고 뉴욕같이 비싼 동네에서 쓰지도 않는 아파트를 세도 안 주고 남겨두는 자신과 일직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빵 대신 고기를 먹으라’고 했던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만큼이나 철없어 보인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속편에선 도통 ‘시티’에 대한 감흥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리즈의 진정한 시티라고 불러야 할 뉴욕의 거리는 아쉽게도 아부다비 관광청 홍보영상 같은 지리한 화면에 가려 감쪽같이 사라진다. 아부다비의 보수적인 성개념을 일차원적인 방식으로 훈계하기 이전에, 뉴욕에 좀더 집중해야 했다. 그랬다면 기대 이하의 미국 흥행 소식이 조금쯤 안타까웠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랬어야 지금까지, 혹은 앞으로도 근 몇년이 될지 모르지만, 유일하게 여성의 구두와 욕망과 섹스를 화끈하게 논했던 유일한 시리즈에 대한 즐거운 안녕을 고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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