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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업을 보면, 내가 보여
2001-03-03

조선말기 화가 장승업의 이야기로 돌아온 임권택 감독

임권택 감독은 <춘향뎐>을 찍으면서, 내색은 안 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이거 괜한 짓을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판소리와 영화가 한몸이 된 <춘향뎐>은 다시 생각해도 식은땀 나는 프로젝트였다. 패기 넘쳐야 할 젊은 감독들이 세공술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영화와 평생을 살아온 노감독은 영화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었다. 임 감독은 편안하게 영화 만들고도 좋은 평판 들을 수 있는 길을 잘 알고 있다. 그 길에 유혹을 느끼면서도, 정작 일을 벌일 땐 몸은 정반대로 간다. 자책하면서도 그 길을 또 간다.

임 감독의 새 영화는 조선말기의 화가 오원 장승업에 관한 영화다. 오원은 전설적인 풍운아로 알려져 있으니 인물이야기만 재미있게 푸는 쪽이면 좀 편하겠지만, 임 감독은 그렇게 가진 않으려 한다. 회화를 이야기의 소품으로 삼는 게 아니라 회화의 이미지가 이야기와 만나 만들어내는 새로운 리듬과 합주가 임 감독의 관심사다. 세계적인 갈채를 받은 <춘향뎐>의 성가를 뒤로 하고, 임 감독은 새로 그림공부를 시작하며 다시 줄담배를 피워물고 있다.

■ 오랫동안 금연하다가 최근 들어 다시 담배를 피운다는데.

10년 전에는 한 서너갑씩 피웠는데 계속 기침이 나왔다.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곤 담배를 끊었는데 바로 기침이 없어지더라. <춘향뎐> 때 촬영현장에서 하도 끓어 2∼3대 피우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다시 피우기 시작한 건 5개월쯤 전부터다. 후쿠오카영화제에 참가했는데, 정일성 촬영감독이 옆에서 꼬셔대더라. 보기와는 달리 아주 나쁜 사람이다. (웃음) 그때부터 다시 담배를 잡았는데 요즘은 다음 작품을 어떻게 할 것인지 끓탕하고 있어 하루에 두갑씩 피운다. 속으로 ‘이제 다 살았는데 오래 살겠다고 앙탈부릴 이유도 없다’는 식으로 변명하고 있다.

■ 어떻게 장승업 이야기에 이르게 됐나.

조선말기 화가인 장승업에 관한 얘기는 전에 이상현씨가 나오는 연극에서도 했고 방송에서도 했다고 들었다. 흥미는 갖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또 누가 그 이야기를 했다. 판소리나 팔아먹으면 좋은데, 두번이나 했으니 이제 또 그건 못 팔아먹잖나. (웃음) 걱정이긴 하다. 내가 그림을 알아야 얼마나 알겠나. 그런데 또 일을 벌이게 됐다. 장승업은 지난해 12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돼 서울대에서 세미나도 갖고 작품 전시회도 했었다. 나도 전시도 보고 세미나에도 참여했다. 그에 관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수집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수집해놓았다. 또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2학년생이 우리의 선생이 돼서 그림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다. 아주 어린 사람인데 틀에 매이지 않는 사고를 가졌다. 장승업에 대한 기성 화단의 평가에 묶이지 않았고 비판적인 눈도 가졌다. 기왕에 알려진 장승업에 관한 이야기는, 당시 떠도는 소리를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데, 명예고 부귀고 다 떨치고 왕이 병풍을 그리라고 명령해도 담을 넘어 도망가는 자유인 이미지다. 그런데 이 사람이 과연 진짜 자유인이냐 하면, 나는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림은 아니지만 평생을 영화에 매달려 사는 사람인데 그렇게 훨훨 털고 날아다닐 수는 없다. 그렇게 보여도, 속엔 무지 고통스러운 게 있는 거다. 오히려 그래서 바깥으로 튄 것이지. 이 사람이 어떤 정신의 작가인가를 밝혀내는 것은 누구도 해낸 일이 없기 때문에 그에 관해 알려진 사실들에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을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인물 성격이나 작가로서 어떻게 살아왔을지 거의 윤곽을 잡아내는 그런 단계에 있다.

■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나올 거라는 예감이 든다.

나도 그런 기대가 있다. 장승업은 행적이 좀 기인다운 데도 있고 살았던 시대도 아주 파란만장한 때라서 내 영화 중에는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또 그가 무학이라는 점이나, 영화감독과 화가가 지향하는 점이 비슷할 수 있기 때문에 좀 공통점을 느낀다. 내가 부대낀 고통 같은 것이나 내가 느꼈던 즐거움을 쏟아부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유리한 점이 있다.

■ 사료가 충분치 않다면, 아무래도 허구를 많이 가미해야 할 것 같은데.

그의 삶에 관한 기록은 빈 데가 많다. 게다가 장승업이 기행을 벌이게 된 필연성을 보여주려면 도리없이 허구가 필요해진다. 사실 그의 행적 자체도 뻥튀기된 것이 있을 것이다. 내가 채울 허구라는 것은 그의 기인다운 모습을 더 자세히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그런 기행을 기행처럼 보이게 하는 삶이 왜, 어디로부터 비롯됐는가를 받침하는 얘기를 착실하게 채우기 위한 것이다.

■ 장승업의 이야기를 영화화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핏 <서편제>가 떠올랐다. 떠돌이 예술가의 여정을 담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데 듣고보니 아닌 것 같다. 이번엔 여정이 아니라 한 예술가의 내면이 중심이 될 것 같다.

그렇다. 사실 나는 한 사람의 내면을 쫓아가는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객관적인 역사나 사건을 주로 담았지. 이것은 작가 내면의 세계를 다루면서 그런 내면이 표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을 그리려고 한다. 사실 그가 화가로 성공했는가, 아닌가는 관심이 아니다. 자기 의지를 태우고 간 화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 <태백산맥> <축제> <서편제> 등을 보면, 근대와 전통이 교차하는 지점에 주인공들이 서 있다. 이번 작품도 이와 유사한 구도다.

뿌리를 잃고 떠돌며 살 수밖에 없는 시대는 그때나 지금이나 맥이 같다고 생각한다. 오원 장승업도 고통스런 삶을 산수화로 표현했다. 산수화 같은 삶, 도달할 없는 경지에 그는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다. 아마 현세로부터 일탈하고픈 욕망 때문에 산수화로 빠졌던 것 같다. 그는 한 화가로 족적을 남기자는 각오 아래 살았지만 잘 평가받진 못하고 있다. 조선 4대 화가라곤 하지만 장승업의 그림은 평가절하돼왔다. 중국 그림을 모방했다는 비판도 듣는다. 하지만 내가 찍고자 하는 것은 이런 점이 아니다. 치열하게 자기 완성의 길을 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냐에 포커스를 맞출 생각이다.

■ 그런 면에선 이 영화는 가장 개인적인 영화, 감독 자신의 모습이 짙게 투영된 작품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런 방면으로는 유일한 영화가 될 것 같다. 그동안은 남의 삶을 구현해냈다면 내 삶의 역할이 그 영화를 통해 깊이 투영될 수 있는 그런 영화일 것 같다.

■ <춘향뎐>은 전세계 어디선가 상영되고 있고 여전히 갖가지 영화제에 초청되고 있다. 서둘러 차기작에 착수했다는 느낌도 있다.

사실은 내가 <춘향뎐>에만 더 머물러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젊은 사람들 영화를 찍는다 해도 되지도 않을 것이고 내 나이만한 영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극동에 사는 사람들의 삶, 역사, 전통, 가치있는 예술을 담아서 세계라는 꽃밭에 작은 꽃으로서 역할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말하며 돌아다녀왔다. <춘향뎐>이란 영화는 처음으로 그런 형식을 취한 특별한 영화였고, 또 지금은 거기서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춘향뎐>을 하면서 그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었는데, 이젠 그것을 또 넘어선 작품을 하기는 해야겠는데… 답답하다.

■ <춘향뎐> 이전까지 대체로 전통적인 기법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춘향뎐>에서는 판소리를 끌어들여와 전혀 새로운 영화문법을 창조했다. 이번에는 그림이다. 다른 예술과 영화의 만남을 통해 형식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때로는 새로운 형식에 도전한다는 것에 대해 ‘이 무슨 부질없는 짓이냐’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형식에 힘을 쏟아부으며 멈칫거릴 게 아니고 있는 형식 안에서 편하게 만드는 것이 더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유혹도 받는다. 결과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보단 내가 예술적 감성으로 느끼는 것을 충분히, 편안하게 담는 게 안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기존의 형식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늘 쫓기는 것도 사실이다. 이 작품을 놓고서도 지금 마음이 무겁다.

■ 어쨌든 그림이 영화의 소품처럼 배치되진 않을 것 같다. 영화 속에서 그림의 비중은.

동양화는 폭과 넓이가 서양화와 달라 잡아내기가 어렵다. 또 그림을 감상하려면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런 깊이를 영화로 찍을 수 없을 것 같다. 영화적으로 빠르게 진행하려면 클로즈업을 많이 구사해야 할 것 같다. 멀찍이 찍어놓고 감상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나. <춘향뎐>에서 소리가 따라오기 때문에 이해를 빨리 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림을 이용해서 빠른 이해를 도울 방법을 생각중이다. 또 나도 초심자니까 기왕이면 한국화, 동양화가 어떤 것이며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을 교양강좌처럼 담을 계획도 있다. <서편제> 때 초심자 입장에서 판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만든 것처럼. 한국화의 초심자를 위해 영화 한편 보고나면 그림을 보는 눈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 이야기의 리듬을 잡기 어려울 것 같다.

리듬도 그렇고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은데, 신문물이 들어오고 하는 외적 상황을 따로 설명하지 않고 한 화가의 생애를 통해 경제적으로 쉽게 보여주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게 굉장히 어렵다. 그게 밀도있게 된다면 상당히 큰 성과가 있을 것 같다.

■ 2시간 동안 한 예술가의 내면과 격동의 시대를 함께 담는 것은 보통 어렵지 않겠다.

그래도 시대 부분은 짊어지고 가야 할 것 같다. 오원은 신선이 쉴 만한 곳을 많이 그렸는데, 그 자신이 튀어가고 싶어하던 은일한 휴식처에 그렇게 그림을 통해 도달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를 설명하려면 이 시대적 배경이 같이 물리는 게 효과적이다.

■ 시나리오 작업은 어떻게 하고 있나.

아직 시작도 못했다. 연출 플랜을 확실히 짜놓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미리 축을 세워놓은 다음에야 작가를 참여시킬 생각이다. 굉장히…, 아마 여러 번 고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혹시 그림에 관해서도 잘 알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도 박식한 시나리오 작가 없나. 내가 왜 그렇게 어려운 자리를 만들었는지…. 다음에는 꼭 단조롭고 쉬운 얘기를 해야지, 하고 생각하다가도 꼭 그런 데 걸려든다.

■ 그외에 이번 영화와 관련, 정해진 사항이 있나.

정일성 촬영감독이 참여한다는 정도뿐이다. 될 수 있으면 <춘향뎐> 스탭을 중심으로 꾸려갈 생각이다. <춘향뎐>은 내가 했다기보다 자기 작품으로 여기고 열심히 일해준 모든 스탭이 만들었다. 조감독부터 말단 조수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맡은 부분에서 뭔가 잘못되면 다시 가자고 할 정도로 모두 이 영화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다.

■ 제작 일정은.

5월부터 시작한다. 지금 추세로 볼 때 한달쯤 연기될 수도 있다. 이번엔 정말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장군의 아들> <춘향뎐>처럼 신인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물론 연기력이 뛰어난 신인이 있다면 모르지만….

■ <춘향뎐>은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내 평론가들에게 좀 섭섭하진 않았나.

감독 입장으로선 자신이 무언가 해놓은 것을 읽어줬을 때 보람을 느끼는데 사실 국내에선 그런 게 좀 드물었다. 관객도 안 들어 아주 곤혹스러웠다. 이에 비해 해외에 나가서 인터뷰하면서 위안이 됐다. 외국에는 깜짝 놀랄 질문을 받은 경우도 있다. 미국 LA던가 어디선가 영화주간지의 젊은 친구가 와서는, “춘향이 매질당하는 장면은 춘향의 목소리가 판소리로 대체되면서 카메라가 뒤로 쭉 빠지는데, 또 그것 덕분에 그 장면의 격조가 올라가는데, 춘향의 고통을 직접 담고 싶은 유혹에서 어떻게 벗어났느냐”는 질문을 하더라. 나는 그 질문에 놀랐다. 실제로 난 처음에 춘향의 아픔을 담고팠는데, 그리고 찍으면서도 그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이 앙다물고 버텼는데 그렇게 물어보는 것 아닌가. 그래서 “당신 기자 맞소? 감독했던 사람 아니오?”라고 물었다.

■ 해외에서 보람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리는 텔룰라이드영화제라고 있다. 인구라 해봐야 3천명 남짓한 마을에서 열리는 영화제인데 피에르 뤼시앵이 그러더라, 미국시장에 진출하려면 그 영화제에 가서 꼭 알려야 한다고. 작지만 미국영화계에서 올 만한 사람 다 오니까 굉장히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ID 카드 한장에 2500달러, 2천달러씩 하는데도 전국에서 마니아들이 찾아오더라. 거기서 <춘향뎐>의 흥행이 가장 잘됐다. 집행부에서도 무척 고맙게 여겼다. 실험영화의 대부인 스탠 브래키지 같은 사람을 만났는데 셰익스피어 원작영화 중에는 명작이 많은데, <춘향뎐>도 그런 작품인 것 같다며 문화적 이질감은 있지만 영화로 보편성을 획득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뉴욕이나 LA에서 온 사람들도 굉장히 호의적인 평가를 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져서 그랬는지 뉴욕영화제에 갔을 때 무척 편해졌다.

■ 최근 들어 아시아영화가 세계적으로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흥행도 잘되는 상황까지 맞았다.

할리우드가 자신의 영화제작 능력이 한계에 온 탓에 자꾸 눈을 돌리는데 마침 아시아영화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발견한 것 같다. 사실 서구인들은 아시아인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데, 하도 매체가 발달하면서 상식도 쌓이고 해서 영화를 읽어내는 게 쉬워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춘향뎐>에서 조감독을 했던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가 최근에 개봉했다. 후배들의 영화도 좀 봤는지.

김대승은 하도 순해빠져 자기 얘기를 잘하지 않고 해서 그런지, 연출자로서의 장점을 읽어내기 어려웠던 것 같다. 상당히 궁금했는데 막상 그의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전혀 읽어내지 못했던 좋은 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외에 요즘 본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와 임상수 감독의 <눈물> 정도다. <눈물>은 소재 자체가 우리처럼 나이 먹은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래도 거북한데, 감독의 패기나 그 세대를 표현하는 능력은 뛰어난 것 같더라.

■ 최근 충무로에선 화려한 액션을 담은 큰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하나의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

굉장히 부럽기도 하다. 60년대가 한국영화의 황금기라고 하지만 한국영화 사상 가장 활기롭고 풍요로운 조건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점에서 지금이 오히려 전성기라는 느낌이다. 나는 보릿고개를 살아온 감독이다보니 한국 내 시장의 규모만을 고려하게 된다. 그래서 제작비에 50억원이 들어간다고 하면 입이 쫙쫙 벌어진다. 그렇게 들여 만든 작품 몇편 때문에 이번 호황이 타격을 받는다면 바람직하진 않겠지만, 그렇게 돈을 써보는 연습을 해서 소기의 성과를 내면 좋은 것 아닌가.

■ <장군의 아들> 같은 본격 상업영화를 다시 찍어볼 생각은 없나.

내가 놀던 곳이 바로 상업영화다. (웃음) 왜 그리움이 없겠나. <장군의 아들> 해놓고 욕을 먹었는데…. 그래도 기회가 닿으면 찍으려 한다. 하긴 상업영화를 찍는다 해도 이젠 나도 어쩔 수 없는 내 세계가 있기 때문에 거기선 크게 못 벗어날 것 같다.

허문영 기자 moon8@hani.co.kr

문석 기자 ssoo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