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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하얀 리본>
김용언 2010-06-30

1913년, 독일의 작은 마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치한 줄에 걸려 마을 의사가 낙마 사고를 당한다. 남작의 어린 아들이 끔찍하게 고문당한 채 발견되며, 장애아의 눈이 도려지고 헛간에 불이 붙는다. 서로 연관지을 수 없는 일련의 기이한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마을 전체는 불신과 공포에 휩싸인다.

<하얀 리본>의 특정한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악의 승리’는 피할 수 없이 ‘이후’의 역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조건이다. 2차 세계대전을 뒤덮고 있는 나치즘과 파시즘의 어떤 부정적인 이미지들. 미카엘 하네케는 파시즘의 기원을 간전기(間戰期)의 정치사회적 컨텍스트가 아닌,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좋았던 옛 시절의 마지막’에서 찾으려 한 걸까? “나치운동은 1900년경에 탄생한 독일사의 마지막 베이비붐 세대가 주도한 젊은 운동이었다. 그리고 청소년층은 집권 이후 나치즘이 가장 유의한 사회집단이기도 했다. 때가 묻지 않은 그들이야말로 나치의 이데올로기 교육에 의해 창조될 ‘신인간’의 재료였기 때문이다.”(<나치 시대의 일상사>의 역자 해설 중에서)

복종을 강요하는 억압의 체계에선 손쉽게 희생자를 찾아낼 수 있다. 그 억압을 강요하는 이들까지 어느새 희생자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선과 복종을 강요하는 하얀 리본은 오히려 그것이 저지른 악을 더욱 도드라지게 보이게 하는 거대한 ‘말씀’이다. 악을 저지르는 행위자와 반대급부의 희생자가 일방적으로 나눠질 수 없는 세계, 단선적인 인과관계로 정의내릴 수 없는 세계. 양차 세계대전은 그 세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미카엘 하네케는 손쉬운 도표를 거부한 채 파고들수록 미스터리로 가득한 기이한 세계 안에 스스로 갇힌 채 폭력의 인류사를 조망한다. 2009년 칸국제영화제는 이 비정한 거장에게 황금종려상을 선사함으로써 항복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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