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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시각예술가가 남긴 위대한 유산

<시티 걸> City Girl(블루레이)

1930년 /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 89분 1.19:1 스탠더드 / DTS-HD 5.1, 2.0 무성영화 영어 인터타이틀 / 유레카(영국) 화질 ★★★★ 음질 ★★★★ 부록 ★★★

1926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는 할리우드의 환대를 받으며 미국으로 이주한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가운데 당시까진 ‘파라마운트’나 ‘MGM’보다 뒤에 자리했던 ‘이십세기 폭스’의 위상을 제고하고 싶었을까, 윌리엄 폭스는 무르나우에게 유례없이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다. 그러나 백지위임하에 만든 <선라이즈>의 흥행 실패로 인해 무르나우의 창조적 통제력은 곧 제한당한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세 번째 영화이면서 마지막 작품인 <시티 걸>(원제목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다)의 경우, 스튜디오는 제작부터 개봉에 이르는 전 과정을 간섭했다. 주연배우, 촬영감독, 미술감독을 프랭키 보재기의 <강>과 공유했기에 무르나우는 오리건주의 현장에서 몇 개월을 대기할 수밖에 없었고, 완성된 영화의 몇몇 장면은 삭제됐으며, 심지어 무르나우의 반대에 맞서 이십세기 폭스는 유성 버전의 개봉을 고집했다. 수모를 참지 못한 무르나우는 몇 작품을 더 연출하기로 계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와 관계를 끊는다. 그리고 얼마 뒤 타히티섬에서 연출한 <타부>의 개봉을 보지 못한 채 42살의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죽는다. 갓 태어난 토키시대는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시각예술가를 비극적 운명으로 몰아넣었다. 사운드와 이미지의 충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시골 청년 렘은 밀을 거래하기 위해 시카고에 도착한다. 몇번 들른 식당의 웨이트리스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결혼한다. 밀을 헐값에 팔아버린 렘이 도시 여자와 돌아오자 고지식한 농부인 아버지는 성화를 낸다. 추수기에 고용된 인부들이 케이트에게 눈독을 들이면서 그녀는 또 다른 곤경에 처한다. 도농을 오가는 이야기이면서도 <시티 걸>은 <선라이즈>와 여러모로 다른 영화다. 스타일의 변화가 두드러지는데, 아찔한 빛과 그림자, 이중인화 등을 통해 주인공의 현실은 물론 환상까지 대담하고 실험적으로 표현한 <선라이즈>와 반대로, <시티 걸>은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미장센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여정이 중심인 <선라이즈>가 유려한 카메라의 동선으로 시각을 매혹시켰다면, 정착에 관한 이야기인 <시티 걸>은 카메라의 움직임 대신 몽타주에 의존한다. 내용에 있어서도 생사와 구원을 다룬 <선라이즈>의 강렬한 파토스는 <시티 걸>에 없다. 도시 여성과 농촌 총각의 결합을 그린 <캐나다인> <화이트 골드>, 그리고 무엇보다 빅터 시외스트룀의 <바람>의 영향 아래 있는 <시티 걸>은 D. W. 그리피스와 프랭크 보재기의 영화와 함께 미국 멜로드라마의 초기 형태를 대표한다고 평가하는 게 맞다. 유럽 예술영화감독으로서 무르나우의 모더니티가 드러나는 부분은 돈의 묘사에 있다. 시카고 선물시장의 장면은 프리츠 랑의 <도박사 마부제 박사>, 마르셀 레르비에의 <돈>에 등장하는 주식시장과 곧바로 연결되면서 탐욕, 부패, 몰락의 기원인 돈을 악으로 규정한다. 청교도이면서 이익에 철저한 농부, 돈에 눈이 멀어 농부를 유혹하는 여자, 잔업 수당을 따지는 인부들을 대하는 무르나우의 시선은 곱지 않다. 서둘러 갈등을 봉합하는 <시티 걸>의 결말은 (<마지막 웃음>의 결말이 그런 것처럼) 해피엔딩 아닌 해피엔딩이다. 그런 점에서 <시티 걸>의 진짜 결말을 쓴 사람은 테렌스 맬릭이다. 시카고에서 온 갈색머리의 여자, 농장주와 도시 여자의 사랑과 의심, 돈을 뒤따르는 인부들, 농장에 닥친 자연재해, 아름다운 관계의 종말 등 <천국의 나날>의 이야기 갈래는 모두 자연주의영화인 <시티 걸>의 연장선상에 있다

블루레이에 담긴 <시티 걸>의 복원영상은 할리우드산 흑백영화 블루레이의 번지르르한 느낌과 차별화된다. 세월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보다 필름 질감의 재현에 더욱 신경을 쓴 결과다. 영화연구가인 데이비드 캘럿의 충실한 음성해설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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