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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마셜의 가장 주류적인 영화 <센츄리온>
김도훈 2010-08-25

닐 마셜은 아마도 장르를 하나씩 하나씩 정복하고 싶은 모양이다. <독 솔져>(2002)와 <디센트>(2005)로 괴물 호러영화를 정복한 그는 <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로 묵시록 영화에 오마주를 바치더니, <센츄리온>에서는 시대극에까지 손을 뻗쳤다. 물론 네 작품 모두 공통적인 특징은 있다. 인간의 피와 살이 간장을 얹은 두부처럼 스크린 앞에서 터져나가는 헤모글로빈의 미학이다.

서기 117년. 로마제국 제9군단은 브리튼섬의 원주민 픽트족과 맞서 싸우다가 거의 전멸한다. 살아남은 7명의 전사는 검투사 출신인 퀸투스(마이클 파스빈더)를 지휘관 삼아 픽트족에 잡혀간 비릴루스 장군을 구하려다 실패한 뒤, 여전사 에티엔(올가 쿠리렌코)와 샤낭꾼의 추격을 피해 후방으로 도망길에 오른다. <센츄리온>은 어쩌면 닐 마셜의 가장 주류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여기에는 전작 <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 같은 장르적 막가파 정신은 없다. 대신 닐 마셜은 이 중후한 시대극을 특유의 폭력미학으로 이끌고 간다. 인간의 머리는 반으로 쪼개져 허공으로 날아가고, 나무에 부딪힌 인체는 수박처럼 터진다. 시대극과 전쟁영화의 극단적 고어는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부터 본격적으로 주류영화 시장에 입성했다. 이런 영화에서의 신체 훼손은 대개 무기의 강력함이 아니라 인간 신체의 나약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그건 전쟁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센츄리온>의 주제와 딱 맞아떨어진다.

캐스팅이 훌륭하다. 특히 영국 배우 마이클 파스빈더(<피쉬 탱크>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와 여전사 전문배우 올가 쿠리렌코(<007 퀀텀 오브 솔러스> <히트맨>)의 매력이 끝내준다. 그러나 <센츄리온> 최고의 캐스팅은 브리튼섬이다. 카메라가 북부 산악지방의 풍광 속에서 개미처럼 내달리는 로마 전사들을 비추는 순간, 나약한 인간의 패배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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