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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불화는 민감한 유전자를 지닌 그들의 운명 <탈주>
이영진 2010-09-01

이송희일 감독의 인물들은 강요와 폭력을 좀처럼 참지 못한다. 세상과의 불화는 민감한 유전자를 지닌 그들의 운명이다. 소수자라는 낙인 아래 무시당하고, 내쫓기고, 짓밟히는 그들은 그러니까 언제나 길 위에 선 자들이다. 단편 <굿 로맨스>를 시작으로 가까이 장편 <후회하지 않아>까지, 이송희일 감독은 언제나 길 위에 나선 이들의 용기를 긍정해왔다. 그 끝이 씁쓸한 파국일지라도 말이다.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 <탈주>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말기 암 선고를 받은 홀어머니를 위해 재훈(이영훈)은 의가사 제대 신청을 하지만 번번이 거부당한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탈영을 감행한 재훈 곁엔 민재(진이한)가 있다. 애인에게 버림받았다고 어떻게든 복수할 것이라는 민재는 뭔가 다른 복잡한 사연을 지닌 듯하다. 고참들의 구타와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탈영을 수차례 시도한 동민(손철민)과 함께 철조망을 넘는 두 사람. 하지만 포위망은 좁혀오고, 동민은 자살한다. 피붙이를 만나러 갔다 외려 총격세례를 받은 민재는 붙잡혀도 좋다며 고향집에 돌아가려는 재훈의 여정에 동행한다. 재훈과 애틋한 사이인 소영(소유진)도 생사를 알 수 없는 이들을 따른다.

무장 탈영병을 앞세운 <탈주>는 어떤 쾌감도 즐기려 들지 않는다. 쫓는 이는 보이지 않고, 쫓기는 자들도 변명하지 않는다. 쫓고 쫓기는 긴장보다 “가난해서 갈 곳 없는” 인물들이 길 위에서 헤어졌다 만나는 방식이 더 흥미롭다. 살기 위해 헤어졌던 그들은 어느새 한데 모여 있다. 그리고 조금씩 서로를 매만지고 다독이는 법을 서툴게 배운다. 영화 속 갈등 구조는 단순하고 또 나른하다. 분명한 약점이다. 하지만 도망칠 곳 없는 이들이 서로를 위무하는 아주 짧은 휴식의 순간들을 이송희일 감독은 감각적으로 잡아낸다. 인물들의 감정을 소홀하게 다루진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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