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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 휴대폰을 소재로 해 구식 공포를 답습하는 함정 <엔드 콜>
장영엽 2010-10-13

“사신님, 사신님, 통화시간만큼 제 수명을 드릴 테니 소원을 들어주세요.” 밤 열두시, 특정 번호로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말하면 사신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이 여고생들 사이에 퍼진다. 아버지가 지긋지긋한 사요코(우스다 아사미)는 사신의 번호로 전화를 걸고, 그녀의 소원대로 아버지는 죽는다. 그리고 또 다른 10대 소녀들-변태 선생님을 증오하는 소녀와 멋진 남학생과의 연애를 꿈꾸는 소녀-이 사신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나 소원 성취가 중요한 그녀들은 ‘통화시간만큼 제 수명을 드릴 테니’라는 주문을 무시하다가 잔인한 죽음을 맞이한다. 친구들이 목숨을 잃자 사요코는 1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다.

<엔드 콜>은 <착신아리>를 선배로 삼는 일본 ‘호러물’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그러나 2006년, <착신아리>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프로듀서 아리시게 요이치가 했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휴대폰을 소재로 한 영화의 아이템은 다 떨어졌다고 느꼈다.” 물론 휴대폰이 사람보다 앞서 생각할 줄 아는 요즘 세상이라면 스마트폰을 소재로 한 새로운 형태의 휴대폰 호러물이 등장할 법도 하건만, 2008년 제작된 <엔드 콜>은 문명의 과도기에 서서 구식 휴대폰을 소재로 해 구식 공포를 답습하는 함정에 빠져버렸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은 캐릭터의 전사(前事)를 이해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며, 별 생각없이 목숨을 사신 앞에 내놓는 소녀들은 연민도, 동감도 유발하지 못한다. 면도칼로 양치를 하며 죽어간다거나, 얼굴에 피칠갑을 하고 사신의 제물이 된 희생자들은 잠깐의 충격을 선사하지만 이마저도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역전시킬 만큼 효과적이지는 못하다. 결국 <엔드 콜>은 평단의 혹평 폭격을 받으며 개운치 않게 시리즈를 마무리한 <착신아리>의 교훈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스마트한 시대의, 스마트한 공포가 필요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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