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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사랑하세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2001-03-08

1

현이가 죽었다.

유난히 춥게 느껴졌던 10년 전 겨울 어느 날 투신했다. 옷은 따뜻하게 입고 갔을까. 아무도 그 애가 왜 죽었는지 모른다. 오랜만에 꺼내본 사진 속에서 그 애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실은 늘 우울한 표정이어서 가끔씩 내비치는 미소가 더 마음속까지 파고들었었는데. 10여년 전 사진 속에서는 그 아이도, 나도, 주변의 풍경까지도 풋풋하고 싱그러워 보였다. 사진은 언제나 그렇다.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을 때라도 그 사진을 보며 과거를 추억할 때를 미리 염려해서인지 찬란하고 과장되게 웃고 있다.

좀 특별한 아이였다. 제일 가까운 언니와도 나이 차이가 스무살이나 났다. 현이가 태어났을 때 언니가 시집을 갔는데 처녀가 애를 낳고 시집을 갔다고 소문이 났다며 쑥스러운 듯 비밀스럽게 얘기해줬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들 탓인지 현이는 동년배로서는 가질 수 없는 어른스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뭔지 모를 어두운 가족사를 가진 아이 같았다. 밝고 재미있는 사람이 편하기야 하지만 비극적인 분위기를 가진 사람 역시 피하기 힘든 묘한 매력이 있게 마련 아닌가. 그맘때는 더더욱 그런 분위기를 동경했다. 우리의 주무대는 인사동 골목이었다. 지금이야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번잡한 그곳도 10년 전에는 깨끗하고 한적한 거리였다. 미술을 전공한 그 애는 화랑을 즐겨 찾았다. ‘아름다움은 그저 자기 방식대로 느끼면 되는 거야. 아무런 격식이나 공부가 필요하지 않아.’ 미술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 애와 함께 다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워낙 말이 없는지라 어쩌다 한! 마디 툭 던지면 그 임팩트가 강렬해서 쉽게 잊혀지질 않았다. ‘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 발을 매일이라도 닦아주고 싶어’라던 그 아이의 사랑론이 지금껏 생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아이였다. 얌전히 있다가도 멀리서 다가오는 남자친구에게 달려가 안긴다든지, 보고 싶다며 집 앞에서 전화를 한다든지, 그런 게 하나도 부담스럽거나 어색해 보이지 않는 아이였다. 지금도 인사동에 가면 그 애 생각이 난다. 아니, 생활에 쫓겨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보다 오히려 더 가까운 곳에 있다는 편이 옳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우정은 현재진행형이다

2

마틸드가 죽었다.

아무 일도 없는 평화로운 날이었다. 가게문을 일찍 닫고, 사랑을 나누고…. 그리고 그녀는 비가 쏟아지는 거리로 뛰쳐나간다. 예의 그 슬픈 듯한 미소를 마지막으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내 생애 절정에서 죽습니다. 날 잊지 못하도록 지금 떠납니다.” 다리 위에서 망설임 없이 강물로 뛰어든 마틸드의 마지막 메시지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기억할 만한 그 순간에 죽음을 택한 것이다. 절묘한 타이밍.

남은 이로서는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여전히 가게문을 열고 손님을 받고 미용사가 곧 올 거라며 마틸드가 서 있던 그 자리를 그윽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시간의 연속. 물론 아무도 오지 않지만, 그는 내내 마틸드와 함께한다. 애끓는 통곡이나 비탄없이도 마음이 묵직해진다. 연인의 마음과 추억 속에 그녀가 생존하므로 그들의 사랑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마틸드는 특별한 여자였다. 동네 이발소에서 묵묵히 머리를 자르고 있는 그녀의 자태에선 뭔가 둔중한 게 느껴진다. 그녀가 손님의 머리칼을 잘라내는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외로움을 끊어내려는 것 같다. 그녀는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사각거리는 가위소리가 그녀의 이야기를 대신한다. 마틸드는 앙트완과의 첫 번째 만남에서 청혼을 받고 두 번째 만남에서는 그 청혼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인생의 밝은 면만 보기로 결정한 사람처럼 아무것도 문제삼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주변의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의미있는 것은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 아이도 없었지만 두 사람은 지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았다. 늘 똑같은 일상이었지만 그들은 자유로웠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면 그녀의 한마디였다. “내게 싫증나면 말해주세요.” 마틸드도 그가 자신을 권태롭게 느끼는 순간이 올까봐 두려웠던 걸까? 오히려 믿음의 표현처럼 느껴진다.

3

프랑스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은 나에게 사랑에 대해 물어온다. 마틸드가 들려주는 사랑은 한결같음이다. 마틸드에게서 현이를 찾아낼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곁에 존재하지도 않지만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를 둘러싼 공간과 시간과 내 자신까지도 변해가고 있다. 한없이 사랑스러워 보이던 눈웃음이 야비하게 보이기도 하고 관조적인 생활태도가 능력없어 보이기도 한다. 후끈 달아올랐다가도 쉽게 식어버린다. 영원하리라고 믿었던 것도 어김없이 배신하고 상처를 준다. 그러나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너그럽고 여유있게 나를 감싸주고 있다.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도 세상의 그 한 사람에게만은 그런 의리를 지켜주고 싶다. 마틸드처럼. 그를 알아볼 수 있다면 현이처럼 그의 발이라도 씻어줄 수 있다. 그 여정을 함께할 사람을 나는 지금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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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정민/ KBS 아나운서·<뉴스투데이> <황정민의 FM대행진> <가요빅뱅> 등 진행